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청소년과
“아이가 손끝이 자꾸 아프다고 말하면 파브리병 의심을”
김수진 헬스조선 기자
입력 2019/09/09 07:52
‘명의톡톡’ 명의의 질환 이야기
‘소아질환 명의’ 서울아산병원 유한욱 교수 (소아청소년과)
파브리병은 남자 4만명 당 1명이 앓는 희귀 유전질환이다. 최근 TV 드라마 ‘의사요한’에서도 파브리병이 나와 관심을 끌었다. 파브리병은 희귀한데다, 잘 알려져 있지 않아 발견이 어렵다. 성인이 되어 신장, 심장 등에 문제가 생기고 나서야 원인이 파브리병임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파브리병은 어떤 질환이며, 무슨 증상을 의심해야 하는지, 치료는 어떻게 이뤄지는지 국내 소아내분비질환과 파브리병 명의인 서울아산병원 유한욱 교수에게 들었다.
Q. 파브리병이라고 하면 생소한데, 어떤 질환입니까?
A. 우리 몸에 있는 특정 효소(알파-갈락토시다제A, α -galactosidase A)가 부족해지는 병입니다. 이 효소가 부족하면 우리 몸에서 필요한 대사산물(글로보트리아오실세라마이드, GL-3)이 분해되지 못하고, 체내 여러 부위에 쌓입니다.
Q. 대사산물이 축적되면 무슨 문제가 있나요?
A. 다른 부위에도 축적되지만, 우선적으로 혈관벽에 축적됩니다. 비정상적으로 쌓이면 혈관벽 통로가 좁아지면서 혈류와 영양공급 감소에 영향을 미칩니다. 체내 모든 혈관에 적용되지만 특히 피부, 신장, 심장, 신경계의 미세한 혈관에 영향을 잘 줍니다.
Q. 증상은 어떤가요?
A. 파브리병의 ‘타입’에 따라 다릅니다. 전형적 타입이라면 유소년기에 손, 발끝 통증을 호소합니다. ‘바늘로 찌르는 것 같다’ ‘불로 지지는 것 같다’는 표현을 잘 씁니다. 요즘같이 습하고 더운 날씨면 통증이 심해지는 편입니다.
청년기가 되면 손, 발끝 통증은 줄어듭니다. 검붉은 피부발진이 배꼽이나 무릎 주변에 나타납니다. 심해지면 자율신경계가 망가져서 땀이 잘 나지 않습니다. 건강검진을 하면 단백뇨 소견이 나옵니다. 또한 각막이 혼탁하게 보입니다.
30~40대가 되면 신장이나 심장의 대사산물 축적으로 인해 심장질환(비후성 심근증), 만성신부전, 뇌졸중(조기 중풍) 증상이 나타납니다. 원인 모를 만성신부전 환자 1000명 중 1명은 파브리병입니다. 이른 나이의 중풍이나 편측 마비 증상이 파브리병 환자의 38%에서 나타난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비전형적 타입은 증상이 가볍거나, 나이가 들어 나타나는 환자들입니다. 그래서 확인이 더 어렵습니다.
Q. 남자 환자가 대부분이라고 들었습니다.
A. 파브리병 유전자는 X염색체와 관련 있습니다. 여성은 X염색체가 2개라, 큰 문제가 없이 보인자로 지내기도 하지만 남성은 그렇지 않습니다. 혈우병처럼 모계유전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보인자 여성은 대부분 정상으로 생활합니다. 경미한 발진, 손발의 이상감각 등을 보이는 정도입니다.
Q. 환자 규모는 어느 정도입니까? 인지도가 낮아, 자신이 파브리병인줄도 모르는 환자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A. 현재까지 보고된 국내 환자 수는 약 150명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진단되지 않은 환자까지 합치면 300명 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인지도가 낮고, 진단을 받지 못한 환자도 많아서 그렇습니다. 류마티스관절염이나 레이노병, 신장염, 염증성장염 등과 혼동하기도 합니다.
Q. 파브리병이 의심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손,발끝에 통증이 있으면서 단백뇨, 피부발진, 발한장애, 각막혼탁, 뇌혈관질환 등이 있으면 반드시 파브리병을 의심해야 합니다. 부모들은 아이가 손, 발끝이 따끔거린다고 하면 꾀병이라고 하지 말고, 병원을 찾으세요. 가족력에서 모계 쪽에 신장병, 순환기계 질환 병력이 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력이 있다면 착상 전 진단도 가능합니다.
혈액을 통해 효소, 유전자분석 검사로 확인할 수 있지만 동네병원에서는 검사가 어렵습니다. 가능하면 유전학 센터가 있는 큰 병원으로 가길 권장합니다.
Q. 치료는 어떻게 하나요?
A. 증상 자체를 치료하는 것 외에, 근본 치료를 위해서는 약물을 씁니다. 주사제도 있고, 유전자형에 따라 먹는 약물을 쓰기도 합니다. 먹는 약물은 최근 국내에 출시됐으며, 이틀에 1번 복용합니다. 생활습관 관리도 중요합니다.
Q. 생활습관 관리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세요.
A. 혈관이 망가지는 병이기 때문에, 혈관을 건강하게 유지해야합니다. 약물치료를 하면서 비만, 고혈압, 고혈당을 유지하면 안 됩니다. 특히 몸무게는 정상 수준으로 유지해야합니다. 정상수준으로 빼는 게 힘들다면 체중의 5~10%만이라도 줄여야 좋습니다. 통증이 있다면 스트레스나 과로는 피하고 급격한 온도 변화에 노출되는 것도 조심하세요.
유한욱 교수는
파브리병을 비롯한 소아유전질환 명의이자, ‘유전질환 개척자’로 불린다. 소아당뇨, 소아청소년암 등도 진료 분야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석박사를 나왔다. 대한소아내분비학회장, 보건복지부 선천성 기형 및 유전질환 유전체 센터장, 보건산업진흥원 희귀난치병정복사업 기획위원회 위원장,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병원장 등을 지냈다. 현재 대한의학유전학회장이자 대한유전성대사질환학회 명예회장, 대한소아내분비학회 명예회장이다. 미국소아과학회, 대한소아과학회 등에서 수상했으며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2차례 받았다. 학구적이며, 소아유전질환자에 대한 애착이 있다는 평을 듣는다. 유전질환 편견을 없애고, 유전병 환자 인권을 돌보기 위한 사회활동도 꾸준히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