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갑상선 기능저하증으로 약을 복용하는 40대 여성 A씨는 영양제를 구매하기 위해 약국을 찾았다. 제품 상담을 요청하자, 직원은 인터넷으로 검색하며 답했다. 명찰을 보니 약사가 아닌 '한약사'였다. 전문성이 있다고 믿어도 되는 건지 판단이 어려웠던 A씨는 결국 구매를 포기했다. A씨는 "누가 상담하는지 앞으로 직접 확인해야 할 것 같다"며 "이런 상황이 불편하다"고 했다.
반대로 한약 기반의 일반의약품을 찾던 30대 남성 B씨는 다른 불편을 겪었다. 소화 불량에 도움이 된다는 한약제제를 구매하려고 약국에 방문했지만, 약사는 양약제제 일반 약을 먼저 추천했다. B씨는 "원하는 정보를 얻기 어려워서 답답했다"고 했다.
약사도 한약사도 약국을 운영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는 둘 중 누가 운영하는 약국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지난달 발표된 서울시약사회 조사에서 시민 88%가 "상담자를 구별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간판만 보고는 판단이 불가능하고, 명찰이 가려지거나 착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호함은 단순 불편을 넘어 안전한 의약품 활용을 저해해 국민건강권을 침해할 수 있다. 앞선 설문조사에서 시민 99%가 약사와 한약사의 면허 구분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국민건강권 보장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약사·한약사, 역할과 전문성 달라
현행 약사법에 따르면 약사는 모든 의약품을 조제·판매하고 복약지도를 할 수 있고, 한약사는 의사·치과의사의 처방전 조제는 불가능하다. 다만 약사법에서는 한약사의 일반의약품 조제·판매에 대한 명확한 제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고, '한약제제'에 대한 구분이 불명확해 한약사도 일반의약품을 판매하고 있는 실정이다.
두 면허는 교육 과정과 전문 분야가 다르다. 약사는 2+4년제 혹은 6년제 약대에서 임상약학·약물 치료 중심 교육을 받는다. 2021학년도까지는 다른 학과에서 2년 일반 학부 과정을 밟은 뒤 약대 4년을 밟았고, 현재는 6년 통합 과정을 졸업해야 한다.
한약사는 한약학 중심의 4년 과정을 거치지만, 한약학과 역시 약대 소속으로 운영된다. 또 약제학, 약물학, 생리학 등 약학과와 일정 수준 겹치는 전공과목을 배우고 추가적으로 한약학을 배운다. 각 대학별 교과과정 비교 결과, 경희대는 약학과와 한약학과 교과목이 70% 가까이 겹치고, 우석대와 원광대는 40~50% 수준이 겹쳤다. 국가시험 과목도 유사 분야까지 포함하면 약 70%가 동일하다. 차이를 보면 한약과는 생약, 약학과는 미생물학과 합성화학 등 제약·바이오 분야의 내용에 조금 더 방점을 두고 교육과정이 구성돼 있었다.
어쩌다 약국 개설이 가능한 면허가 두 가지로 나뉘어진걸까? 한약사 제도는 1994년 한약 분업을 전제로 신설됐다. 1990년대 초반 의사는 처방, 약사는 조제를 해야 한다는 의약분업 추진 흐름이 나타났다. 동시에 한약도 분업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됐고, 한의사는 처방, 약사는 조제하는 구조를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한약을 약사가 조제할 수 있는지‘를 두고 의견 충돌이 일어났다. 정부는 한의계와 약계의 갈등을 중재하기 위해 한약만 전문적으로 조제하는 ‘한약사’를 신설했다. 결론적으로 한약 분업이 무산되면서 한약사의 역할이 모호해졌다.
◇구분 어려우면 어떤 문제 생기나… "소비자 안전과 직결"
한약사는 합성 화학 분야는 약학과보다 덜 배우는데, 일반의약품은 판매해 전문성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약학과는 생약 관련해서는 한약사보다 전문 지식이 부족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소비자는 자신이 상담받는 사람이 약사인지, 한약사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현재 약국 간판에는 약국과 한약국을 구분해 표시해야 한다는 의무가 없기 때문. 의무적으로 명찰을 착용해야 하지만, 한약사 명찰의 '한'을 가리거나 명찰을 착용하지 않는 사례가 적지 않다. 대한약사회 조사(2020년)에서도 한약사 개설 약국 282곳(58.3%)에서 명찰 미착용이 확인됐다.
