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人터뷰]
소아외과 한석주 교수,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것이 최고의 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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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하는 한석주 교수./사진=최소라 기자
조두순 사건 피해자 나영이의 주치의, 영남제분 여대생 청부살인 사건 가해자의 황제 수감 실태를 폭로한 제보자, 고유정 의붓아들 사망 사건의 전문 감정인, 담도폐쇄증 명의. 한석주(66) 전 세브란스병원 소아외과 교수를 이야기할 때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이력들이다.

이러한 이력이 증명하듯, 그의 메스는 수술실에만 머물지 않았다. 수많은 소아의 생명을 살리는 동시에 감춰진 진실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 바로잡았다. 30여 년간 희귀·난치 질환 환아를 치료하다, 지난해 정년 퇴임 후 서울고등법원 상임전문심리위원으로 활동하는 그를 만나 이야기 나눴다.

◇수술실과 법정 오가며 ‘의학 전문가’로 활약
한석주 교수는 30년간 소아외과 의사로 일생에 한 번 경험하기 쉽지 않은 다양한 수술과 사건들을 경험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샴쌍둥이 분리 수술과 나영이 인공항문 수술이다. 영남제분 여대생 청부살인 사건 제보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국내에는 샴쌍둥이 분리 수술, 특히 흉복부결합형 융합쌍생아 분리수술 성공 사례가 많지 않았다. 가슴이 붙어 있는 흉부결합형은 머리가 붙어 있는 경우 다음으로 수술이 까다롭다. 세계적으로 13쌍의 쌍생아 중 9쌍만이 분리 수술을 받았으며 그중 5쌍만이 생존했다. 이에 한 교수는 수술 전까지 국제학술지에 발표된 관련 논문을 모두 검토하고, 아이들의 임상 데이터를 논문 저자들과 공유하는 등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쌍둥이 분리 수술에 성공할 수 있었다.

나영이 인공항문 수술은 모두가 안 된다고 하던 일을 현실로 만든 수술이다. 당시 나영이는 2008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에서 일어난 일명 ‘조두순 사건’에 의해 영구적으로 인공장루를 달고 살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한 교수의 생각은 달랐다. 장루 없이도 충분히 새 항문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소장이 대장의 역할을 일부 대신하게 하면서도 항문을 복원하는 수술을 진행했고, 나영이의 일상 회복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었다.

영남제분 여대생 청부살인 사건은 그가 처음 제보자로 나선 사건이다. 2002년 영남제분 회장의 아내가 여대생을 청부살인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당시 가해자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도 허위 진단서에 의해 교도소 대신 병원 특실에서 생활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한석주 교수는 언론 제보, 법정 증언 활동 등을 통해 사건의 진실을 알리기 시작했다. 내부고발자로 병원에서 따가운 시선을 받기도 했지만, 그는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해 끝까지 갔다. 그 결과, 해당 사건이 국민에 알려지고 법무부가 형집행정지제도의 악용을 막기 위해 여러 제도적 개편을 단행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담도폐쇄증’을 앓는 수많은 환아의 생명을 살린 명의이기도 하다. 한 아이라도 더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직접 홈페이지를 운영하며 환자 및 보호자와 소통했다. 함께 희망을 찾던 인연이 담도폐쇄증 환우회(담우회)의 활발한 활동으로도 이어졌다. 활동의 일환으로 지난달 21일 한국희귀난치성질환 연합회관에서 담도폐쇄증에 대해 이해하는 행사와 한 교수의 신간 사인회가 개최되기도 했다.

◇한석주 교수와의 대화
-지난해 정년 퇴임했다. 소감이 어떤가? 
“시원섭섭하다. 아무래도 의사 생활을 할 때는 계속 긴장하고 살았다. 수술을 하고도 쉬이 마음을 놓을 수 없어 전화기 옆에 붙어 있다가 밤에도 전화받고 나가는 게 일상이었다. 퇴임하고 나서야 조금 마음을 놓을 수 있게 됐는데, 그래도 30년 동안 하던 일을 하지 않으니 섭섭하고 아쉬운 마음이 든다.”


-퇴임 후 ‘내 생애 최고의 수술’을 출간했다? 
“한 번쯤 인생을 정리해 보려고 했다. 마침,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환자 보호자 중 한 분이 출판사를 운영해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또 인생을 독특하게 산 편인데, 알려진 정보 중 왜곡돼 있거나 진실과 좀 떨어져 있는 것들이 있다. 그런 것들의 사실관계를 바로잡고 싶었다. 무엇보다 환자와 독자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책 수익금 일부를 모아서 좋은 일에 쓰기로 했다. 독자 차원에서는 이 책이 의사에 대한 생각을 바꾸거나 정의감을 갖고, 좋은 의사들이 생겨나는 데 기여했으면 좋겠다. 최근 외상 외과 의사를 꿈꾸는 본과 학생으로부터 책을 집필해 주어 고맙다는 메일을 받았다. 이 학생처럼 뜻을 가지고 정진하는 후배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

-쉬운 길보다 어려운 길을, 안전한 일보다 의미 있는 일을 선택해 왔다. 지금까지의 선택을 관통하는 ‘기준’이 있다면?
“호기심을 따랐다.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다. 무언가 이해가 안 되거나 억울한 일이 생기면 그냥 넘기지 못하고 스스로 공부해서 이유를 확인해야 직성이 풀린다. 한번 옳다고 판단하면 끝까지 밀고 나가는 성격도 선택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시간이 걸리지만, 일단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다.”

