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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행장애’ 논할 때 됐다… 도 넘은 학폭·도박·마약

전종보 헬스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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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행장애가 있는 청소년들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사회 규범·규칙을 어기는 행동을 지속·반복적으로 하는 모습을 보인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청소년들의 범죄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음주나 폭력 외에도 성범죄, 마약, 도박, 음주운전 등 단순 일탈로 볼 수 없는 범죄 또한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에게 ‘품행장애’ 증상이 나타난다고 보는 동시에, 범죄 예방을 위해서라도 이들에 대한 적극적인 치료가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청소년 약 4%에게 나타나는 증상… 심리적·환경적 요인 커
품행장애가 있는 경우, 성장기 청소년들이 일반적으로 보이는 일탈 행위를 넘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사회 규범·규칙을 어기는 행동을 지속·반복적으로 하게 된다. 고대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지수혁 교수는 “품행장애의 증상, 특징들을 고려한다면 최근 범죄에 가담하는 청소년들 또한 대다수 품행장애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며 “과거보다 환자 수가 늘었다는 최근 연구결과는 없지만, SNS나 미디어를 통해 본인 스스로 또는 타인에 의해 비행 사실이 공개되면서 전보다 많이 드러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가정신건강정보포털에 따르면 품행장애의 유병률(청소년)은 약 4% 정도며, 아동기에서 청소년기로 성장할수록 증가하는 모습을 보인다. 여자에 비해 남자가 3~4배가량 많은데, 이는 품행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나 자폐스펙트럼장애 등 신경발달장애가 남자에게 더 흔하게 나타나기 때문으로 추정하고 있다.

품행장애의 원인은 크게 심리적, 환경적 요인으로 구분된다. 우선 심리적으로 보면 사회 인지능력이나 갈등을 다루는 능력 등이 부족할수록 품행장애 위험이 높아진다. 타인의 말이나 행동에 담긴 의도를 왜곡해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환경적인 요인으로는 ▲부모의 거부와 무관심 ▲신체적·정서적 학대 ▲부모의 범죄 ▲잦은 양육자 교체 등이 지목된다. 특히 가족이나 대중 매체를 통해 폭력에 자주 노출될 경우 품행장애 환자의 공격성 증가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생물학적으로 테스토스테론 호르몬 농도가 높을수록 품행장애의 확률이 더 높다는 연구 결과와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는 아동의 경우 뇌척수액 내에 세로토닌(신경전달물질) 대사물 농도가 낮은 반면 말초혈액 내 세로토닌 농도가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공감 능력 떨어져… 잘못 돌리고 공격성 합리화
품행장애가 있는 청소년들은 사람을 잘 믿지 않거나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또 잘못을 남에게 돌리고 자신의 부정한 행동을 합리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왜곡 해석한 타인의 행동을 옳은 것처럼 여겨, 공격적인 대응을 합리화하는 식이다.

정신의학(미국정신의학회)에서는 품행장애 증상을 ▲사람·동물에 대한 공격성 ▲재산 파괴 ▲거짓·도둑질 ▲심각한 규칙 위반 등 4개 유형으로 구분하며, 4개 유형을 토대로 15개 품행장애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 1년 간 이 중 3개 이상을 충족하거나, 6개월 동안 1개 이상을 충족하면 품행장애로 본다. 주요 항목으로는 ▲잦은 육체적 다툼 도발 ▲신체적 상해를 입히기 위한 무기 사용 ▲피해자와 대면한 상태에서 도둑질 ▲성적인 행위 강요 ▲타인의 재산 파괴 ▲집·건물·차량 무단 침입 ▲사기 ▲부모의 금지에도 13세 이전 잦은 외박·무단결석 등이 있다. 10세 이전에 최소 한 가지 이상의 증상을 보이는 것을 ‘아동기 발병형’이라고 하며, 10세 이전에 위의 증상이 보이지 않는 것을 ‘청소년기 발병형’이라고 한다. 지수혁 교수는 “품행장애의 개념은 ‘타인의 권리를 침범하고 현재 자신 나이와 사회 규범에 맞지 않는 행위를 하는 것’인데, 시대별로 사회규범이 달라지면서 품행장애의 양상 또한 달라지고 있다”며 “정보화시대에 청소년들이 가질 수 있는 ‘무기’가 다양해진 점 또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성인 된 후 반사회적 인격장애 생길 수도
문제는 품행장애의 증상이 호전되지 않고 장기간, 길게는 성인이 된 후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남에게 피해를 입혀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다보니 범죄 행위에 대해 심각성이나 문제의식 또한 느끼지 않게 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지속·반복적으로 범죄를 일으키거나 가담한다. 실제 품행장애가 있는 청소년의 20~30%는 성인이 된 후 ‘반사회적 인격장애(범법행위·거짓말·사기·공격 등에 대해 무책임함을 보이는 인격장애)’가 나타나기도 한다.

청소년들의 품행장애를 최대한 이른 시기에 치료해야 하는 것 역시 이 때문이다. 품행장애가 지속되면 추후 학업 중단과 범죄, 신체·정신적 손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물론,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비롯해 물질사용장애, 기분장애, 불안장애 등 다른 질환을 동반할 수 있다.

치료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우선 품행장애 청소년과 치료적 관계를 확립한 후, 조기에 꾸준히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호자가 보조 치료자로 참여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불가능한 치료 목표를 세우기보다 환자 심리에 주목해 달성 가능한 치료 목표를 함께 세우도록 하며, 환자의 강점을 부각시켜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지수혁 교수는 “품행장애는 질환인 동시에 환자의 개성, 특징인 만큼, 나이가 들수록 교정이 어려워진다”며 “따라서 보호자는 자녀의 비행을 단순 일탈로 보지 말고 관련 기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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