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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클립아트코리아
"아이가 놀다가 입술 근처 피부가 찢어져 급히 피부과를 찾았는데, 다섯 군데를 돌아도 모두 진료를 거부했습니다. 겨우 지인을 통해 한 곳을 찾아 진료받았어요. 피부과가 이렇게 많은데, 대체 어딜 가야 하나요?"

8살 아들을 둔 김모(39·서울 종로구)씨의 하소연이다. 국내에는 수천 개의 피부과가 있고, 강남의 한 골목만 가도 피부과 간판이 빽빽하게 붙어 있다. ‘피부과 천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막상 보톡스·리프팅 같은 미용 목적이 아닌, 열상·두드러기·아토피피부염·건선·무좀 등 ‘진짜 피부질환’을 진료하는 곳을 찾기는 쉽지 않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요즘은 미용 아닌 질환 진료는 병원을 찾아 헤매야 하고, 그마저도 다 몰려서 대기가 길다” “정작 피부질환은 갈 곳이 없다”는 글이 흔하다. 정작 급하게 진료가 필요한 환자가 문전박대를 당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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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간판만 피부과’ 넘쳐나
피부과 간판이 걸려 있어도 전문의가 진료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일부 일반의들이 피부과 전문의가 아님에도 ‘진료과목 피부과’ 간판을 걸고 주로 미용 시술만 하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더불어민주당 전진숙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7월 일반의가 새로 개설한 의원급 의료기관 176곳 중 83%가 ‘피부과’를 진료과목에 넣었다. 환자 입장에서는 정작 아플 때 찾아갈 피부과를 찾기가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포털사이트에서 피부과를 검색해봐도 피부과 전문의와 비전문의가 운영하는 의원이 모두 검색되면서 혼동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대한피부과학회에 따르면, 피부과 전문의는 4년간 수련과 전문의 시험을 거쳐 질환과 미용 모두를 다룰 수 있다. 그러나 비전문의들은 피부 질환을 진료할 동기도, 지식도 부족해 환자가 찾아가면 진료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의는 급히 찾아온 환자라도 “언제쯤 진료 가능하다”는 안내를 하지만, 비전문의는 아예 “질환은 안 본다”며 돌려보내는 경우가 흔하다.
대한피부과의사회 안인수 홍보이사(시흥휴먼피부과 원장)는 “피부과가 보험 진료를 외면한다는 오해와 달리, 많은 전문의들이 낮은 수가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건강을 위해 진료하고 있다”며 “비전문의·비의료인의 무분별한 진료와 시술이 오진과 치료 지연, 부작용을 초래해 결국 국민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의조차 낮은 수가로 선뜻 못 나서
설령 전문의를 찾아가더라도 환영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가 많다. 이에 대해 전문의들은 ‘낮은 보험 수가 때문일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피부과 전문의는 “피부 열상이 생겨도 이를 진료하는 피부과 의사는 요즘 거의 볼 수 없다”며 “환자들이 찾아가도 대기가 길거나 문전박대를 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낮은 진료수가와 현실적인 수익성 문제 때문이다”고 말했다. 대한피부과학회에 따르면, 실제 5㎝ 피부 열상 봉합의 보험 수가는 최대 2만~3만 원이다. 1㎝ 봉합은 1만 원도 채 되지 않는다. 안 홍보이사는 “피부 열상은 피부과·성형외과 전문의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영역이지만, 봉합은 시간과 정교함이 요구되는 진료임에도 불구하고 수가가 낮게 책정돼 있다”며 “현재 구조에서는 의료진이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현실적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대한피부과학회 김동현 홍보이사(분당차병원 피부과 교수) 역시 “대학병원 응급실에서도 전공의 유무나 환자 분류 등급에 따라 환자를 거절하기도 하고, 외과·성형외과에서도 ‘수가가 낮다’는 이유로 꿰매기를 꺼린다”며 “결국 환자들이 갈 곳을 찾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국가가 피부질환 진료에 합당한 보상을 마련하고 피부과의 전문성을 보장해야 의료진이 환자 치료에 전념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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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피부과의사회 홈페이지 ‘우리 동네 피부과 전문의 찾기’ 서비스​(왼쪽)와 네이버 지도·플레이스에서 ‘전문의’ 필터(오른쪽)를 활용하​면 피부과 전문의 병원을 찾을 수 있다./사진=대한피부과의사회 홈페이지, 네이버 플레이스 캡처​
◇질환 진료 가능 여부, 간판과 전문의 확인을
환자 스스로 전문의를 찾아내야 한다. 전문의 피부과는 보험 질환 진료를 대부분 한다. 구별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간판이다. ‘○○피부과의원’처럼 ‘피부과’ 명칭으로 끝나는 곳은 전문의일 가능성이 높다. 반면 ‘○○피부&에스테틱’, ‘○○스킨클리닉’처럼 표기되거나 ‘진료과목: 피부과’라고만 표시된 곳은 비전문의로 볼 수 있다. 대한피부과의사회 홈페이지 ‘우리 동네 피부과 전문의 찾기’ 서비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모든 병원이 표기돼 있지는 않아, 직접 병원 홈페이지를 확인하거나 전화로 ‘질환 진료가 가능한지’ 묻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 네이버 지도·플레이스에서 ‘전문의’ 필터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물론, 모든 전문의가 질환 진료에 적극적인 것도, 모든 일반의가 질환을 보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학회 조사에 따르면 비전문의·비의료인 시술 부작용 비율이 88.5%로, 전문의 시술(11.5%)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예를 들어 초기 피부암을 단순 점이나 습진으로 오인하거나, 안전하지 않은 시술로 흉터·색소침착이 남는 피해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안인수 홍보이사는 “전문의는 응급상황에 즉각 대응하고 장기적 부작용 관리도 가능하다”며 “국민이 비용·편의성보다 전문성을 우선해 진료받기를 권한다”고 말했다.

피부과를 찾을 때, 질환별로 구분할 필요도 있다. 안 홍보이사는 “아토피·건선 같은 중증 만성질환은 생물학적 제제 사용이 필요한 경우가 많고 보험 기준이 까다로워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많이 보는 편이다”라며 “반면 두드러기·습진·가려움증 같은 일상적 질환은 개원가와 대학병원 간 치료 효과에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는 피부과 전문의를 찾는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편, 국민들이 제대로 피부 진료를 볼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피부질환 진료 가능 여부를 환자들이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현재 진료 가능한 병원’을 표시하는 온라인 플랫폼을 마련하고, 마치 비상약국처럼 네이버 등 대형 포털과 연계해 제공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