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과

"뇌전증, 다양한 무기로 완치 가능… 더 이상은 '차별의 病' 아니길"

신은진 헬스조선 기자

헬스 톡톡_ 이상암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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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암 교수가 난치성 뇌전증 치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뇌전증은 간질로 불리며 원인 불명의 정신질환으로 취급받았던 질환이다. 뇌 손상으로 인해 발생한 뇌신경질환이라 치료받으면 충분히 정상생활이 가능하다. 대한뇌전증학회에 따르면, 뇌전증 환자의 70%는 약만 적절히 복용해도 경련 발작을 멈출 수 있다. 약물치료 효과가 없는 30%의 환자도 수술적 방법을 통해 증상을 개선할 수 있다. 그러나 뇌전증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뇌전증을 불치병에 머무르게 한다. 매년 2월 둘째 주 월요일 '세계 뇌전증의 날'을 맞아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이상암 교수와 함께 뇌전증에 대해 정확히 알아보자.

―뇌전증은 어떤 질환인가?

"뇌전증은 특별한 이유 없이 뇌에 발작 증상이 나타나는 질환을 말한다. 대뇌는 피질(겉)과 백질(속)로 구성돼 있는데, 뇌의 피질에서 발생한 전기현상으로 인해서 나타나는 증상을 발작이라고 한다. 이때 발작은 뇌의 피질에서 발생한 전기현상으로 인해 생기는 모든 증상을 뜻한다. 전기 현상으로 잠시 멍하니 있는 것도, 경련도 모두 발작의 한 종류이다."

―뇌전증의 원인은 무엇인가?

"어떤 종류이든 뇌의 손상을 유발하는 질환은 뇌전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과거에는 어릴 때 겪은 사고 또는 뇌염·뇌막염 등으로 인해 뇌전증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고, 최근에는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노화 또한 뇌전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 70~80세쯤 되면 특별한 사고 없이도 뇌의 퇴행으로 발작이 발생할 수 있다. 50~60세에 뇌졸중을 겪으면 이로 인한 뇌의 손상으로 뇌전증이 생길 수도 있다. 단, 뇌의 손상이 있다고 무조건 뇌전증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며, 발생한다 해도 언제 생길지는 알 수 없다. 따라서 해당 질환들이 뇌전증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기보다는 위험인자(Risk factor)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국내 뇌전증 환자 수는 얼마나 되나?

"뇌전증은 고소득 국가로 갈수록 환자 발생률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저소득 국가에서는 1%, 고소득 국가에서는 0.25~0.5% 수준으로 나타난다. 국내는 0.5%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국내 인구 200명 중 1명 정도는 뇌전증 환자가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주변에선 뇌전증 환자를 찾아보기 어렵다. 최근 치료법이 좋아져 대부분 증상 관리가 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환자 스스로 뇌전증 약물을 복용하고 있음을 절대로 밝히지 않기 때문에 환자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뇌전증 치료는 어떤 방법이 있나?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약물치료, 두 번째는 뇌를 잘라내는 외과적 수술, 세 번째는 전기자극치료다."

―뇌전증 약물치료는 어떻게 진행되나?

"약물치료의 경우, 뇌전증 치료제가 굉장히 다양해 뇌전증의 원인과 종류에 따라 약을 선택해 치료를 진행한다. 원인을 명확히 알 수 없는 경우라면 원인에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는 약제를 먼저 사용할 수도 있다. 뇌전증 치료제는 다른 질환 치료제보다 내성이 생길 확률도 낮다. 만약 내성이 생긴다고 해도 치료에 문제가 생길 정도로 발생하지는 않는다."


―외과적 수술은 뇌의 어떤 부분을 잘라내는 것인가?

"외과적 뇌전증 수술의 핵심은 뇌의 문제가 되는 부분을 잘라내는 것이다. 발작이 나타나는 부위와 병변이 일치하면 수술을 진행한다. 뇌 전체에서 문제가 발생해 특정 부위가 절제할 수 없는 경우엔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다리를 끊어 증상을 조절하기도 한다."

―전기자극 치료는 무엇인가?


"외과적 수술이 불가능한 난치성 뇌전증 환자는 전기자극치료를 시도할 수 있다. 수술보다 효과는 약하지만, 약물에 반응하지 않고 수술이 불가능한 난치성 뇌전증 환자들이 최후의 수단으로 시도해보는 방법이다. 전기자극치료는 미주신경자극술(VNS)과 뇌심부자극술(DBS)로 나뉜다. 미주신경자극술은 발작이 50% 감소하는 정도의 효과를 보인다. 미주신경자극술이 약물이나 수술만큼의 효과를 내지 못하다 보니 최근에는 뇌심부자극술이 도입돼 사용되고 있다."

―뇌심부자극술이 필요한 난치성 뇌전증 환자가 많은가?

"10명 중 7명은 약물로 발작 증상이 조절되며, 2명은 약물로 증상 조절이 안 되지만 비디오 뇌파 검사로 수술을 하기는 부족한 정도이다. 나머지 1명이 뇌심부자극술이 필요한 '난치성 뇌전증' 환자이다."

―뇌심부자극술의 효과는 어떠한가?

"뇌심부자극술의 효과는 환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뇌심부자극술은 파킨슨병에서 높은 치료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뇌전증 환자 적용 사례나 연구가 많지 않아 효과를 평가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다만, 뇌심부자극술로 치료가 잘 된 환자의 경우, 수술만큼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위험하진 않는가?

"뇌심부자극술은 뇌의 꼬인 혈관을 푸는 등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다. 그 때문에 다른 뇌수술보다 부작용이나 많다거나 별도의 합병증이 발생하는 등의 문제는 없다. 일상생활에도 전혀 문제가 없다. 몸에 설치된 전기 자극기로 인해 MRI 촬영이 어려울 수 있지만 1.5 테슬라 수준의 촬영은 가능하다."

―'세계 뇌전증의 날'을 맞아 환자와 일반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많은 사람이 가진 당뇨·고혈압은 혈관이 조금씩 망가지며 각종 합병증이 생기는 병이다. 반면, 뇌전증은 단지 1년에 2~3번, 총 5분 이내의 발작이 일어날 뿐인 질환이다. 전염 가능성도 없고 다른 건강 문제에 영향을 주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사회적 낙인효과 때문에 뇌전증 환자들은 사회적 차별 해소를 위해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소외감과 불안감을 크게 느낀다. 뇌전증은 완치할 수 있는 병이다. 최근 10년간 발작이 없으면서 마지막 약을 복용한 지 5년이 지난 상태면 뇌전증이 완치됐다고 진단한다. 환자 스스로 '내가 뇌전증 환자다'라고 당당하게 질환을 밝힐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대한뇌전증학회에서도 뇌전증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개선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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