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조선 명의 톡톡’ 명의 인터뷰
‘실어증 명의’ 고려대안암병원 재활의학과 편성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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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고려대안암병원 제공
40대 A씨는 뇌졸중으로 실어증을 진단받았다. 언어 능력이 100점 기준으로 30점 정도였다. 집중 치료로 50~60점까지 점수가 올랐고, 이렇게 1년 이상 유지하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버스를 타고, 교통 카드를 찍었다. 착오가 있었는지 버스 기사는 A씨에게 왜 돈을 내지 않느냐고 물었다. 실어증 환자 A씨는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고, 기사는 화를 냈다. 난감한 상황에 A씨는 혈압이 올라가 쓰러졌고, 끝내 세상을 떠났다.

국내 뇌졸중 환자 수는 이미 3년 전 100만 명을 넘어섰고, 이 중 세 명 중 한 명은 말할 수 없는 '실어증'을 겪는다. 하지만 아직 사회에서는 여전히 실어증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부족하다. 실어증 환자 치료에 힘써온 A씨의 주치의 편성범 교수를 만나 우리나라 실어증 치료에 대한 현주소를 들어봤다.

-실어증은 어떤 질환인가?
"실어증은 뇌 손상 등 신경학적 손상으로, 후천적으로 언어 기능을 상실한 질환이다. 흔히 드라마 등에서 충격적인 일로 말을 못 하게 된 환자에게 실어증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엄밀히 따지면 신경학적 손상 없이 심리적인 충격에 의한 것은 실어증의 범주에 해당하지 않는다. 심인성으로 생긴 언어 장애로 본다."

-실어증에 걸리면 말을 아예 못 하는가?
"실어증은 크게 비유창성 실어증과 유창성 실어증 두 가지로 나뉜다. 비유창성 실어증은 구강 손상 없이 말을 못 하는 것이고, 이해성 실어증이라고도 부르는 유창성 실어증은 말은 하는데 이해를 못 해 대화가 안 되는 상태를 말한다. 주로 전두엽이 손상되면 비유창성 실어증이, 측두엽과 두정엽에 손상이 생기면 유창성 실어증이 생긴다. 두 곳 모두에 이상이 생기면 이해와 표현이 모두 어려운 전반성 실어증이 나타난다. 실어증은 이 외에도 약 여덟 가지 유형으로 세분화할 수 있는데, 대다수가 유형별 증상이 섞여 있어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인다. 가장 경미한 증상은 단어를 못 찾는 것이다. 말하고 싶은 바는 있는데, 정확한 단어를 떠올리지 못한다. 치료로 증상이 좋아지더라도 마지막까지 남는 증상이기도 하다."

-실어증에 걸리면 쓰고 읽기도 어려운가?
"언어는 말이 먼저고 쓰고 읽는 건 그다음 능력이다. 실어증 환자 대다수가 읽고 쓰지 못한다. 실어증 환자에게 말을 못 하면 글로 써서 의사를 표현해 보라고 하는 건, 할 수 없는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 다만, 증상이 경미한 환자를 대상으로는 읽고 쓰는 능력을 확인하는 확장 검사를 시행하기도 한다."

-주로 어떤 원인으로 발생하는가?
"가장 대표적인 원인은 뇌졸중이다. 뇌종양, 외상성 뇌손상, 치매 등 뇌에 생기는 어떤 병변으로도 실어증이 유발될 수 있다. 치매 중 원발성 진행성 실어증이라고, 언어 기능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 손상돼 기억력이나 판단력은 비교적 보존되면서 언어 능력만 점차 퇴행하는 질환이 있기도 하다."

