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청소년과
"학교는 어린 환자들에게 꼭 필요한 곳… 수업하며 보람 느껴"
전종보 기자
입력 2023/06/01 10:09
[우리 병원 언성히어로] ⑥ 연세암병원 병원학교 윤혜진 교무부장
스포츠 뉴스 기사를 읽다보면 ‘언성히어로’라는 단어가 자주 나옵니다. 경기에서 돋보이진 않아도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해내며 팀에 보탬이 되는 선수들을 이렇게 부릅니다. 언성히어로(unsung hero)는 우리말로 ‘보이지 않는 영웅’을 뜻합니다. 사회 곳곳에는 우리가 모르는 언성히어로들이 많습니다. 병원도 마찬가집니다.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무사히 진료받을 수 있도록, 의사들이 환자를 잘 진료할 수 있도록 많은 사람이 각자 위치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 병원 언성히어로’가 그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편집자주)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은 병원 안에 있는 병원학교다. 수업 내용이나 교재 또한 일반 학교와는 다르다. 그러나 그뿐이다. 학생과 교사가 있고, 같은 반 친구가 있는 이곳은 그저 하나의 학교다. 어린 환자들은 병원학교가 있기에 힘든 상황에서도 교육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와 여러 사회관계에 대해 배울 수 있다. 연세암병원 병원학교 윤혜진 교무부장은 “학교가 수업 내용 외에도 다양한 배움의 기회와 정서적 지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병원학교는 어린 환자들에게 꼭 필요한 공간”이라며 “병원학교가 치료 중인 환자들에게 학생으로서 일상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등교 어려운 소아암·난치병 환자 대상 수업… 출석 인정돼
병원학교는 투병 생활로 인해 3개월 이상 학교에 출석하지 못하는 학생(건강장애학생)이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병원 내 교육 기관이다. 병원학교에 다니는 초등학생은 하루 1시간, 중·고등학생은 하루 2시간 이상 통합수업 또는 개별 교과수업을 들으면 하루 출석을 인정받을 수 있으며, 병원학교 수업 외에 원격 수업을 통해서도 출석이 인정된다. 일반 학교와 달리 입학이나 졸업이 없고, 병원에 입원한 학생들이 계속해서 입·퇴교하는 방식이다.
현재 전국 병원학교 수는 30여개에 달한다. 연세암병원의 경우 2000년부터 건강장애학생을 대상으로 병원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본래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수업 대상이지만, 통합수업은 나이 제한을 두지 않고 있어 오랫동안 입원 치료를 받는 유아 환자도 또한 참여를 원하면 수업을 들을 수 있다. 올해 1~4월 기준으로 초중고 학생 환자 50여명이 연세암병원 병원학교를 거쳐 갔으며, 유아 환자 또한 40여명이 수업에 참여했다.
병원학교에는 보통 교사 1~2명이 상주한다. 연세암병원 병원학교 또한 윤혜진 교무부장을 포함한 교사 2명이 통합·개별수업을 모두 맡고 있다. 윤 교무부장은 “질환별로는 소아청소년 암 환자가 가장 많고, 혈우병, 재생불량성빈혈과 같은 난치병 환자들도 있다”며 “기존에는 자원봉사 인력이 직접 병원학교를 방문해 수업하기도 했지만, 코로나19 발생 후 외부인 출입이 제한되면서 한 번씩 교실 TV를 통해 실시간 원격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 통합·개별 수업 진행… 체험 위주 과목으로 참여 유도
병원학교 역시 일반 학교처럼 교과목과 시간표가 정해져 있다. 다만 수업 성격이 다르다. 통합수업의 경우 일반 학교와 달리 과목을 ‘국영수사과’로 구분하지 않은 채 범교과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병원학교 재량에 따라 다양한 수업을 진행한다. 수업 방식 또한 체험형 수업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치료 중인 아이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병원학교에서 많은 경험을 얻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초·중·고 학생 환자의 경우 초등학교 1~2학년과 3~6학년, 중·고등학교로 나눠 국어, 수학, 영어 개별수업도 진행한다. 윤혜진 교무부장은 “수업은 보통 2~3교시로 운영된다”며 “개별 수업의 경우 학생의 치료 일정을 고려해 정규 수업 시간 이후에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투병 중인 학생들을 가르치는 만큼 수업 중에는 질환이나 투병 상황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언급하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학생들이 치료받고 있다는 사실을 억지로 떠올리려 하거나 그들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또한 경계한다. 