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치료에 돌입한 췌장암 시한부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가족돌봄휴직’을 사용한 적 있는 권이안(32)씨. 그는 휴직 후 직장 대신 ‘병원 출퇴근’을 시작했다. 돌봄휴직을 사용하기 전에 권이안씨는 주4일, 하루 12시간씩 직장 교대근무를 하고, 퇴근 후에 병원을 방문해 어머니를 돌본 다음 집안일까지 했다. 휴직 후부터는 어머니의 항암 치료 일정에 맞춰 입·퇴원에 동행하고 기본적인 생활과 회복을 도왔다. 권이안씨는 “휴직으로 쉴 시간이 생겼다기보다는, 주 역할이 바뀐 것에 가까웠다”며 “정신적 긴장은 여전히 있었지만, 그래도 내가 곁에 머무니 어머니가 안정돼서 돌봄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자신의 일과 돌봄, 어느 하나도 허투루 포기할 수 없는 직장인들에게 가족돌봄휴직은 유일한 희망으로 보인다. 간병·돌봄이 필요한 가족 구성원의 진단서와 가족관계증명서 등 서류를 제출하고 회사 승인을 받으면, ‘내가 돌아갈 일자리’를 유지하면서도 돌봄에 전념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다. 그러나 이 희망의 지속 시간은 짧고, 나름의 대가도 따른다.
◇짧은 휴직 끝나면, 다시 일과 돌봄 병행
교육공무원은 ‘교육공무원임용령’에 따라 한 번에 최장 1년, 사기업에서는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연간 최장 90일의 가족돌봄휴직을 사용할 수 있다. 이 기간 안에 돌봄이 마무리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소아 백혈병을 진단받은 자녀를 돌보기 위해 가족돌봄휴직을 쓴 교육공무원 한모씨는 “백혈병은 대략 3년의 치료가 필요하며, 내가 1년은 가족돌봄휴직으로, 나머지 1년은 육아 휴직으로 총 2년을 쉬었음에도 아직 치료가 남았다”고 말했다. 남은 치료는 한씨의 배우자가 휴직을 이어가면서 도울 예정이다. 권이안씨는 “휴직 기간이 끝나 복직하니, 근무조가 변경되며 업무가 바뀌어 새로 배워야 하는 것이 많았다”며 “일에 다시 적응하면서 돌봄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점이 벅찼다”고 말했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간병하려 가족돌봄휴직을 쓴 대기업 사무직 안소정(33)씨는 가족돌봄휴직을 ‘제2의 육아휴직’에 빗댔다. 그러나 법이 보장하는 육아휴직은 자녀 한 명당 1년 6개월인 반면, 가족돌봄휴직은 1년에 90일에 불과하다. 가족돌봄휴직 제도가 잘 갖춰진 독일에 비해서도 짧은 편이다. 2024년 한국노동연구원 ‘일·생활 균형을 위한 가족 돌봄 지원제도 국제 비교 연구’에 따르면 독일은 가족 돌봄을 위한 휴직 제도로 최대 3개월의 ‘임종 전 돌봄휴직’과 최대 6개월의 ‘가족돌봄휴직’이 있다.
◇“생계 포기하고 돌봄 택한다” 휴직 내내 무급
휴직 기간 내내 무급인 것도 부담이다. 고용주가 가족돌봄휴직 중인 근로자에게 임금을 제공할 의무가 없다. 한씨와 권씨 그리고 안씨 모두 가족돌봄휴직 기간에 무급이었다. 권이안씨는 “병원비와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해 사소한 지출까지 최대한 줄이며 버텨야 했다”며 “생계를 포기하고 돌봄을 선택해야 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이 제도의 한계를 느꼈다”고 말했다. 안소정씨는 “휴직 기간에는 무급이기 때문에, 휴직 약 3개월부터 비상금을 조금씩 마련했다”며 “나의 경우 부모님의 노후 준비가 되어있어 병원비 부담이 없었지만, 만일 내가 부모님 병원비와 간병비까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경제적 부담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육아휴직 시에는 정부가 고용보험 기금에서 육아휴직 급여를 제공한다. ▲1~3개월째에 상한 250만 원, 통상임금 100% ▲4~6개월째에 상한 200만원, 통상임금 100% ▲7개월 이후로부터는 상한 160만원, 통상임금 80%이다.
