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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클립아트코리아
식후 혈당 상승을 억제하는 '고추', 꽃가루로 인한 눈 가려움 증상을 완화하는 '깻잎', 혈압 강하 작용을 하는 '파프리카', 일시적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참외'. 모두 일본의 '기능성 표시식품'으로 등록된, '우리나라' 농산물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가공된 건강기능식품보다 '자연식품'으로 영양 섭취를 권장한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신선 농산물에 기능성을 표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오히려 건강기능식품에만 의존하는 왜곡된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논의한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한 생산소비포럼'이 지난 18일 충북 괴산자연드림파크에서 개최됐다. 농림축산식품부가 후원하고, 농협중앙회·iN라이프케어이종협동조합연합회·아이쿱생협연합회·유기농항암농업연구소가 공동 주최·주관했다.


◇친환경에서 기능성으로… 농업 패러다임의 변화
농업의 패러다임이 '친환경'에서 '기능성'으로 바뀌고 있다. 1990년대 등장한 '친환경' 농업은, 수입 농산물과의 경쟁에서 그나마 숨통을 트여주는 국산 농산물의 주요 생산 라인이었다. 안타깝게도 그 경쟁력은 2020년에 멈춰섰다. 친환경농산물 인증 면적이 2020년 최고치를 찍은 후, 2024년에는 20% 감소했다. 출하량도 역시 줄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식량경제연구본부 최윤영 부연구위원은 "친환경 농업 시장의 축소 배경에는 소비 감소가 있는데, 경제 성장이 둔화하고, 고령화로 전반적인 인구의 섭취량이 줄고, 1인 가구가 증가했기 때문"이라며 "기능성 농산물 시장이 대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기능성 농산물은 '일반적인 영양성분 외에도 인체에 유익한 기능이 있는 성분을 갖춘 농산물'을 말한다.

지속 가능하려면 궁극적으로 '소비자'가 원해야 하는데, '건강지향 식습관'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트렌드다. 최윤영 부연구위원은 2023년 소비자 2000명을 대상으로 '농산물에 기능성을 표시하는 게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지'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64%가 그렇다고 답했다. 농촌진흥청에서도 기능성 표시에 대해 소비자 1500명에게 인식 조사를 했는데, 77%가 기능성 표시된 농산물을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했다. 농촌진흥청은 농업인 350명에게도 기능성 표시에 참여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는데, 70%가 그렇다고 했다. 최윤영 부연구위원은 "기능성 표시가 농산물에 가능해지면 소비자 알권리를 충족할 뿐 아니라, 사회 보건적 효과도 기대된다"며 "수출 시장에서도 고부가가치 상품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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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촌경제연구원 식량경제연구본부 최윤영 부연구위원이 기능성 농산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이슬비 기자
◇일본은 10년 전 기능성 농산물 표시제 도입
이미 미국, 일본, 유럽연합(EU)에서는 농산물에 기능성 식품 표시가 가능하다. 세 나라 모두에서 제도 도입 이후 기능성 농산물 시장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그중 우리나라가 도입하려고 논의 중인 방향과 가장 유사한 모델을 구현하고 있는 곳은 일본이다.

일본의 기능성표시식품(FFC) 제도는 지난 2015년 초고령 사회 진입으로 건강관리 수요가 증가해, 도입됐다. 기존에는 현재 우리나라의 건강기능식품과 유사한 '특정보건용식품'과 '영양기능식품' 관련 제도만 있었다. 다만 두 제도 모두 인증받는 절차가 복잡하고, 농산물 그대로는 등록하거나 표시할 수 없었다. 매번 같은 함량의 기능성 성분을 포함하기 어려운 농산물 특성상, 가공은 필수였다. FFC는 농산물에도 기능성을 표시할 수 있도록 도입한 제도로, 신고제라는 특징이 있다. 관리체계, 안전성·기능성 근거, 표시 문안, 사후 관리 방법 등을 판매 60일 전까지 제출해야 한다. 기능성은 문헌을 검토하거나 임상 자료로 신고할 수 있다.

