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기사의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사진./사진=연합뉴스
병·의원과 같은 건물 바로 옆 호실에 문을 연 약국에 대해 인근 약사들이 개설 취소를 요구할 수 있다는 첫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지난 11일, 서울 영등포구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A씨 등이 B 약국 개설 등록을 취소해달라며 영등포구보건소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소송 자체를 각하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이 사건은 영등포구 한 병원의 바로 옆 호실에 B 약국이 생기면서 불거졌다. 약국이 들어선 호실의 소유자는 병원장의 자녀이고, 공간 일부를 병원이 피부관리실로 쓰고 있었다. 인근 건물에서 약국을 운영하던 A씨 등이 “병원 안에 약국을 개설한 것은 위법”이라며 소송을 낸 것이다. 약사법은 병원과 약국 간 담합을 방지하기 위해 의료 시설 일부를 분할한 곳에 약국을 만들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1·2심 판단은 엇갈렸다. 쟁점은 A씨 등 인근 약사들에게 다른 약국의 개설 등록처분 취소를 구할 원고 적격이 인정되는 지였다. 1심은 B 약국 개설로 인근 약국의 매출 중 해당 의원 처방전에 따른 매출이 크게 감소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원고 적격이 인정된다고 봤다. 그러면서 B 약국 개설이 “의료기관의 시설 또는 부지 일부를 분할·변경 또는 개수해 약국을 개설하는 경우 등록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2심은 A씨 등이 침해당한 이익이 없어서 이 소송을 낼 자격이 없다고 판결했다. 2심 재판부는 “원고들의 약국과 B약국은 각각 다른 건물에 있고, 원고들 약국 인근의 다른 건물에도 약국들이 존재하며, 주된 매출이 이 사건 의원의 처방전에 대한 조제약 판매에 기초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대법원은 2심 판단을 뒤집고 A씨 등 인근 약국 약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다른 약사에 대한 신규 약국개설등록 처분으로 인해 조제 기회를 전부 또는 일부 상실하게 된 기존 약국 개설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해당 처분의 취소를 구할 법률상 이익이 있다”고 봤다.

이어 “기존 약국개설자가 운영하는 약국이 기준이 되는 개별 의료기관이 발행한 처방전에 따라 의약품을 조제한 적이 있다면 그 약국은 신규 약국개설등록 처분으로 인해 해당 의료기관이 발행한 처방전에 대한 조제 기회가 감소할 것이라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고 봤다.

대법원은 “이 사건은 신규 약국개설등록 처분에 관한 인근 약사들의 이익을 의약분업 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한 약사법의 관련 규정에 의해 보호되는 개별적·직접적·구체적 이익으로 봐 제3자 원고적격을 명시적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