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돈… 과감한 투자 전략 나와야 경쟁력 있는 글로벌 허브 가능
최근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미국의 선진기술과 한국의 생산역량을 결합하는 '한미 글로벌 백신 파트너십' 구축이 확정됐다. G7 정상회담에서는 유럽연합(EU) 정상들과 백신 파트너십 논의가 이뤄졌다. 글로벌 백신 허브를 위한 첫 걸음이 시작되면서 이를 실현하는 방안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제약바이오 업계가 생각하는 '진짜' 백신 허브 도약 방법은 무엇일까? 현장 전문가들은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주관 '헬스케어 미래 포럼'에서 글로벌 백신 허브화를 위한 전략을 제시했다.
◇과감한 투자 없는 글로벌 백신 허브 불가능
제약바이오산업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글로벌 백신 허브로 도약하려면 과감한 투자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의 백신 생산역량이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글로벌 백신 허브 구실을 할 만큼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아 이를 조성하는 게 첫 번째 문제가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 우리나라의 바이오헬스 관련 예산과 인력은 부족하다. 2021년 국가 R&D 예산은 27조4000억원으로 정부 총지출 대비 비중은 OECD 상위권이나, R&D 사업비중에서 바이오헬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1조7500억원으로 하위권이다. 전문인력은 꾸준히 양성하고 있으나, 의대·약대 졸업생 대부분은 개원의나 개국약사가 된다.
서울대병원 강대희 예방의학과 교수(서울의대 코로나19 과학위원장)는 "우리나라 바이오헬스의 현 주소는 10년 전과 동일한 비중의 투자만 하면서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실패로 간주해 지원을 중단, 반도체나 IT 산업보다 훨씬 인적집약적 사업임에도 전문인력이 연구하기 어려운 환경이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 차원에서 글로벌 백신 허브를 추진한다면, 과감한 재정투자가 우선이다"고 말했다.
백신플랫폼 다양화를 위한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빠르게 대량 생산 가능한 백신의 중요도가 높아졌는데, 이는 평소 다양한 백신 플랫폼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대한백신학회 홍기종 편집위원장은 "팬데믹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100일 이내에 백신이 나와야 하기에 글로벌 백신 허브를 위한 당면 목표는 속도와 대량 생산"이라고 말했다. 그는 "글로벌 백신 허브가 되려면 안전성과 유효성을 갖춘 백신 생산은 기본이고, 이를 빠르고 많이 생산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 오동욱 회장(한국화이자 대표)은 "백신 개발·생산은 당장 기계를 도입하고 재원을 투입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백신 개발은 수십년간 인프라에 대한 투자로 기반을 마련해둬야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엄승인 본부장도 "글로벌 백신 허브는 기업의 수요를 충족시켜야 가능하다는 점에서 여러 백신 플랫폼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바이오헬스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의 중요성도 대두했다.홍기종 편집위원장은 "현재 우리나라 백신 생산 시스템은 호주나 미국에서 배양액 공급만 중단해도 셧다운되는 구조"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나라의 백신 생산 시설은 상대적으로 정비가 잘 되어 있고 인력 훈련도 잘되어 있으나 소부장을 전부 수입하고 있어, 실질적인 백신 글로벌 허브가 되려면 소부장 자급화를 위한 중소·중견기업 육성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투자하고 싶은 환경 구축해야
그렇다면 제약바이오 현장이 보는 한국의 글로벌 백신 허브 성공 과제는 무엇일까? 산업계는 한국이 기업들이 투자하고 싶은 곳이 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백신 허브는 이미 다른 국가에 여럿 존재하기에 경쟁력을 갖춰야만 글로벌 백신 허브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동욱 한국화이자 대표는 "선진국과 대형 제약사는 이미 북미, 서부유럽을 중심으로 백신을 생산하며 백신 허브를 형성하고 있고, 우리나라가 여기에 포함되려면 기업이 투자하고 싶은 지역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 반도체 산업처럼 글로벌 기업의 노하우를 배워, 이를 기반으로 우리가 경쟁력을 갖춰나가는 전략이 제약바이오 산업에서도 필요하기에 일단 기업에 매력적인 곳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 대표는 "글로벌 기업은 과감하게 투자했을 때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지역에 진입하고 싶어하기에, 이를 고려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국내 제약계를 대표해 나온 엄승인 본부장도 "우리나라 백신 시장은 중견 제약사 매출인 6000억원 수준으로 내수시장이 작은 편이라 투자가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글로벌 백신 허브가 되려면 기업에게 코로나19가 종식된 이후에도 시장 규모가 유지될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인프라 형성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은 '돈'… 투자처 다각화해야
대규모 투자가 글로벌 백신 허브 구축의 첫 단계라는 공통된 의견을 종합해보면, 결국 문제는 재원이다. 현장 전문가들은 자금지원 방식 다각화를 모색해 과감한 투자가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신약개발산업단 묵현상 단장은 "언제까지 국가 예산을 민간기업에 퍼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국내에서 5개의 백신 후보물질이 있고 임상 3상을 위해 기업당 900억원이 필요한데, 올해 정부 예산 총액이 687억뿐이라 한 곳밖에 지원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밝혔다.
묵 단장은 "이제는 정부 예산은 마중물 수준으로만 지원하고, 나머지는 민간이 투자할 수 있는 공공펀드를 통해 재원을 마련하는 민관협력 구조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나라가 개발·생산해야 백신 글로벌 허브가 될 수 있다는 강박에서 벗어난 투자가 필요하다고도 전했다. 묵 단장은 "소부장 자급화도 자체 육성에는 한계가 있으니 유력 소부장 기업의 주주가 되는 방안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