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경계선 지능 아동'은 사회 이슈… '고독한 싸움'을 멈추게 하자
이해나 헬스조선 기자 | 이해림 헬스조선 인턴기자
입력 2022/04/10 20:00
[조금 느린 아이들 ②] '공교육'의 혁신이 필요한 이유
경계선 지능인이 ‘사회인’으로 자립하려면 부모뿐 아니라 사회의 노력도 필요하다. 일반인 위주로 돌아가는 지금의 우리 사회는 경계선 지능인을 포용하기 어렵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문이 변화해야 경계선 지능인이 적응하기 쉬운 사회가 될까?
◇공교육이 나서서 ‘맞춤형 교육’ 지원해야
경계선 지능 아동의 부모는 자녀를 ‘일반 학교’에 보낼지, ‘특수교육’을 받게 해야 할지 고민이 크다. 경계선 지능 아동은 어디서 맞춤형 교육을 받을 수 있을까? 아쉽게도, 현행 공교육 체계 내엔 경계선 지능 아동에게만 특화된 맞춤형 교육이 없다. ‘특수교육’이나 ‘대안학교’가 그나마 차선이다.
일반 학교에서는 또래보다 학습이 부진한 학생들을 ‘학습 부진’ 아동으로 묶어 집중적으로 교육한다. 경계선 지능 아동이 여기서 함께 교육받더라도 맞춤형 교육 효과를 기대할 순 없다. 14년 차 특수교사이자 경계선 지능 아동의 아버지인 이보람 교사는 “학습 부진아를 모아 교육하더라도 그중에서 더 잘 배우는 아이 위주로 수업할 수밖에 없다”며 “경계선 지능 아동은 학습이 부진한 일반 학생보다 배움이 느려 여기서도 방치되기 쉽다”고 말했다.
‘특수교육’도 명쾌한 해답은 아니다. 일반인 지능 쪽에 가까운 경계선 지능 아동이라면 특수학급의 교육 수준이 학습 능력에 못 미칠 수 있다. 반대로 지적 장애인 쪽에 가까운 경계선 지능 아동에겐 특수교육이 도움될 수 있다. 특수학급에서 성공 경험을 하기가 더 쉬워서다. 특수교육 대상자로 선정되면 특수교육 관련 서비스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경계선 지능 아동은 대상자로 선정되기가 어렵다. 어쨌거나 지적 장애 아동보단 지능이 높으니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이다.
‘청년행복학교 별’ ‘이루다 학교’ 등 대안학교는 경계선 지능 아동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이들의 특성에 맞춰 배움과 자립의 기회를 제공한다. ‘서울시 경계선 지능 아동·청소년 실태조사 및 개선방안 연구(임성은 등)’라는 서울특별시의회 연구 보고서에선 대안학교를 경계선 지능 아동을 위한 개별화 교육기관으로 활성화해야 한다고 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보람 교사는 대안학교에서 경계선 지능 아동이 ‘사회화’ 되는 것엔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결국 살아가야 할 곳은 대안학교 바깥의 사회이고, 사회에선 대안학교에서 받았던 만큼의 배려와 이해를 기대하기 어렵단 이유였다.
이보람 교사는 “공교육이 경계선 지능 아동을 감싸 안아, 이들이 맞춤형 교육을 받으면서도 일반 아이들과 함께 자라게 해야 한다”며 “경계선 지능 아동을 학습이 부진한 일반 학생 집단이나 특수학급에 무작정 몰아넣을 게 아니라, 이들만을 콕 집어 교육할 방안이 공교육 내에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이어 그는 “경계선 지능 아동의 부모가 계속 목소리를 내야 이런 변화도 생긴다”며 부모가 아이의 상태뿐 아니라 아이가 맞닥뜨릴 사회에까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식이 변해야 적극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어
이보람 교사는 ‘경계선 지능’에 대한 우리 사회의 낮은 인식 수준이 경계선 지능 아동뿐 아니라 그 부모도 고립시킨다고 했다. ‘경계선 지능 청소년 어머니의 양육경험에 관한 연구(김고은 등)’라는 논문에서는 경계선 지능 청소년의 부모가 자녀의 경계선 지능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지적한다. 경계선 지능에 대한 사회적 이해가 없다 보니, 아이에게 부정적인 ‘낙인’이 찍힐까 걱정스럽단 것이다. 하지만 경계선 지능 아동이란 사실을 숨길수록 아이가 자신에게 맞는 교육을 경험할 기회도 멀어진다. 이보람 교사는 “사회적 낙인이 두렵다 보니, 교사가 경계선 지능 진단 검사를 권유했는데도 부모가 회피할 때도 있다”며 “아이들이 제때 진단을 받고 치료를 시작하려면 검사 비용도 낮춰야겠지만, 경계선 지능에 대한 사회적 인식 또한 제고돼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 경계선 지능 아동·청소년 실태조사 및 개선방안 연구’에서는 경계선 지능 아동의 자립을 위해 학교(교사), 가정(학부모), 지역사회(지방자치단체)의 유기적 연계와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회 구성원 전체가 경계선 지능 아동을 올바르게 이해할 때 이들도 우리 사회의 주체적 일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보람 교사는 “경계선 지능 아이가 적절한 지원과 치료를 받으려면, 부모가 정보를 알아보고 지원을 받으러 발로 뛰어야 한다”며 “부모가 위축되지 않게 하려면 경계선 지능 아동의 자립을 공동체가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디선가 고독한 싸움을 하고 있을 경계선 지능 아동의 부모를 도우려, 그 역시 유튜브 채널 ‘경계를 걷다’를 통해 경계선 지능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