병원학교는 배려가 필요한 곳일 뿐, 많은 동정과 연민이 필요한 곳은 아니라는 게 윤 교무부장의 설명이다. 그는 “함께 지내다보면 병원학교 학생들도 공부가 하고 싶고 또 공부가 하기 싫은 일반 학생에 지나지 않는다”며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은 반드시 인식해야 하지만, 일반 학생들과 매우 다르다고 생각하거나 불쌍히 여기진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윤혜진 교무부장은 10년째 연세암병원 병원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다른 교사들과 조금 다른 교직 생활을 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이 일에 관심을 가졌던 건 아니다. 당시 교직과정을 이수하고 직장을 구하던 중 우연히 공고를 보고 지원한 게 계기가 됐다. 그렇게 2년 동안 연세암병원 병원학교에서 인턴 교사로 일했고, 근무 기간이 끝난 뒤 1년 만에 다시 돌아와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2년간 느꼈던 보람과 즐거움, 감사한 마음이 그를 다시 병원학교로 이끌었다고 한다. 윤 교무부장은 “이곳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일이 가치 있는 일이라고 느꼈기 때문에 계속 일하고 싶었다”며 “일하면서 병원학교 교사로서 소양 또한 쌓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10년째 매일 아이들과 만나고 있는 그는 여전히 수업 방식, 내용 등에 대한 고민이 많다. 하나부터 열까지 교사의 계획에 따라 진행되는 병원학교 특성상 수업의 질, 참여도, 만족도 또한 교사의 역량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학생들에게 진정 필요한 수업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을지 생각한다. 윤혜진 교무부장은 “병원학교는 교재나 교육과정이 따로 정해져 있진 않지만, 최대한 고민해서 학생들에게 맞는 기준과 틀을 정립하고 싶다”고 말했다.
◇“힘든 시기 보내는 제자들… 스쳐가는 시간인 점 알아줬으면”
윤혜진 교무부장은 10년이라는 길다면 긴,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제자를 만났다.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제자’를 묻자 잠시 생각에 잠긴 뒤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그는 웃으면서 “사소한 것에 보람을 느끼고 감동도 잘 받는 성격”이라며 “작은 편지를 주며 감사한 마음을 표현해준 학생, 퇴원 후 건강한 모습으로 인사하러 온 학생, 야근할 때 찾아와 간식을 건네며 격려해준 학부모 등이 모두 생각난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제자들에게 진심 어린 마음도 전했다. 윤혜진 교무부장은 “제자들이 지금 이 시간이 영원한 시간이 아닌 인생에서 잠시 스쳐가는 시간인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며 “눈으로 봐선 알 수 없지만, 그 안에서 훨씬 더 단단해지고 성장하는 과정임을 이야기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1. 병원학교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수업은 뭘까? 윤혜진 교무부장은 ‘결과물이 있는 수업’이라고 했다. 만들기 수업처럼 결과물이 있는 수업을 좀 더 좋아하고, 참여도 또한 높은 편이라고 한다.
2. 반대로 집중도가 떨어지는 수업은 ‘이론이 많은 수업’이다. 다른 수업에 비해 참여율이 낮은 편이고 때때로 지루한 듯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어찌 됐든 지식 전달을 위해선 이론 수업이 필요하다. 윤혜진 교무부장의 고민이 깊어진다.
3. “빨리 끝낼게~” 윤혜진 교무부장은 수업 중 학생들의 집중도가 떨어지면 상냥한 말투로 이렇게 말하곤 한다. 재미있는 이야기도 해보지만, 역시 이 방법이 집중도를 높이는 데는 가장 좋다. 물론 정말 수업이 빨리 끝나진 않는다. 대신 학생들이 지루해하는 이론 수업은 빨리 끝내려고 노력한다.
4. 인터뷰 말미에 제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과 함께 ‘치료 후 퇴교한 제자들한테 하고 싶은 말’도 물었다. 예정에 없던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그는 “지금 치료받는 아이들이 너희가 지나간 길을 따라서 걸어가고 있는데, 너희가 잘 지나갔기 때문에 선생님들도 더 많은 희망을 이야기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것 같아.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