-치매와 실어증은 어떤 차이인가?
"다른 뇌 질환으로 생기는 실어증은 치료하면 회복하다가 안정기로 접어드는 변화를 보인다. 하지만 치매는 잘 회복되지 않고, 점점 증상이 진행된다. 나중에는 말을 전혀 안 하는 함구증이 나타나기도 한다. 여기에 인지 장애도 함께 나타난다. 인지 장애라는 넓은 범주에 실어증이 속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한국판 프렌차이 실어증 선별검사를 개발했던데?
"실어증 진단 검사로 가장 많이 활용되는 건 웨스턴 검사는 1시간 반 정도 걸린다. 환자 상태가 안 좋거나, 외래에서 바로 확인할 때는 그보다 빨리 확인할 수 있는 검사가 필요하다. 그게 그림을 보고 이야기하도록 해 언어 능력을 판단하는 프렌차이 실어증 선별 검사다. 원본 검사에는 카누 등 한국인 중 연령대에 따라 명칭을 모를 수도 있는 것들이 포함돼 있다. 명칭을 몰라서 대답을 못 하는 건지 등을 정확히 판단할 수 없으므로, 한국인 정서에 맞게 난이도를 조정했다."

-실어증은 완치할 수 있는가?
"뇌졸중 환자의 약 25~38%에 실어증이 생기는데, 중증도에 따라서 회복 정도도 다르다. 연구 결과, 경도 실어증은 3명 중 2명이 검사상 완전히 회복됐다고 볼 수 있었고, 중등도 실어증 환자는 약 절반이 회복됐다. 심한 실어증 환자는 1/3 정도만 회복된다. 다만 객관적 지표와 주관적 지표는 다를 수 있다. 검사상 완치된 것으로 나오는 환자에게 물었더니, 여전히 말할 때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아 불편하다고 답한 사람이 많았다. 그래도 조기에 발견해서 강도 높게 치료하면 뇌 가소성으로 인해 회복이 빨라진다. 6주~3개월 사이 회복 속도가 가장 빠르다. 이후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6~12개월까지 지속해서 회복된다. 이후에는 환자마다 다른데, 일부에서는 계속 회복되는 사람도 있어 지속 치료가 중요하다. 실어증의 주된 치료 방법은 실어증 유형과 증상에 맞춰 재활 치료하는 것이다."

- 실어증 치료의 동향은?
"비침습적으로 뇌중재시술을 할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되고 있다. 자기장을 이용해 뇌신경 세포를 자극하는 rTMS(반복 경두개 자기자극술), 두피 전극으로 약한 직류 전류를 흘려 뇌 기능을 정상화하는 tDCS(경두개 직류 전기 자극술) 등이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 언어 치료와 병합해서 활용하면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약물도 있을 것으로 보고 관련 연구가 적극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또 집에서 AI 등 케어 기기로 맞춤형 언어·인지 재활 치료를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디지털 치료 기기 같은 신기술도 나오고 있다던데?
"적극적으로 연구되고 있지만, 아직 환자에게 상용화되지는 않았다. 뇌공학과와 함께 뇌파로 단어를 생성해 내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환자가 생각하는 단어가 화면에 나오도록 하는 기술인데, 정상인을 대상으로는 70~80%까지 단어 생성이 가능하다. 다만, 임상에 적용하려면 수익성이 있어야 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10년 전에 환자 평가 결과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치료 방법을 추천하는 기술을 개발했지만, 여러 장벽에 부딪혀 상용화하지 못했다. 언어 재활 기술은 치매 환자에서도 활용될 수 있으므로, 인지 재활의 큰 범주에서 개발이 된다면 더 빠르게 상용화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환자 가족은 어떤 방식으로 환자의 회복을 도울 수 있나?
"치료는 강도가 중요하다. 병원에서는 치료할 수 있는 시간이 환자당 약 30분 정도다. 실어증은 환자가 가장 답답하고 괴로운 질환이다. 가족은 인내심을 갖고 환자가 지속해서 말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도와줘야 한다. 많은 실어증 환자가 집 밖을 나가서 다른 사람 만나는 것을 힘들어하고, 싫어한다. 가족은 환자가 그룹 치료를 받는 등 지속해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가족이 도와주는 만큼 환자 예후도 실제로 좋다."

