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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구충제를 복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주기적으로 먹는 것이 좋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한때는 봄·가을이 되면 온 가족이 모여 구충제를 챙겨 먹곤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위생 환경이 크게 개선되고 식생활이 바뀌면서 과거처럼 대규모 기생충 감염 사례는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이 때문에 ‘이제는 구충제를 굳이 먹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도 늘고 있다. 과연 정말 그럴까.

국내 기생충 감염률은 분명 과거보다 현저히 낮아졌다.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기생충 감염률은 매우 높았다. 1970년대 조사에서는 국민 절반 이상이 회충란에 양성 반응을 보여, 봄과 가을마다 구충제를 복용하는 것이 생활 습관처럼 자리 잡았다. 그러나 위생 환경이 좋아지고 화학 비료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한국건강관리협회 기생충 조사·연구사업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기생충 양성률은 0.48%로, 계속해서 낮아지는 추세다.

생활 환경이 개선되며 감염률은 낮아졌지만, 기생충 감염 위험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늘고, 유기농 채소 섭취가 많아지면서 감염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반려동물이 기생충을 옮기거나, 감염된 토양에서 자란 채소를 제대로 세척하지 않으면 감염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생 상태가 좋지 않은 지역으로 여행할 때도 감염 위험이 있다. 중앙약국 이준 약사는 “기생충 감염률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위험 요인은 존재한다”며 “특히 잡 기생충이 남아 있어 구충제를 정기적으로 복용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최근 ‘구충제는 효과가 없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약국에서 판매되는 대표적인 구충제인 알벤다졸과 프루벤다졸은 반감기가 8~12시간에 불과해, 복용 후 바로 감염되지 않는 이상 ‘예방 효과’는 없다. 하지만 구충제는 본래 예방용이 아니라 치료용이다. 이미 몸속에 있는 기생충을 제거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준 약사는 “알벤다졸 등 일반 구충제는 감염된 기생충을 죽이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반감기보다는 복용 시기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반 구충제로 제거할 수 있는 기생충에는 요충, 회충, 편충, 십이지장충 등이 있다.


병원에서 처방하는 구충제는 약국용과 다르다. 대표적인 처방 구충제는 ‘프라지콴텔‘로, 흡충 감염 치료에 사용된다. 다만 약효가 강해 반드시 의사의 처방과 진단이 필요하다. 이준 약사는 “프라지콴텔은 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병원에서 기생충 감염이 확인된 경우에만 처방한다”고 말했다.

한국건강관리협회 조사에 따르면 2024년 기생충 양성자 가운데 장흡충 양성자가 264명(48.9%)으로 가장 많았고, 간흡충 양성자는 190명(35.2%)으로 뒤를 이었다. 장흡충과 간흡충은 주로 민물고기를 날로 먹거나, 오염된 조리도구를 사용할 때 감염된다. 감염 시 상복부 통증, 발열, 황달, 설사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며, 심할 경우 담석·화농성 담낭염·담도암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담도암의 약 10%는 간흡충 감염이 원인이라는 통계도 있다. 감염이 의심되면 병원을 방문해 프라지콴텔 처방을 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구충제는 언제 복용하는 게 가장 효과적일까? 구충제는 복용 시기보다 규칙성이 더 중요하다. 과거에는 봄과 가을에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많이 먹기 때문에 그 시기에 구충제를 권했지만, 이제는 사계절 식재료 차이가 크지 않다. 이준 약사는 “계절에 상관없이 6개월에 한 번 구충제를 복용하면 충분하다”며 “반려동물을 키우거나 날것을 좋아한다고 해서 더 자주 먹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다만 “강아지나 고양이 등 반려동물은 2~3개월 간격으로 구충제를 복용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