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산부인과학회 벼랑 끝 분만실 경고… '국가 책임제' 강화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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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250개 시군구 중 분만 기관이 없거나 한 곳뿐인 '위기 지역'은 137곳으로 전체 54.8%에 달한다.​/사진=​구교윤 기자
"돈을 못 버는 것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감옥에 가야 한다고 하면 누가 분만을 하겠습니까."

이재관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고려대 구로병원)이 최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붕괴 직전 분만 인프라 현황을 전하며 던진 일갈이다. 이 이사장은 "산부인과 의사 자체가 없지만 그중에서도 분만대를 지키려는 의사는 전멸 수준"이라며 "이제 분만 인프라는 국방이나 소방처럼 국가 존립이 걸린 '국가 안전 시스템'으로 간주하고 전격 재정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분만 기피 1순위 '형사 처벌 공포'… "사법 리스크 해소가 핵심"
현재 우리나라 분만 인프라는 지역별 진료 공백이 점차 심화하고 있다. 학회에 따르면 전국 250개 시군구 중 분만 기관이 없거나 한 곳뿐인 '위기 지역'은 137곳으로 전체 54.8%에 달한다. 2013년 706개소였던 분만 기관은 2023년 424개소로 10년 사이 약 40%가 급감했다. 산부인과 간판은 걸려 있으나 분만실을 폐쇄한 곳도 수두룩하다.

학회는 산부인과 기피 현상 원인 80% 이상이 의료 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 부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이사장은 "산부인과는 특성상 의료 사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최근 무과실 사고임에도 형사 고소가 남발되고 1심에서 24억 원을 선고하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며 "20년 넘게 공부하고 현장을 지킨 의사들이 통계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사고로 잠재적 범죄자가 되는 현실을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학회는 분만 인프라 붕괴를 막기 위해 불가항력 의료사고(산후 출혈, 폐색전증, 양수색전증 등)에 대한 국가 책임 보상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형사 기소를 자제할 수 있는 사법 가이드라인 마련 ▲민사 소송 부담 완화 체계 구축을 정부에 강력히 요구했다.


◇고위험 분만 수가 500% 인상안 제안… 권역외상센터 모델 도입
학회는 합리적인 보상을 위한 구체적인 수가 개선안도 제안했다. 특히 고위험 분만 등급을 3단계 또는 5단계로 세분해 난이도에 따른 차등 보상을 시행할 것을 제시했다. 현재 일괄 적용되는 포괄수가제(DRG) 체계로는 태반조기박리, 전치태반, 다태임신 등 고난도 수술에 투입되는 의료 자원과 위험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또 과거 권역외상센터에 대대적으로 투자해 예방 가능 외상 사망률을 30%에서 9.1%로 낮췄던 성공 사례를 언급하며 분만 분야에도 이와 같은 모델을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분만 기관 고정비를 국가가 보전하고 '고위험 산모·신생아 통합 치료 센터'를 중심으로 지역 간 이송 및 대응 체계를 실질적으로 가동해야 한다는 취지다.

김희선 대한산부인과학회 보험이사(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는 "현재 복지부에 고위험 등급을 나눠 수가 가산을 제안한 상태"라며 "가장 난도가 높은 3등급의 경우 수가를 500% 인상하고 그 외 등급은 300% 수준으로 상향해달라고 요청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단순히 수가를 올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지역 인프라 유지를 위해 의사 외 진료 보조 인력에 대한 지원과 인건비 직접 보전 방식도 필요하다"며 "권역별로 환자가 병원을 찾아 헤매지 않도록 실행 체계를 구축하고 인력이 현장을 떠나지 않게 하는 실질적인 유인책이 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구교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