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에게 듣는 '질환' 이야기
갑자기 변이 까맣습니다. 위험한가요?
서울부민병원 응급의료센터
박억숭 과장
소화기계 질환
소화불량이나 복통 등으로 병원을 방문하면 보통 “오늘 아침 대변은 어땠나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대변의 크기, 모양, 색깔은 건강 상태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아침에 본 변의 색이 마치 ‘짜장’처럼 까맣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적혈구와 대변 색’ 그리고 ‘상부위장관 출혈’에 대해 알고 있다면, 흑색 변의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적혈구와 대변 색
산소를 실어 나르는 적혈구의 주성분은 헤모글로빈이다. 헤모글로빈은 철을 품고 있는 헴(heme)이라는 고리와 글로빈(globin)이라는 단백질 사슬로 구성되어 있다. 적혈구는 120일 정도 산소를 나르는 역할을 하다 간이나 지라에서 큰 포식 세포(macrophage)에 의해 제거된다. 먼저 철을 제외한 헴 분자는 빌리베르딘(biliverdin)을 거쳐 빌리루빈(bilirubin)으로 바뀐다. ‘담즙(bile)에 섞여 분비된 빌리루빈’은 장에 존재하는 세균의 작용으로 유로빌리노겐(urobilinogen)이 되면서 분변과 함께 배출된다. ‘누렇게 보이는 분변의 색’은 유로빌리노겐이 산화된 스테르코빌린(stercobilin) 때문이다. ‘흑색 변(melena)’은 거의 짜장처럼 까만 변을 의미한다. 적혈구의 단백질인 헤모글로빈이 위산과 반응하면 헤마틴(hematin)으로 변하면서 변이 까맣게 된다. 결국, 대변의 색깔은 ‘적혈구의 생명 주기’와 ‘위장관 출혈’, 피와 직접 연관되어 있다.
상부위장관 출혈
상부위장관 출혈은 보통 ‘식도, 위, 십이지장’의 출혈을 의미한다. 토혈(hematemesis)과 흑색 변(melena)은 상부위장관 출혈을 의심하는 대표적인 증상이다. 구토와 동반된 토혈은 기침과 동반하는 객혈(hemoptysis)과 구별된다. 상부위장관 출혈의 가장 많은 원인은 위궤양 출혈이다. 그리고 간 경화증 환자에서 식도정맥류의 파열과 구토에 의한 식도(말로리-바이스) 손상 등이 있다.
출혈의 양이 많으면 위산과 만날 시간이 없어 소위 ‘피똥’이라 불리는 혈변(hematochezia)이 나타난다. 토혈과 흑색 변으로 병원을 방문하면 먼저 활력 징후를 확인한다. 토혈, 객혈, 흑색 변, 혈변에 대한 구체적인 ‘병력 청취’가 중요하다. 영상 촬영과 혈액검사로 환자 상태를 파악한다. 보통 콧줄이라 불리는 비위관(L-tub)을 삽입하여 차가운 물로 위장을 씻어 내면서 출혈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직장 손가락 검사(rectal digital examination)로 환자가 말하지 못한 흑색 변 유무나 혈변의 상태를 확인할 수도 있다. 어디서 출혈이 있는지 확신이 들면 내시경을 사용하여 병변을 확인하고, 지혈(clipping) 등 시술한다. 만약 내시경 시술로 해결되지 않는 출혈이라면 응급수술을 고려할 수 있다.
최근 대변 이식이 장염 치료에 사용될 정도로 ‘건강한 대변’에 대한 관심이 많다. 실제 대변의 크기, 모양, 색깔은 건강 상태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섭취하는 음식에 따라 대변의 색깔이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심하게 검거나 밝은 선홍색이라면 꼭 병원을 방문하여 상담하고 검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침마다 만드는 창조물(?)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진다면, 조금 더 건강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