腦 과학 이야기

같은 공부시켜도 우리 아이 성적은 왜…

아산병원

김종성 신경과 교수

 

누구 머릴 닮아 이러지?

대학 입시 결과에 따라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희비가 엇갈리는 요즈음이다.
누구나 공부를 잘하고 싶은데 이게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문제다. 왜 어떤 학생은 공부를 잘하고 다른 학생은 못하는가? 한 사람의 지능이란 어쩔 수 없이 유전되는 것일까?

19세기의 우생학자 프란시스 갈턴은 ‘당연히’ 지능은 유전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백인이 흑인보다, 부자가 가난한 자 보다 공부를 더 잘하는 것은 유전적인 차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능이 높은 사람들의 출산을 장려하고 하층 계급 사람들에게는 피임을 보급해야 인류의 발전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이러한 사상은 히틀러 같은 정치가에 의해 왜곡된 모습으로 받아들여져 잔인한 인종 청소의 이론적인 빌미가 되었다.

서양 사회에 민주, 평등 원리가 대두하면서 이런 인종적·계급적 차별에 대한 반발이 발생한 것은 당연하다. 여러 학자들의 주장에 힘입어 이번에는 유전보다는 환경적인 요인이 지능에 더 중요하다는 견해가 대두되었다.

예컨대 원래 인간의 지능에는 서로 차이가 없지만 백인과 부자는 각각 흑인과 가난한 자에 비해 교육의 기회가 많고 영양상태가 좋기 때문에 지적 능력이 더 우수해 진 것뿐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근래 유전학의 발달로 인해 다시 지능의 유전설이 고개를 쳐들게 되었다. 예컨대 쌍둥이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쌍둥이 중 하나가 다른 집안에 입양되더라도 그 아이의 지능은 입양된 가족 보다는 원래 쌍둥이 형제의 것과 비슷하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반발하는 ‘자궁내 환경설’이 다시 제기되었다. 쌍둥이는 엄마의 자궁 속에 있는 10개월 동안의 환경이 동일하다. 즉 뇌의 신경세포가 한창 자라나는 이 중요한 시기에 동일한 환경에 노출되었기에 쌍둥이의 지능이 서로 비슷해진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태내(胎內) 환경의 영향을 배제 한다면 유전적 요인은 생각보다 적을 것이라고 일부 학자들은 주장한다.

하지만 일란성 쌍둥이 형제 (유전자가 동일하다)가 이란성 쌍둥이 (이 경우 유전자는 50%만 동일하다) 보다 서로의 지능이 더욱 비슷한 것도 사실이다.

뿐만 아니다. 최근 UCLA의 톰슨 교수 팀은 여러 명의 일란성 쌍둥이와 이란성 쌍둥이들의 뇌를 MRI를 찍어 서로 비교해 보았다. 그들은 특히 지능과 관련이 깊은 전두엽과 측두엽의 회백질 분포 상태를 자세히 비교하였다. 그 결과 일란성 쌍둥이는 95% 이상에서 이 분포가 동일한 반면 이란성 쌍둥이에서는 별로 비슷하지 않았다.

즉 일란성 쌍둥이는 그 모습이 비슷한 것처럼 뇌의 해부학적 모양도 거의 동일하며, 그렇다면 뇌의 기능, 즉 지능도 비슷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이런 결과로 볼 때 우리의 지능에 유전적 요소가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의 뇌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교육과 환경에 의해 유연하게 회로를 이루며 발달한다.

따라서 우리의 지적 능력은 꾸준한 교육과 노력에 의해 계발되며, 또한 적절한 영양관리, 충분한 수면, 명랑한 주변 환경에 의해 극대화될 수 있다. 반면 머리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교육과 환경이 뒷받침해 주지 못하거나 우울증 같은 정서장애에 시달린다면 훌륭한 지적 능력을 갖기 어렵다.

뿐만 아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지능이 인간의 지적 능력을 모두 반영하는 것도 아니다. 특히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원리를 세우는 능력, 즉 창조성은 학교 성적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다.

과학의 천재인 에디슨이나 아인슈타인은 국어 과목,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드는 음악 과목, 미술의 천재 피카소는 그림을 제외한 모든 과목에 낙제생이었다.

수능시험을 잘못 본 학생들도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개발하지 못한 이유가 있거나, 혹은 숨겨진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니 희망을 갖기 바란다.

/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
* 본 칼럼의 내용은 헬스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산병원의 신경과 김종성교수와 함께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뇌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