-실어증 환자들이 우울증이나 불안을 많이 겪는다고 하던데?
"말하려고 하는데, 아무런 말이 생각이 안 나면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억울한 일을 당해도 목소리를 낼 수도 없다. 어제까지 익숙하던 곳이 갑자기 이해가 안 되고 못 알아듣는 외국어만 쓰는 곳으로 바뀐 느낌일 테다. 단절이 되기 때문에 실제로 많은 환자가 우울증을 겪는다. 이를 해결해 보려고 실어증 커뮤니티를 몇 년 동안 운영했었다. 우리 병원에서 치료하는 환자 스무 명 정도를 모아 주기적으로 모이게 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참여하는 사람이 크게 줄어 나중에는 두세 명밖에 오지 않았다. 많은 환자가 밖을 안 나가려고 하고, 이는 우울증 위험을 높인다. 우울증은 예후를 나쁘게 하는 대표적인 인자이므로, 증상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항우울제를 활용해 치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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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고려대안암병원 제공
-우리나라에서 성인 실어증 환자들이 치료와 재활을 받는 데 겪고 있는 제약은 무엇인가?
"일단 실어증 환자 재활을 돕는 신경 언어재활사가 별로 없다. 대다수 언어재활사가 단독 개원이 가능하고 바우처 사업도 있는 발달장애 아동을 보곤 한다. 신경 언어재활사가 있어도 수업 한 번당 꽤 큰 비용이 들고 보험이 안 돼 많은 환자가 활용하지도 못한다. 그럼 병원에서 보호자 교육이라도 해야 하는데, 교육 수가가 없어 실용성 있게 교육이 이뤄지기 어렵다. 외래에서 설명하거나, 소책자를 나눠주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어증 환자를 위한 기본적인 지원 대책이 전무하다. 실어증 환자와 소통할 수 있는 돌봄 인력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또 연구하려고 해도 언어 장애 카테고리로 묶여, 소아와 성인이 한꺼번에 확인돼 실어증 환자만 통계를 내기 어렵다. 국내 실어증 환자가 몇 명인지조차 정확히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단 우리 병원에서 최근 10여 년간 실어증 평가를 받은 모든 환자 데이터를 모으고 있다. 환자들은 이렇게 어려운 상황이지만, 정작 실어증에 대한 인지도는 낮아 사회에서는 외면받고 있다. 생각보다 더 많은 환자가 앓고 있으므로, 질병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는 것부터 변화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

- 성인 실어증 환자와 가족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말을 못 할 뿐 자아와 인격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사람의 자존감 등이 비하되는 일이 발생하면 안 된다. 가족부터 이를 이해해야 한다. 누군가가 지지하고 믿어준다는 확신만으로도 환자는 우울증과 불안 등에서 벗어날 수 있다. 어렵겠지만 시간을 할애해서 환자들과 소통했으면 한다. 또 병의 특성과 경과를 전문의와 상의해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수면 시간이 달라지고 식사량이 줄어드는 등 환자의 우울증 증상이 심하면 의사와 상의해 약을 처방받아야 한다. 절대 환자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놓지 않았으면 한다."


편성범 교수는…
고려대 의대를 졸업하고, 동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 안암병원 재활의학과장이자 고대 의대학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프렌차이 실어증 검사뿐만 아니라 의미적 인지 평가, 명칭 검사 등을 한국화시켜, 국내 실어증 환자의 빠른 선별 검사가 가능하게 했다. 이런 표준화된 검사는 실어증 환자를 분류하고 적절한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에도 필수적이다. 실제 프렌차이 검사는 국내 뇌졸중 10년 추적 대규모 연구에 활용됐다. 편 교수는 외국에서도 재외국민이 선별검사를 활용할 수 있도록 직접 1인 출판사를 등록해, 연구 결과를 편찬하기도 했다. 뇌졸중 국제 학회에서 관련 발표로 포스터 발표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 외에도 대한뇌신경재활학회, 대한근전도전기진단학회 등에서 이사를 역임하며 적극적인 학회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 근로복지공단 자문 의사, 보건복지부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 자문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기자가 만난 편 교수는 환자의 아픔에 공감하고, 환자의 언어 회복을 돕는 일을 단순한 치료가 아닌 삶의 회복으로 바라보는 의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