-소아외과를 선택한 이유도 비슷한 맥락인가? 
“맞다. 이러한 성향 덕에 처음부터 외과를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외과 치료는 말 그대로 ‘일도양단(一刀兩斷)’이다. 외과는 환자를 가장 직접적으로 치료하는 분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반 외과를 보면 특정 질환을 반복적으로 수술하는 경우가 많다. 위암이면 위암, 대장암이면 대장암처럼 같은 수술을 계속하게 된다. 그런데 소아외과는 다르다. 정형외과나 신경외과, 심장외과를 제외하면 아이들에게 생기는 대부분의 외과 질환을 다룬다. 오늘은 방광 수술을 했다가 다음 날은 폐 종양을 떼어내는 식으로 수술 내용이 계속 달라진다. 수술이 끝나면 또 새로운 질환을 공부해야 한다. 다른 과에 비해 수술 건수가 많지는 않지만 매번 다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이 재미있어 소아외과를 선택했다.”

-소아외과 의사로서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은? 
“건강하게 자란 환자와 다시 만난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예전에 식도가 막힌 채 태어난 아이 세 명을 치료한 적이 있다. 상태가 위중해 두 달 가까이 병원에서 지내며 치료를 해야 했다. 건강하게 퇴원 후 시간이 지나 외래에서 한 아이를 다시 만난 적이 있다. 아이가 훌쩍 자라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다. 아이의 어머니를 보고서야 그때 중환자실에 있던 아이 중 한 명이라는 걸 알게 됐다. 죽음의 문턱에 있던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 또래들과 다르지 않게 생활하는 모습을 보니 ‘이 일을 할 가치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소아외과는 단순히 재미있는 분야를 넘어, 의미 있는 일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수많은 희귀질환 환아를 수술로 살린 의사이자, 새로운 수술 기법을 국내에 최초로 도입하는 등 소아 외과 수술의 지평을 넓힌 의사로 꼽힌다. 그동안 진행한 수술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수술은? 
“샴쌍둥이 분리 수술이다. 분리 수술에는 성공했지만, 입원 과정에서 한 아이는 잃고 다른 아이는 뇌성마비가 왔다. 수술 결과와 별개로 아이에게 어려운 삶을 남긴 게 마음에 걸려 지금까지도 놓지 못하고 있다. 사실 의사들은 보통 ‘이긴 게임’은 복기를 잘 하지 않는다. 결과가 좋으면 논문을 쓰거나 성과로 정리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던 수술은 계속 머릿속에 남는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다른 방법은 없었는지 스스로 계속 되짚어 보게 된다. 당시 공부를 하면서 수술 방법을 검토해보니 가슴과 복부가 넓게 붙어 있는 상태라 단순히 당겨 봉합하는 방식으로 수술을 진행하면 호흡 문제가 생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부를 확장시키거나 인공물질을 활용해 덮는 방법 등을 고민했지만, 현실적인 여건 등을 고려해 실제 수술은 예상과 다른 방식으로 진행됐다. 당시에도 ‘이 방법이 맞는가’ 하는 고민이 있었기 때문에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아마 가장 젊었을 때 경험한 가장 안타까운 수술이어서 더 기억에 남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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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석주 교수의 의사생활을 담은 책 '내 생애 최고의 수술'이 출간됐다. /사진=담우회 제공
-책의 제목이기도 한 ‘내 생애 최고의 수술’을 꼽는다면?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수술은 모두 내 생애 최고의 수술이라고 생각한다. 나영이 수술이 떠오른다. 심각한 손상 때문에 평생 인공항문을 달고 살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배변 주머니를 평생 사용해야 했고 경제적 부담도 상당했다. 하지만 수술을 통해 그 아이가 배변 주머니를 사용하지 않고 살게 됐다. 평범한 일상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 희망이 생긴 것이다. 그런 순간이야말로 의사에게 가장 의미 있는 순간이다. 사실 이 수술은 특수한 경우다. 다른 일상적인 수술도 내게는 의미가 크다. 예를 들어 어떤 환자가 암이 많이 진행돼 수술이 어렵다는 말을 듣고 좌절한 상태에서 찾아왔는데, 다시 수술과 치료를 시도해 보자고 제안했을 때 환자에게는 희망이 생긴다. 그리고 실제로 치료가 잘 돼 10년, 20년을 재발 없이 살아간다면 그것 역시 내게는, 그리고 그 환자에게는 최고의 수술이다. 결국 의사에게 최고의 수술이라는 것은 따로 정해진 하나의 사례가 있는 것이 아니다. 환자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 수술이라면, 그 모든 수술이 ‘내 생애 최고의 수술’이라고 생각한다.”