우리나라 농산물 중 일본 기능성표시식품으로 등록된 건 위에서 언급한 고추, 깻잎, 파프리카, 참외 등 네 가지 품목이다. 한국농수산유통공사 하유정 과장은 "실제 이 제도를 활용해 한국산 파프리카, 참외 등에 프리미엄이 있다는 인식을 부여했다"며 "꾸준히 판매량이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국내 개발된 기능성 농산물 多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개발된 기능성 농산물은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게 앞서 언급한 당조고추다. 당조고추는 농촌진흥청과 강원대에서 공동 개발·육성한 품목으로, 현재는 농부의 꿈에서 기술을 인수해 판매하고 있다. 유기농항암농업연구소에서는 새로운 농법을 활용해 '항암식품'으로 브랜딩 했다. 농업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토양인데, 우리나라 토양에는 칼슘, 마그네슘, 철분 등 필수 미네랄 함량이 감소하고 있다. 농사한 땅에서만 계속 짓다 보면 토양이 산성화되기 때문이다. 이 연구소에서는 토양에 미네랄을 보충하기 위해, 해양 심층수를 이용했다. 해양 심층수에는 표층수보다 소금 제외 나머지 미네랄이 세 배 가까이 많다. 해양심층수에서 물과 나트륨을 제외한 나머지 미네랄을 토양에 뿌린 후, 작물을 재배했다. 유기농항암농업연구소 이봉화 이사장은 "해양심층수 농축자재를 활용하자 토양미생물이 활성화돼 작물이 튼튼해졌고, 식물이 흡수한 미네랄 함량도 증가했다"며 "이렇게 재배한 상추, 방울토마토 등 다양한 작물에서 항암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피토케미칼이 약 1.5배 정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이어 "이런 작물을 먹었을 때 항암 효과가 있는지 실험실 내 실험과 동물 실험으로 차의과대, 전북대, 경북대 등의 연구팀에서 확인했다"고 했다. 이 외에도 가바쌀(기억력 개선), 하이아미(성장기 발육 도움), 도담쌀(당뇨 관리), 밀 싹(근감소증 예방), 가바 사과·체리(혈압 강하) 등이 개발됐다.


농식품부는 기능성 표기를 하지는 못하지만, 기능성 농산물 소재 개발을 촉진하고 관리하기 위해 기업 지원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국가식품클러스터진흥원에 국산 농산물 기능성 소재 12종이 비축됐다.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기능성 농산물 재배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전남 해남군은 항암농산물생산단지를 조성했다.

◇우리나라도 기능성 표시제 도입 첫발 내디뎌
지난달 29일 우리나라에서도 기능성 농산물 표시제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 윤준병 의원 외 10인이 낸 '농수산물 품질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이다. 전문가들은 법 통과 이후 제도 설계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일단 소비자는 정확히 인지하고 기능성 농산물을 소비해야 한다. 건강기능식품 등보다 비교적 증명해야 하는 과학적 수준이 엄격하지 않아, 농산물로 의학적 치료 효과가 보장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또 농산물 특성상 일정한 함량의 기능성 성분을 함유하기 어렵다.

정부는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면서, 시장도 활성화될 수 있도록 균형에 맞춘 정책을 펼쳐야 한다. 최윤영 부연구위원은 "법안 통과 후가 매우 중요하다"며 "일본처럼 사업자가 과학적 근거를 갖춰 사전 신고만으로 표시를 가능하게 하되, 미국처럼 소비자 보호를 위해 강력한 사후관리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일본의 건강 이상 사례 수집 시스템처럼 국내 모니터링 체계도 필요하다"고 했다. 가격 조정도 필요하다. 이전 농진청 조사에서는 소비자가 최대 10% 추가 지불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