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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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클립아트코리아
약이나 의료기기에도 ‘짝퉁’이 있다. 판매 허가를 받지 않은 자에 의해, 제품이 비공식적으로 유통되는 시장을 일명 ‘그레이 마켓’이라고 한다. 제약·의료기기 기업뿐 아니라 소비자에게도 피해를 유발할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그레이 마켓은 공식 유통망 바깥에서 암암리에 물건이 거래되는 시장을 일컫는다. 위조 상품이 정품으로 둔갑해 거래될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의약품과 의료기기 위조품은 효과와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아 심각한 부작용이나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질병의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게 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제약·의료기기 기업에도 막대한 손해를 일으킨다. 제약·의료기기는 온도와 습도 등 사용 조건이 엄격히 관리돼야 제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러나 불법 유통 과정에서 변질된 약을 복용하거나 그러한 제품을 이용한 시술을 받고서 부작용이 생길 경우, 그 타격은 정품 약과 기기 브랜드에까지 전해진다. 브랜드 침해 모니터링 AI 플랫폼 마크비전의 이성민 선임매니저는 “해당 제품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제약·의료기기사가 손상된 브랜드 신뢰도를 회복하는 데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지출해야 할뿐더러, 위조품으로 인한 부작용 때문에 억울한 법적 책임 공방에 휘말릴 소지도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제약·의료기기 그레이 마켓은 크게 세 경로로 형성된다. 첫째는 비공식 유통망을 통한 재판매다. 유통 허가를 정식으로 받지 않은 개인이나 업체가 온·오프라인의 비공식 경로를 통해 제품을 수집한 뒤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둘째는 병행 수입이다. 특정 국가용으로 책정된 저가 물품을 확보한 다음 타국으로 역수입하는 방식이다. 셋째는 해외 불법 유통이다. 소셜미디어나 다크웹 등을 통해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만 복용할 수 있는 전문 의약품을 해외에서 불법으로 수입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현재 국내의 제약·의료기기 그레이 마켓 규모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부분적인 통계가 몇 가지 존재할 뿐이다. 헬스케어 분야의 불법 해외 직구 총액이 그중 하나다. 관세청에 따르면 해외직구 악용 사건 중 약사법, 식품위생법, 건강기능식품법, 화장품법, 의료기기법 등을 위반한 보건사범 관련 사건의 총액은 2021년 85억 원, 2022년 91억 원, 2023년 116억 원으로 계속 증가했다. 이후로는 상승세가 한풀 꺾이며 2024년 59억 원을 기록했으나 여전히 작지 않은 규모다. 2025년 전체 단속 규모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지난해 9월까지 집계된 것만 19억 원이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역시 사이버조사단을 통해 헬스케어 분야의 불법 유통이나 허위 광고에 관련된 온라인 게시글을 단속하고 있다. 2024년 기준으로 의약품에서 1만6051건, 의료기기에서 4075건, 건강기능식품에서 5475건의 온라인 부당 행위를 적발됐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식약처가 적발한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위조 상품과 불법 유통 관련 게시글이 온라인에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 마크비전이 일부 제약·​의료기기 브랜드 제품을 기준으로 그레이 마켓 규모를 자체 파악한 결과, 위조 상품은 2025년 기준으로 19만 3669건, 그레이마켓 유통 사례는 2만 1677건으로 확인됐다. 

세계보건기구는 “비공식 유통 경로에서는 품질 미달의 위조 의약품과 의료기기 유통이 잦다”며 “유효성분 또는 용량이 잘못돼 환자에게 효과가 없을 수 있으며 때로는 치명적 물질을 함유해 건강에 직접적인 위해를 가할 수 있으니 공식 유통 허가를 받은 판매자에게서 의약품과 의료기기를 구매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성민 선임매니저는 “법을 준수하며 정식 제품을 유통하는 공식 파트너사들이 그레이 마켓 공급자들과 경쟁하다 보면 수익성이 악화돼, 장기적으로는 제약·의료기기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다”며 “위조 의약품·의료기기를 비롯해 전 세계 온라인상에 뿌려진 불법 유통 제품에 대한 소비자 관심과 기업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해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