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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산음료가 정신 건강, 특히 주요우울장애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탄산음료는 오랫동안 체중 증가와 충치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돼 왔다. 하지만 최근 연구에서 탄산음료가 정신 건강, 특히 주요우울장애(MDD, Major Depressive Disorder)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시됐다. 주요우울장애는 최소 2주 이상 거의 매일 지속되는 우울한 기분·흥미 저하와 함께 불면, 식욕 변화 등의 여러 신체 증상 그리고 이런 증상들로 인한 일상 기능 저하가 동반되는 질환이다. 국내에서는 인구의 약 5~10%가 이 장애를 앓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의 다기관 공동 연구진은 탄산음료 소비와 주요우울장애 사이의 연관성을 파악하기 위해 18~65세 사이의 우울증 진단 환자 405명과 정상 대조군 527명을 비교 대상으로 삼았다. 이들은 1년 동안의 탄산음료 섭취 빈도를 기록했고, 대변 샘플을 통한 장내 세균 분석도 함께 진행됐다. 장내 미생물군(마이크로바이옴)은 단순히 소화를 돕는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 면역 체계, 염증 반응, 뇌 기능 등과도 연결돼 있다는 연구가 많아지면서 최근 과학계에서는 ‘장‑뇌 축(gut-brain axis)’이라는 개념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이 연구에서는 특히 ‘에거셀라(Eggerthella)’와 ‘훈가텔라(Hungatella)’라는 균주에 주목했다. 이들 균은 이전 연구에서 염증성 장 질환, 관절 질환, 일부 암 등과 관련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분석 결과, 탄산음료를 많이 마실수록 우울증 진단 가능성이 높아지고, 증상도 더 심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여성 참가자에게서 더 뚜렷하게 드러났다. 여성의 경우, 탄산음료를 자주 섭취한 사람일수록 장내 에거셀라 균이 증가하는 경향이 동시에 관찰됐으며, 이 균이 탄산음료와 우울증 간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요소로 분석됐다. 반면 남성 참가자들은 여성보다 탄산음료를 더 많이 섭취했지만, 우울증 진단 또는 증상과 유의미한 연관성은 발견되지 않았다. 또한 에거셀라 균 증가나 훈가텔라 균의 변화와의 통계적 상관관계도 남성 그룹에서는 유의하지 않았다. 즉, 남성에게는 탄산음료와 장내 균 변화가 우울증과 연결되는 명확한 패턴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더 나아가 연구진은 실제로 ‘탄산음료 → 균 변화 → 우울증’의 경로(매개 효과)를 일부 설명할 수 있는지를 보기 위해 매개 분석을 실시했다. 매개 분석은 어떤 제3의 변수(이 경우에는 에거셀라 균의 변화)가 두 변수(탄산음료 소비와 우울증) 사이의 관계를 얼마나 ‘매개’할 수 있는지를 통계적으로 살피는 방법이다. 그 결과, 에거셀라 균의 증가는 탄산음료 소비와 우울증 간의 연관성 중 일부를 설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탄산음료 소비와 우울증 진단 사이의 연관성 중 약 3.82%, 우울증 증상 심각도와의 연관성 중 약 5%가 에거셀라 균 변화로 매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체 관계의 일부지만, 장내 세균 변화가 우울증과 관련 있다는 점을 통계적으로 뒷받침하는 근거로 해석할 수 있다.

연구진은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탄산음료가 장내 미생물 변화를 통해 우울증 위험을 일부 높일 수 있으며, 특히 여성에게는 더 민감한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다만 연구진은 “이 연구는 단면적 상관 분석 방식으로 진행돼 탄산음료가 우울증을 직접 유발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고, 오히려 우울증이 탄산음료 소비를 늘리는 방향의 인과관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한계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