-실력 있는 의사란?
“해결되지 않은 환자를 해결하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의사가 실력 있는 의사라고 생각한다. 해결되지 않은 환자가 있는데도 그를 치료하려고 공부하거나 노력하지 않는 의사는 실력이 없는 의사다. 노력 없이 거짓으로 쌓은 명성은 결국 발각된다. 다만, 의사를 판단할 때 무작정 결과만 놓고 판단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어려운 수술이라도 일단 최선을 다해 환자를 살리려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

-수술 이후에도 환자 및 보호자와 꾸준히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의사와 환자, 보호자의 관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같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의사, 환자, 보호자 모두 목표가 같다. 환자를 치료하다 보면 보호자가 의사의 선택을 마음에 차지 않아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저는 같은 편에 서서 믿어달라고 했다. 오래 본 환자와 보호자도 많아서 지금은 가족이라는 생각도 든다. 특히 담도폐쇄증 환우회인 ‘담우회’와 오래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모든 데이터가 모이기 때문에 수술 관련 정확한 데이터가 나오지만, 그전까지는 정확하게 데이터를 만들기 어려웠다. 그런데 그때 현재 담우회 회장을 맡고 있는 보호자가 우리 병원뿐 아니라 전국 수술 데이터를 모아서 공유해 큰 도움이 됐다. 더 나아가 ‘스피커’ 역할도 했다. 질환 치료를 위해서는 적기에 치료를 받는 게 중요하다. 대변 색깔에 따른 의심 증상 등 질환 관련 중요한 정보를 환자와 대중에 알리는 역할을 담우회에서 도왔다.”

-환자 치료뿐 아니라 치료 환경과 제도 개선에도 힘써왔다. 왜 이런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나?
“아이를 수술하는 일을 하다 보면 의료 행위 자체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현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예를 들어 아이가 선천성 질환으로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으면, 부모는 치료 여부를 결정하기 전에 경제적 부담과 가족의 삶이 어떻게 바뀔지를 먼저 고민하게 된다. 치료가 길어지면 아이는 장기간 입원해야 하고, 부모 중 한 명이 직장을 그만두고 병원에서 생활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치료비 부담이나 돌봄 문제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또 가족 간 의견이 갈리면서 가정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도 적지 않게 목격했다. 그래서 환자를 치료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됐다. 치료가 성공적으로 끝나기 위해서는 제도적·사회적 환경이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 국가와 사회의 지원 체계가 갖춰지면 부모는 아이를 살리는 선택에 집중할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치료뿐 아니라 제도와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봤다.”


-현재는 서울고등법원 상임전문심리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가?
“재판부의 의학적 판단을 돕는 역할을 한다. 재판은 어떤 사안을 판단하기 위해 그 내용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복잡한 의학적 내용을 짧은 시간 안에 충분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이때 전문가로서 재판부의 판단을 보조하는 사람이 바로 전문심리위원이다. 사건 기록을 검토하고 의료 행위나 치료 과정에서 쟁점이 되는 의학적 부분을 분석해 재판부에 설명한다. 예를 들어 의료감정서가 제출된 사건에서 당사자가 감정 내용에 문제를 제기하면, 재판부가 전문심리위원에게 해당 감정에 대한 의견을 묻는다. 전문심리위원은 이를 의학적 관점에서 검토해 설명하고 재판부는 그 의견을 참고해 최종 판단을 내린다. 즉, 전문심리위원은 재판부가 전문적인 의학 정보를 이해하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 역할을 하는 자리다.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최대한 사건과 관련된 모든 기록을 살펴보는 편이다. 그 과정에서 간접적으로 얻는 경험이 굉장히 많다. 또 오히려 감정을 하면서 학생이나 의사 생활을 할 때 놓쳤던 것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앞으로의 목표는?
“의료 현장에서는 의료 소송, 자문, 감정 등 법률과 연결되는 일이 적지 않지만, 정작 의과대학에서는 이에 대한 교육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대부분 별도의 교육 없이 스스로 공부하며 대응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이런 내용을 제대로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모교에서부터라도 관련 교육을 시작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의료 소송과 감정, 자문 등 의료와 법이 만나는 지점을 정리한 교재가 아직 없는 만큼, 관련 내용을 책으로 정리해 보는 것도 목표 중 하나다.

또 하나의 바람은 젊은 의사들이 처음 의대에 들어올 때 품었던 꿈을 쉽게 접지 않도록 돕는 것이다. 의료 소송이나 필수의료 분야는 어렵고 부담이 큰 영역이라 선뜻 나서려는 사람이 많지 않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자리에 서야 한다. 사회가 의사에게 일정한 역할과 책임을 맡기고 있는 만큼, 이러한 분야에 도전하는 일이 지나치게 손해이거나 희생으로만 여겨지지 않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의사로 기억되고 싶은가?
“말 그대로 ‘좋은 의사’로 남고 싶다. 환자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 의사 말이다.”


최소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