약사 측은 약물 상호작용을 확인하지 못하는 위험이 커진다고 지적한다. 일반 감기약이나 소화제도 기존 복용 약과 충돌할 수 있어 임상약학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한약사회 장보현 정책이사는 "일반 약이라도 약물-약물 상호작용이나 기저질환 영향 등을 고려해야 한다"며 "전문성 차이가 부작용 또는 오남용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처방 조제 등을 위해 약국을 개설한 한약사가 약사를 고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대한약사회에서는 법적으로 개설자인 한약사가 약국을 관리하면, 향후 문제가 생겼을 때 명확한 책임 소재를 가르기 어려운 점을 우려했다. 장보현 정책이사는 "약국 개설자인 한약사가 자신의 면허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 의약품의 조제와 판매, 감정, 보관 등의 업무를 관리·감독하게 된다"며 "심지어 마약, 향정신성의약품 등까지 한약사가 관리하게 된다"고 했다. 한약사는 면허 범위를 넘는 일을 하게 되고, 향후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 소재도 불분명해질 수 있다.
반면, 한약사 측은 편향된 시각이라는 입장이다. 대한한약사회는 "한약사도 약제학·약물학 등 일반 약 상담에 필요한 학문을 이수하고 국가시험을 통해 면허를 부여받는다"며 "면허 범위 내에서 일반의약품을 다루는 것은 문제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한약사가 개설한 약국은 야간·주말까지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 지역의 의약품 접근성을 높인다"고 말했다.
◇소비가 스스로 확인할 방법은?
현재로서는 소비자가 직접 누가 개설한 약국인지 확인해야 하는 불편이 남아 있다. 명찰을 확인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가려져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병원·약국 찾기' 서비스를 이용해 해당 약국을 검색해 면허 종류를 확인할 수 있다. 약국 내부에 약사 면허증이 게시돼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방법이다. 약사는 처방전 조제가 가능한 만큼 조제실 여부로도 '추정'할 수 있다. 일부 약국은 한약사 개설 약국과 구분하기 위해 '처방 조제 전문' 등의 문구를 부착해 놓기도 한다. 다만 전문가들은 "소비자에게 확인 책임이 과도하게 전가되고 있다"며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직역 갈등이 아닌 소비자 안전 중심을 기준으로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법무법인 선 이지원 변호사는 "한약사가 일반의약품에 대한 복약지도를 하는 것이 적절한지 여부는 한약사의 교육과정과 전문성, 범위를 고려해 엄격히 판단해야 한다"며 "소비자가 약국 운영 주체와 상담자의 전문성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개선 방안으로는 ▲간판에 '약국·한약국' 의무 표기 ▲면허별 역할 범위 재정비 ▲교차 고용 금지 ▲공공 플랫폼에 면허 정보 표시 의무화 등이 있다.
국회에서도 관련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약사 출신인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약사-한약사 교차 고용 금지법(약사법 개정안)'을 발의해 책임·권한 불일치를 해소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내년 2월 출범하는 보건의료인력 업무조정위원회 역시 약사·한약사의 업무 범위 조정을 공식적으로 논의할 전망이다. 다만 직역 간 입장 차이가 커 단기간에 합의점을 찾기 어렵다는 전망도 적지 않다.
반대로 한약 기반의 일반의약품을 찾던 30대 남성 B씨는 다른 불편을 겪었다. 소화 불량에 도움이 된다는 한약제제를 구매하려고 약국에 방문했지만, 약사는 양약제제 일반 약을 먼저 추천했다. B씨는 "원하는 정보를 얻기 어려워서 답답했다"고 했다.
약사도 한약사도 약국을 운영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는 둘 중 누가 운영하는 약국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지난달 발표된 서울시약사회 조사에서 시민 88%가 "상담자를 구별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간판만 보고는 판단이 불가능하고, 명찰이 가려지거나 착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호함은 단순 불편을 넘어 안전한 의약품 활용을 저해해 국민건강권을 침해할 수 있다. 앞선 설문조사에서 시민 99%가 약사와 한약사의 면허 구분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국민건강권 보장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약사·한약사, 역할과 전문성 달라
현행 약사법에 따르면 약사는 모든 의약품을 조제·판매하고 복약지도를 할 수 있고, 한약사는 의사·치과의사의 처방전 조제는 불가능하다. 다만 약사법에서는 한약사의 일반의약품 조제·판매에 대한 명확한 제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고, '한약제제'에 대한 구분이 불명확해 한약사도 일반의약품을 판매하고 있는 실정이다.
두 면허는 교육 과정과 전문 분야가 다르다. 약사는 2+4년제 혹은 6년제 약대에서 임상약학·약물 치료 중심 교육을 받는다. 2021학년도까지는 다른 학과에서 2년 일반 학부 과정을 밟은 뒤 약대 4년을 밟았고, 현재는 6년 통합 과정을 졸업해야 한다.
한약사는 한약학 중심의 4년 과정을 거치지만, 한약학과 역시 약대 소속으로 운영된다. 또 약제학, 약물학, 생리학 등 약학과와 일정 수준 겹치는 전공과목을 배우고 추가적으로 한약학을 배운다. 각 대학별 교과과정 비교 결과, 경희대는 약학과와 한약학과 교과목이 70% 가까이 겹치고, 우석대와 원광대는 40~50% 수준이 겹쳤다. 국가시험 과목도 유사 분야까지 포함하면 약 70%가 동일하다. 차이를 보면 한약과는 생약, 약학과는 미생물학과 합성화학 등 제약·바이오 분야의 내용에 조금 더 방점을 두고 교육과정이 구성돼 있었다.
