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뇨기과
화학적 vs 물리적... 참 어려운 문제 '성범죄자 거세'
신은진 헬스조선 기자
입력 2021/08/03 09:59
효과·부작용은 비슷... 외국선 동의 하에 고환 '물리적' 제거
최근 전 엑소 멤버인 중국계 캐나다인 크리스 우가 미성년자 성폭행, 불법 촬영, 불법약물 사용 등 9개 혐의로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 캐나다는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자에게 화학적 거세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화학적 거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화학적 거세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해외 다수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다. 반면, 목적이 같은 물리적 거세는 일부 국가에서 제한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왜 대부분의 국가는 물리적 거세보다 화학적 거세를 선택하고 있는 걸까?
◇화학적 거세 vs 물리적 거세, 차이는?
성충동 약물치료제도, 일명 '화학적 거세'란 비정상적인 성적충동이나 욕구로 자신의 행위를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성도착증 환자에게 약물을 사용, 도착적인 성 기능을 약화하는 방법이다. 미국, 체코, 폴란드, 덴마크, 독일,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아르헨티나 등 세계 각국에서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1년 7월부터 '성폭력범죄를 저지른 19세 이상의 성도착증 환자로서 성폭력범죄를 다시 범할 위험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에게 화학적 거세를 시행하고 있다. 2021년 현재 화학적 거세 처분을 받은 성범죄자는 총 49명이다.
물리적 거세는 화학적 거세와 목적은 같지만, 시행 방법에 차이가 있다. 화학적 거세가 약물을 이용해 일시적으로 성 기능을 약화한다면, 물리적 거세는 고환을 외과적으로 제거해 남성호르몬(테스토스테론) 분비를 영구적으로 억제하는 방법이다. 독일, 스웨덴, 덴마크, 미국 텍사스주 등은 범죄자의 동의하에 물리적 거세를 시행하고 있다. 특히 덴마크는 1929년부터 물리적 거세를 합법화해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2년 물리적 거세가 추진된 바 있다. 성범죄자 처벌(치료) 방법에 물리적 거세를 추가하는 법안이 발의된 것이다. 당시 법안을 발의한 새누리당 박인숙 의원은 "성범죄자에게 경종을 울리려면 거세와 같은 특단의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법안 발의 배경을 밝혔다. 다만, 이 법안은 수차례 논의가 진행됐으나 논란 끝에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물리적 거세, 위험해서 안 된다? "화학적 거세와 효과·부작용 비슷"
2012년 당시 물리적 거세 도입을 반대하는 측은 물리적 거세가 화학적 거세보다 부작용이 크고, 과잉금지원칙 위반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볼 때 물리적 거세와 화학적 거세는 큰 차이가 없는 시술이다. 오히려 의료계는 물리적 거세가 이름만 다를 뿐, 암 치료 목적으로 오랫동안 시행되어 안전성이 입증된 방법이라고 전했다.
부산백병원 비뇨의학과 민권식 교수는 "화학적 거세에 쓰이는 성선자극호르몬 길항제(GnRH), CPA(Cyproterone Acetate), MPA(Medroxy Progesteron Acetate) 등은 남성의 전립선암 등의 치료에도 사용하는 약물이다"고 밝혔다. 그는 "이 약물들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낮추는 게 목적인데, 물리적 거세 역시 테스토스테론 저하가 목적인 시술이라 두 가지 방법의 효과는 같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서울시보라매병원 비뇨의학과 손환철 교수는 "물리적 거세, 즉, 고환 절제술은 화학적 거세보다 더 오랫동안 전립선암 치료를 위해 시행된 치료법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남성호르몬을 억제해 전립선암을 치료하는 방법은 1900년대 초 노벨상을 받은 오래된 치료법으로, 화학적 거세에 사용되는 약물들은 고환 절제술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다"고 설명했다.
남성호르몬 저하라는 동일한 목적의 시술이다 보니 부작용도 거의 같다. 민권식 교수는 "약물을 사용해 남성호르몬을 억제하면 골다공증, 당뇨·고혈압 등 발병률 상승, 우울증, 두통, 근육 약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하는데 물리적 거세도 같은 부작용이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화학적 거세와 물리적 거세는 물리적인 차이와 남성호르몬의 회복가능성, 부작용이 서서히 생기느냐 한꺼번에 생기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효과와 부작용은 거의 같다"고 밝혔다.
손환철 교수도 "화학적 거세는 약물 주입을 중단하면 남성호르몬이 언제든 회복될 수 있고, 물리적 거세는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차이만 있을 뿐 물리적 거세가 화학적 거세보다 부작용이 많다 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효과·부작용 차이 없는데… 화학적 거세 하는 이유는?
의학적으로 물리적 거세와 화학적 거세는 거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심지어 물리적 거세가 덜 번거롭고, 비용도 저렴하다. 물리적 거세는 30분 내외의 수술 한 차례로, 화학적 거세는 1인당 치료 비용 연간 약 500만원을 들여 최대 15년 동안 시행해야 한다.
그럼에도 전 세계적으로 물리적 거세보다 화학적 거세를 시행하는 나라가 더 많은 이유는 ‘최소한의 인권 보호’와 ‘비용’ 때문이다. 화학적 거세 후 골다공증, 우울증, 당뇨·고혈압 등이 부작용이 생기면 남성호르몬 억제 약물 투여를 중단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나, 물리적 거세는 추가 비용을 들여 남성호르몬제 투약, 질환별 치료 등을 해줘야 한다. 민권식 교수는 "물리적 거세는 다시 되돌릴 수 없는데 성범죄자라고 해도 질병이 생겼을 때 치료를 안 해줄 수는 없기에 최소한의 인권 차원에서 화학적 거세를 채택하는 국가가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단, 민 교수는 "화학적 거세가 실제 성범죄 재발 방지에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얼마나 오래 투약을 해야 재범을 예방할 수 있을지 등은 장기 임상데이터가 없다는 점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의료계는 성범죄자의 남성호르몬을 억제해도 이들이 성범죄를 다시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손환철 교수는 "처벌목적의 거세는 남성호르몬 억제를 통한 성폭력 재발 방지가 목적인데, 성범죄는 정신적인 것과도 연관이 깊어 남성호르몬 억제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손 교수는 "남성호르몬이 완전히 억제되어 있는데도 성범죄를 일으킨 사례도 있어, 성범죄 재발을 위해 거세를 채택하는 것에 의문을 표하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남성호르몬 억제만으로 성범죄자의 재범을 완전히 막기 어려운데다, 남성호르몬 억제로 인한 부작용이 발생했을 때 되돌아갈 방법이 없는 물리적 거세를 채택하기는 쉽지 않다고도 봤다. 민권식 교수는 "남성호르몬 억제를 위한 목적으로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는데도, 굳이 비가역적인 물리적 거세를 선택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민 교수에 따르면, 전립선암 치료를 위해 화학적 거세 약물을 장기 투여한 환자들은 약을 중단해도 남성호르몬이 회복되지 않는 사례가 상당수다. 민 교수는 "건강권이라는 최소한의 인권을 생각해 화학적 거세가 채택되고 있으나, 피해자의 인권을 생각한 대안이 필요한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