일본은 돌봄휴직 기간에 고용주가 임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것은 한국과 같으나 고용보험으로 돌봄휴업급부금(임금의 67%)을 제공한다. 스웨덴은 최대 100일간 가족돌봄휴가를 사용할 경우 사회보험을 통해 평균적으로 급여의 80%를 보전한다. 독일도 무급이 원칙이나 휴직 기간에 무이자 대출을 지원해준다.
◇‘돌봄 보장 체계 강화’ 방향으로 가야
돌봄휴직 사용자들은 휴직 가능 기간이 길어지고, 그 기간에 임금 일부가 보전된다면 돌봄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고 봤다. 권이안씨는 “돌봄휴직은 ‘배려’가 아니라, 누구나 삶에서 한 번쯤은 필요해질 수 있는 사회적 안전 장치라고 생각한다”며 “이 기간에 최소한의 소득이 보전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안소정씨는 “일할 때의 소득보다 간병비가 더 비싸서 어쩔 수 없이 휴직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며 “육아 휴직 때만큼은 아니어도, 일정 부분 기본급이 지급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돌봄휴직을 보다 자유로이 쓸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었다. 한모씨는 “항암 치료 중인 자녀를 돌보겠다는 분명한 휴직 사유가 있는데도, 두 번째로 신청할 때에는 ‘계속해서 치료를 해야하는 이유’와 ‘치료 일정’ 등 구체적 근거를 의사의 소견서와 함께 제출하라고 요구받았다”며 “육아휴직처럼 돌봄휴직도 신청서를 써서 요청하면 승인되는 방식이 자리잡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권이안씨는 “회사에서 휴직 사용을 직접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정말 휴직이 필요한 일이느냐’고 묻는 듯한 주변 시선에 눈치가 보였다”며 “개인 사정을 변명하듯 설명해야 했던 상황들에 마음이 무거워졌다”고 말했다.
다만, 간병 휴직 사용 시 임금의 일부분을 보장하면, ‘가족 일원이’ 자신의 일을 쉬면서 가족의 간병을 온전히 담당하게 하는 현재의 구조가 굳어질 위험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사회가’ 돌봄을 부담하는 돌봄 보장 체계를 강화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라는 것이다.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양난주 교수는 “휴직에 대해 보상을 하더라도 본래 임금보다는 금액이 적을 것이고, 이는 장기적으로 해당 가구의 경제적 안정을 해칠 뿐 아니라 휴직자의 노후 소득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장기 요양 등의 사회 서비스와 병원에서 입원 환자의 간병까지 책임지는 간호 간병 통합 서비스를 전면 확대해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자신의 일과 돌봄, 어느 하나도 허투루 포기할 수 없는 직장인들에게 가족돌봄휴직은 유일한 희망으로 보인다. 간병·돌봄이 필요한 가족 구성원의 진단서와 가족관계증명서 등 서류를 제출하고 회사 승인을 받으면, ‘내가 돌아갈 일자리’를 유지하면서도 돌봄에 전념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다. 그러나 이 희망의 지속 시간은 짧고, 나름의 대가도 따른다.
◇짧은 휴직 끝나면, 다시 일과 돌봄 병행
교육공무원은 ‘교육공무원임용령’에 따라 한 번에 최장 1년, 사기업에서는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연간 최장 90일의 가족돌봄휴직을 사용할 수 있다. 이 기간 안에 돌봄이 마무리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소아 백혈병을 진단받은 자녀를 돌보기 위해 가족돌봄휴직을 쓴 교육공무원 한모씨는 “백혈병은 대략 3년의 치료가 필요하며, 내가 1년은 가족돌봄휴직으로, 나머지 1년은 육아 휴직으로 총 2년을 쉬었음에도 아직 치료가 남았다”고 말했다. 남은 치료는 한씨의 배우자가 휴직을 이어가면서 도울 예정이다. 권이안씨는 “휴직 기간이 끝나 복직하니, 근무조가 변경되며 업무가 바뀌어 새로 배워야 하는 것이 많았다”며 “일에 다시 적응하면서 돌봄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점이 벅찼다”고 말했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간병하려 가족돌봄휴직을 쓴 대기업 사무직 안소정(33)씨는 가족돌봄휴직을 ‘제2의 육아휴직’에 빗댔다. 그러나 법이 보장하는 육아휴직은 자녀 한 명당 1년 6개월인 반면, 가족돌봄휴직은 1년에 90일에 불과하다. 가족돌봄휴직 제도가 잘 갖춰진 독일에 비해서도 짧은 편이다. 2024년 한국노동연구원 ‘일·생활 균형을 위한 가족 돌봄 지원제도 국제 비교 연구’에 따르면 독일은 가족 돌봄을 위한 휴직 제도로 최대 3개월의 ‘임종 전 돌봄휴직’과 최대 6개월의 ‘가족돌봄휴직’이 있다.
