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전세계 HPV 백신 접종 확대… 100년 내 자궁경부암 퇴치 가능"
이금숙 헬스조선 기자
입력 2020/08/29 17:30
[전문의에게 묻다] 대한부인종양학회 김승철 회장
자궁경부암은 유방암 다음으로 흔한 여성암이다. 암 중에서 유일하게 원인이 ‘HPV(인유두종 바이러스) 감염’으로 규명돼 있는 암이기도 하다. 자궁경부암의 확실한 원인인 HPV 감염을 막는 백신은 14년 전인 2006년에 개발됐다. 현재 전세계 113개국에서 HPV백신을 국가필수예방접종사업(NIP)에 포함해 국민들에게 맞추고 있다. 백신을 통한 질병 예방 효과에 대한 것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국내 자궁경부암 명의로 알려진 이대목동병원 여성암병원 부인종양센터 김승철 교수(대한부인종양학회 회장)를 만나 HPV 백신에 대해 들었다.
국내 20~30대 여성에게서 자궁경부암 환자가 증가하고 있다. 20~30대 자궁경부암 환자수는 5년 전과 비교했을 때 32% 이상 증가했다. 젊은 세대의 성생활이 활발해지면서 HPV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자궁경부암의 99.7%는 HPV 감염이 원인이다. HPV는 성접촉을 통해 전염되는 바이러스다. 또한 20~30대 여성의 경우 건강에 대한 자신감으로 자궁경부암 검진이나 예방접종 등에 소홀히 하는 태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자궁경부암 검진은 20대부터 2년에 한번씩 국가에서 해주고 있지만, 2018년 기준 20~30대의 자궁경부암 검진율은 49%에 그쳤다. 40~50대의 검진율이 66%인 것과 비교하면 확연히 낮은 수치이다.
-어떤 유형의 HPV가 자궁경부암을 유발하나?
HPV는 현재까지 총 200여종이 발견됐다. 이 중 40여종이 직접적인 성접촉을 통해 전염되며 이 중 14가지가 고위험 HPV 유형으로 분류된다. 대표적으로 HPV 16, 18형의 경우 자궁경부암의 원인 70%를 차지한다. 또한 저위험 HPV 유형인 HPV 6, 11형은 생식기 사마귀의 원인 9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HPV 감염되면 바로 암으로 진행하나
그렇지 않다. 성인 10명 중 7명은 일생동안 1번 이상은 HPV에 감염 된다. 하지만 HPV에 감염되면 80~90%는 자연적으로 소실된다. 이 경우를 ‘일과성 감염’이라고 한다. 개인의 면역기능의 차이로 HPV에 감염된 이후 지속적으로 감염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데, 이는 ‘지속성 감염’이라 부른다.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감염될 경우 자궁경부암 등 암으로 발전할 위험이 높아진다. 현재 HPV 감염됐을 때 치료법은 없기 때문에 최선의 방법은 예방이다.
-2006년에 국내에 4가 HPV 백신이 도입되고 이후 14년이 지났다. 암의 감소 등 실제 의료현장에서의 변화는?
현재 국가에서 20세 이상 여성을 대상으로 2년 마다 무료로 진행하는 국가암검진과 국가예방접종사업(NIP)등을 포함한 HPV 백신 접종이 활성화되면서, 임상 현장에서도 지난 10년에 비해서 침윤성 자궁경부암이 감소하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다. 실제 수술 건수도 감소했다.
한편, 4가 백신이 도입된 후 2가, 9가 백신이 나왔는데, 이들 백신의 차이는 HPV 백신이 타겟으로 하고 있는 HPV 유형의 개수이다. 2가 HPV 백신의 경우 HPV 16, 18형을 커버하고, 4가 HPV 백신은 2가 HPV 백신에서 HPV 6, 11형이 추가됐으며, 9가 HPV 백신은 31,33,45,52, 58형 총 5가지가 더 추가됐다. 기존의 HPV 백신이 자궁경부암 유발 HPV 유형의 70%를 커버할 수 있었다면, 9가 HPV 백신은 자궁경부암의 원인이 되는 HPV 유형의 90%를 예방할 수 있다.
최근 의학지 란셋(Lancet)에서는 자궁경부암 사망률이 100년내 99% 감소할 것이라는 모델링 연구가 발표됐다. 이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전 세계 자궁경부암 퇴치를 위해 제시한 목표인 2030년까지 여성의 90%가 HPV 백신을 접종하고, 70%가 평생 2번의 HPV 검사를 받고, 90%가 자궁경부암 조기진단을 했을 때 가능한 일이다.
호주, 캐나다 등은 20년 안에 자궁경부암 퇴치할 것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는데, 이들 나라는 여성 뿐만 아니라 남성에서도 HPV 백신 접종을 권장하고, 접종연령도 국내보다 더 넓은 범위에서 HPV 백신 사업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HPV백신을 남성도 접종하라고 권장하는 이유는?
HPV 백신이 국내 도입된 초기에는 ‘자궁경부암 예방 백신’으로 알려지면서 여성에서 접종 중요성은 강조됐지만, 남성에서 필요성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HPV가 여성 뿐만 아니라 남성에서도 항문암, 생식기 사마귀 등을 유발하는 것이 알려지고, HPV가 성매개 감염이라는 인식이 높아지면서, 남성도 HPV 백신 접종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지난 1일 열린 대한부인종양 춘계학회에서는 HPV 백신을 남녀 모두 접종할 경우 접종하지 않았을 때보다 자궁경부암 포함 HPV 관련 암 30% 감소된다는 연구가 나왔다.
과거 천연두가 남녀 불문하고 적극적으로 백신을 접종하여 질환을 퇴치한 것처럼, HPV도 백신도 남녀 모두 HPV 백신 접종을 했을 때 예방 시너지 효과가 크다. 이미 HPV 백신을 국가 필수 예방접종(NIP)에 도입한 113개국 중 미국, 영국, 호주 등 선진국을 포함한 40개국에서는 여아는 물론, 남아까지 접종 대상을 확대했다. 또한 OECD 36개국 중 절반인 18개국이 HPV 백신 NIP에 남아를 포함하고 있다.
- HPV 백신 접종이 가장 필요한 연령대가 있다면?
HPV 백신은 성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접종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어릴 때 접종할수록 항체 생성력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만 27~45세 여성과 만 16~26세 여성에게 9가 HPV 백신을 접종 후 면역 반응을 비교한 연구결과 두 그룹의 면역 반응은 대동소이한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연령이나 결혼, 성생활 여부에 관계없이 HPV 백신 접종은 필요하다. 이미 성관계 경험이 있고 성관계를 통해 특정 HPV 유형에 감염되었다 해도 이후 다른 HPV 유형에 감염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성관계 경험이 있어도 HPV 백신을 접종하는 것이 좋으며, 이 경우 감염되지 않은 HPV 유형에 대한 예방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지난 7월, 9가 HPV 백신의 접종연령이 기존 남여 만 9~26세에서 여성의 경우 만 45세까지로 확장됐다. 9가 HPV 백신의 접종연령이 확대되면서, 2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에서 HPV 관련 질환으로부터 예방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20~40대가 자궁경부암, 생식기 사마귀 등 다양한 HPV 질환에 노출되어 있는 만큼, 국내 HPV 확산 예방 및 HPV 질환 감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