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세 미만 소아에서도 우울증 증가 추세
의욕 저하·흥미 상실 보일 때 의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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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청소년의 우울은 사춘기 증상으로 여겨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적지 않아,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최근 5년 사이 소아·청소년 우울증 환자가 급격히 늘어나 지난해 8만6254명에 달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20년 4만9983명에서 72.6% 증가한 수치로, 같은 기간 전체 우울증 환자 증가율(32.9%)보다 훨씬 가파른 상승세다. 특히 10세 미만 환자는 1338명에서 2734명으로 두 배 이상 늘어, 어린 연령층으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학업 부담과 스마트폰 사용 등 누적된 스트레스가 주요 배경으로 지목되지만, 사춘기 증상으로 오해해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아 주의 깊은 관찰이 필요하다.

◇사회적 자극 줄고 고립감 커지며 우울증 확산
전문가들은 이러한 증가가 코로나19 이후 사회적 환경 변화와 맞물려 나타난 결과라고 분석한다. 선릉숲정신건강의학과 한승민 원장은 “팬데믹 시기에 학교생활과 또래 관계가 단절되며 발달 과정에 필요한 사회적 자극이 줄었고, 이 과정에서 고립감과 불안이 누적됐다”며 “이후 학업 경쟁이 심화하고, 스마트폰·SNS를 통한 비교와 소외가 늘면서 불안정성이 가중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여기에 가족 구조 변화까지 겹치며 아이들의 심리적 회복력이 약화했다”고 했다. 과거 대가족 중심의 환경에서는 여러 구성원이 정서적 지지망 역할을 했지만, 핵가족화·맞벌이·한부모 가정의 증가로 의지할 기반이 줄어들면서 정서적 안정이 흔들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사춘기 증상과 구별해 조기 치료해야
소아·청소년의 우울은 단순히 “마음이 우울하다”는 말로 끝나지 않는다.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유재현 교수는 “실제 진료 현장에서는 학업 집중력 저하, 수면 장애, 짜증과 분노 조절의 어려움, 또래·가족과의 갈등이 주된 문제로 드러난다”며 “일부는 두통·복통·호흡곤란 같은 신체 증상을 호소하고, 심한 경우 자해 같은 위험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양상은 사춘기의 예민한 반응과 겹쳐 보여 혼동되기 쉽다. 한승민 원장은 “사춘기에는 기분 기복이 크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회복되는 경우가 많다”며 “반면 우울증은 최소 2주 이상 이어지면서 의욕 저하와 흥미 상실이 뚜렷하고, 이전에 즐기던 활동을 중단하거나 생활 전반의 기능이 무너지는 특징을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무가치감·죄책감 같은 사고가 반복되면 단순한 사춘기 증상이 아니라 우울증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이 시기에 나타난 우울증은 단순한 일시적 어려움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 원장은 “학업 성취도가 떨어지고 또래 관계가 불안정해지면서 자존감 형성과 사회적 기술 습득이 방해받을 수 있다”며 “자기 정체감을 확립해야 할 중요한 시기에 이러한 과정이 흔들리면 성인이 된 이후까지 영향을 남긴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듀크대 연구에 따르면 청소년기에 우울증을 겪은 사람은 성인이 된 뒤에도 우울·불안장애가 반복되거나 사회적 기능에 어려움을 겪을 위험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또, 캐나다 캘거리대 연구에서도 청소년기의 우울이 성인기의 학업·직업 성취와 인간관계, 삶의 질 전반에 장기적인 손상을 남기는 것으로 보고됐다.


이 때문에 치료는 조기 개입이 핵심으로 꼽힌다. 경증이나 초기 단계에서는 상담과 인지행동치료(부정적 사고를 교정해 행동을 바꾸는 치료법)가 우선 적용되며, 또래 관계 기술과 스트레스 대처법을 배우는 과정이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중등도 이상의 우울증이거나 자해·자살 위험이 동반된 경우에는 약물 치료가 필요하다. 유재현 교수는 “약물은 최소 6~8주 이상 복용해야 효과가 나타나며, 인지행동치료와 병행할 때 치료 효과가 높아진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에는 기존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반복 경두개자기자극술을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했다. 반복 경두개자기자극술은 뇌 특정 부위에 자기장을 반복적으로 가해 신경세포를 자극하는 비침습적 치료법이다. 이를 통해 신경회로 활성이 회복되고 세로토닌 등 신경전달물질 분비가 조절돼, 우울증 증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가정의 세심한 관심과 제도적 지원 필요
의료적 치료와 더불어 가정에서의 관심과 정서적 지지도 중요하다. 유재현 교수는 “부모는 성적이나 성과 위주의 대화에서 벗어나 아이의 감정 상태를 묻고 들어주며, 작은 성취도 격려해주는 태도가 필요하다”며 “조기 발견을 위해 행동이나 표정, 말투에서 달라진 점을 세심하게 살피고, 성적 저하·일탈행동·등교 거부·신체 증상도 주의해야 할 신호임을 인지하라”고 했다. 다만 이러한 초기 신호를 놓쳐 상황이 악화한 경우라면 보다 직접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유 교수는 “이미 자해나 자살 행동 같은 신호가 나타난 경우에는 혼내기보다 감정적 고통을 인정하고, 자해 도구를 치우거나 감독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환경적 개입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정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제도적 지원도 뒤따라야 한다. 한승민 원장은 “학교 현장에서 정신건강 문제를 조기에 발견해 의료기관과 연계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돼야 하고, 상담·심리치료에 대한 보험 지원을 확대해 치료 부담을 줄이는 정책적 보완도 요구된다”고 말했다. 이어 “우울증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줄이고, 올바른 정신건강 교육을 강화해 누구나 쉽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장기적으로 소아·청소년의 정신건강을 지키는 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