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는 모임과 약속이 잦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고열량 음식을 많이 먹게 된다. 가끔 과식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런 식습관이 반복되면 뇌와 몸 건강 전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전문가의 경고가 나왔다.
영국 온라인 진료 서비스 '인디펜던트 파머시'의 수석 임상 자문가이자 전문의인 도널드 그랜트 박사는 지난 22일(현지시간) 영국 매체 '더선'과의 인터뷰에서 "과식은 단순히 체중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뇌 기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과식, 뇌 기능과 기억력에도 영향
그랜트 박사는 2012년 하버드대 연구를 인용해 "고열량 식단은 인슐린 저항성을 유발해 장기적으로 기억력 저하나 인지 기능 장애 위험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인슐린 저항성이란 혈당을 조절하는 호르몬인 인슐린에 세포가 제대로 반응하지 않는 상태로, 혈당이 쉽게 높아지는 것이 특징이다.
당뇨병이 없는 사람이라도 인슐린 저항성이 지속되면 당뇨병 위험이 커지고, 뇌 기능 저하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고지방 식단을 며칠만 유지해도 쥐의 기억을 담당하는 뇌 회로가 변화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지방은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영양소지만, 문제는 섭취량과 종류다. 전문가들은 버터, 치즈, 감자칩, 페이스트리, 케이크, 생크림, 코코넛오일 등에 많이 들어 있는 포화지방을 자주 과다 섭취하는 식습관이 뇌와 신체에 부담을 준다고 경고한다. 고열량·고지방 음식을 먹으면 기억을 담당하는 뇌 부위인 해마가 과도하게 활성화돼 정보 처리 기능이 떨어질 수 있으며, 스페인 로비라 이 비르길리대 연구에서는 고지방 식단이 알츠하이머병 위험 증가와 연관될 가능성도 제시됐다.
◇몸 전체에 악영향… 스트레스·수면 문제로 이어져
과식의 영향은 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랜트 박사는 "과식은 호르몬 균형을 깨뜨려 스트레스를 높이고, 기분을 가라앉게 하며, 전반적인 삶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스트레스와 우울감이 다시 과식을 부른다는 점이다. 이런 상태가 반복되면 고지방·고당분 음식에 더 쉽게 끌리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
소화기 건강에도 부담이 된다. 과식은 메스꺼움, 위산 역류, 속 쓰림, 피로감은 물론 복부 팽만 같은 소화기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혈당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악화시켜 비만, 심장병, 고혈압, 뇌졸중 같은 만성 질환 위험을 높인다.
또한 과식은 장내 미생물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다. 장내 세균 불균형은 설사 같은 소화 문제뿐 아니라 피부 질환, 우울증·불안장애 등 정신 건강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면역 기능이 약해져 감염성 질환에 더 취약해질 수 있고, 소화 과정에 부담이 커지면서 수면의 질도 떨어질 수 있다. 수면 부족은 다시 피로와 스트레스, 집중력 저하로 이어진다.
◇과식과 폭식은 다르다… '가끔'과 '반복'의 차이
그랜트 박사는 "연말이나 명절처럼 특별한 시기에 한두 번 과식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중요한 것은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식습관과 생활 리듬을 다시 바로잡는 것"이라며 "규칙적인 운동과 균형 잡힌 식사가 도움이 된다"고 했다.
다만 과식과 폭식은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과식은 이미 배가 부른 상태에서 음식을 조금 더 먹는 비교적 흔한 행동을 말한다. 반면 폭식은 짧은 시간 안에 통제력을 잃고 과도한 양의 음식을 반복적으로 먹는 상태로,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동반한다. 폭식은 단순한 식습관 문제가 아니며, 스스로 조절하기 어렵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