◇“생계 포기하고 돌봄 택한다” 휴직 내내 무급
휴직 기간 내내 무급인 것도 부담이다. 고용주가 가족돌봄휴직 중인 근로자에게 임금을 제공할 의무가 없다. 한씨와 권씨 그리고 안씨 모두 가족돌봄휴직 기간에 무급이었다. 권이안씨는 “병원비와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해 사소한 지출까지 최대한 줄이며 버텨야 했다”며 “생계를 포기하고 돌봄을 선택해야 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이 제도의 한계를 느꼈다”고 말했다. 안소정씨는 “휴직 기간에는 무급이기 때문에, 휴직 약 3개월부터 비상금을 조금씩 마련했다”며 “나의 경우 부모님의 노후 준비가 되어있어 병원비 부담이 없었지만, 만일 내가 부모님 병원비와 간병비까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경제적 부담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육아휴직 시에는 정부가 고용보험 기금에서 육아휴직 급여를 제공한다. ▲1~3개월째에 상한 250만 원, 통상임금 100% ▲4~6개월째에 상한 200만원, 통상임금 100% ▲7개월 이후로부터는 상한 160만원, 통상임금 80%이다.
일본은 돌봄휴직 기간에 고용주가 임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것은 한국과 같으나 고용보험으로 돌봄휴업급부금(임금의 67%)을 제공한다. 스웨덴은 최대 100일간 가족돌봄휴가를 사용할 경우 사회보험을 통해 평균적으로 급여의 80%를 보전한다. 독일도 무급이 원칙이나 휴직 기간에 무이자 대출을 지원해준다.
◇‘돌봄 보장 체계 강화’ 방향으로 가야
돌봄휴직 사용자들은 휴직 가능 기간이 길어지고, 그 기간에 임금 일부가 보전된다면 돌봄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고 봤다. 권이안씨는 “돌봄휴직은 ‘배려’가 아니라, 누구나 삶에서 한 번쯤은 필요해질 수 있는 사회적 안전 장치라고 생각한다”며 “이 기간에 최소한의 소득이 보전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안소정씨는 “일할 때의 소득보다 간병비가 더 비싸서 어쩔 수 없이 휴직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며 “육아 휴직 때만큼은 아니어도, 일정 부분 기본급이 지급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돌봄휴직을 보다 자유로이 쓸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었다. 한모씨는 “항암 치료 중인 자녀를 돌보겠다는 분명한 휴직 사유가 있는데도, 두 번째로 신청할 때에는 ‘계속해서 치료를 해야하는 이유’와 ‘치료 일정’ 등 구체적 근거를 의사의 소견서와 함께 제출하라고 요구받았다”며 “육아휴직처럼 돌봄휴직도 신청서를 써서 요청하면 승인되는 방식이 자리잡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권이안씨는 “회사에서 휴직 사용을 직접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정말 휴직이 필요한 일이느냐’고 묻는 듯한 주변 시선에 눈치가 보였다”며 “개인 사정을 변명하듯 설명해야 했던 상황들에 마음이 무거워졌다”고 말했다.
다만, 간병 휴직 사용 시 임금의 일부분을 보장하면, ‘가족 일원이’ 자신의 일을 쉬면서 가족의 간병을 온전히 담당하게 하는 현재의 구조가 굳어질 위험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사회가’ 돌봄을 부담하는 돌봄 보장 체계를 강화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라는 것이다.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양난주 교수는 “휴직에 대해 보상을 하더라도 본래 임금보다는 금액이 적을 것이고, 이는 장기적으로 해당 가구의 경제적 안정을 해칠 뿐 아니라 휴직자의 노후 소득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장기 요양 등의 사회 서비스와 병원에서 입원 환자의 간병까지 책임지는 간호 간병 통합 서비스를 전면 확대해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