어쩌다 약국 개설이 가능한 면허가 두 가지로 나뉘어진걸까? 한약사 제도는 1994년 한약 분업을 전제로 신설됐다. 1990년대 초반 의사는 처방, 약사는 조제를 해야 한다는 의약분업 추진 흐름이 나타났다. 동시에 한약도 분업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됐고, 한의사는 처방, 약사는 조제하는 구조를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한약을 약사가 조제할 수 있는지‘를 두고 의견 충돌이 일어났다. 정부는 한의계와 약계의 갈등을 중재하기 위해 한약만 전문적으로 조제하는 ‘한약사’를 신설했다. 결론적으로 한약 분업이 무산되면서 한약사의 역할이 모호해졌다.
◇구분 어려우면 어떤 문제 생기나… "소비자 안전과 직결"
한약사는 합성 화학 분야는 약학과보다 덜 배우는데, 일반의약품은 판매해 전문성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약학과는 생약 관련해서는 한약사보다 전문 지식이 부족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소비자는 자신이 상담받는 사람이 약사인지, 한약사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현재 약국 간판에는 약국과 한약국을 구분해 표시해야 한다는 의무가 없기 때문. 의무적으로 명찰을 착용해야 하지만, 한약사 명찰의 '한'을 가리거나 명찰을 착용하지 않는 사례가 적지 않다. 대한약사회 조사(2020년)에서도 한약사 개설 약국 282곳(58.3%)에서 명찰 미착용이 확인됐다.
약사 측은 약물 상호작용을 확인하지 못하는 위험이 커진다고 지적한다. 일반 감기약이나 소화제도 기존 복용 약과 충돌할 수 있어 임상약학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한약사회 장보현 정책이사는 "일반 약이라도 약물-약물 상호작용이나 기저질환 영향 등을 고려해야 한다"며 "전문성 차이가 부작용 또는 오남용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처방 조제 등을 위해 약국을 개설한 한약사가 약사를 고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대한약사회에서는 법적으로 개설자인 한약사가 약국을 관리하면, 향후 문제가 생겼을 때 명확한 책임 소재를 가르기 어려운 점을 우려했다. 장보현 정책이사는 "약국 개설자인 한약사가 자신의 면허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 의약품의 조제와 판매, 감정, 보관 등의 업무를 관리·감독하게 된다"며 "심지어 마약, 향정신성의약품 등까지 한약사가 관리하게 된다"고 했다. 한약사는 면허 범위를 넘는 일을 하게 되고, 향후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 소재도 불분명해질 수 있다.
반면, 한약사 측은 편향된 시각이라는 입장이다. 대한한약사회는 "한약사도 약제학·약물학 등 일반 약 상담에 필요한 학문을 이수하고 국가시험을 통해 면허를 부여받는다"며 "면허 범위 내에서 일반의약품을 다루는 것은 문제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한약사가 개설한 약국은 야간·주말까지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 지역의 의약품 접근성을 높인다"고 말했다.
◇소비가 스스로 확인할 방법은?
현재로서는 소비자가 직접 누가 개설한 약국인지 확인해야 하는 불편이 남아 있다. 명찰을 확인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가려져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병원·약국 찾기' 서비스를 이용해 해당 약국을 검색해 면허 종류를 확인할 수 있다. 약국 내부에 약사 면허증이 게시돼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방법이다. 약사는 처방전 조제가 가능한 만큼 조제실 여부로도 '추정'할 수 있다. 일부 약국은 한약사 개설 약국과 구분하기 위해 '처방 조제 전문' 등의 문구를 부착해 놓기도 한다. 다만 전문가들은 "소비자에게 확인 책임이 과도하게 전가되고 있다"며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직역 갈등이 아닌 소비자 안전 중심을 기준으로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법무법인 선 이지원 변호사는 "한약사가 일반의약품에 대한 복약지도를 하는 것이 적절한지 여부는 한약사의 교육과정과 전문성, 범위를 고려해 엄격히 판단해야 한다"며 "소비자가 약국 운영 주체와 상담자의 전문성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개선 방안으로는 ▲간판에 '약국·한약국' 의무 표기 ▲면허별 역할 범위 재정비 ▲교차 고용 금지 ▲공공 플랫폼에 면허 정보 표시 의무화 등이 있다.
국회에서도 관련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약사 출신인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약사-한약사 교차 고용 금지법(약사법 개정안)'을 발의해 책임·권한 불일치를 해소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내년 2월 출범하는 보건의료인력 업무조정위원회 역시 약사·한약사의 업무 범위 조정을 공식적으로 논의할 전망이다. 다만 직역 간 입장 차이가 커 단기간에 합의점을 찾기 어렵다는 전망도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