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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증상이라도 방치하면 환자는 ‘죽을 맛’…온몸 아픈 환자 고치고 싶어 함께했죠”
김수진 헬스조선 기자 | 사진 김지아 헬스조선 기자
입력 2017/09/22 09:00
협진(協診)하는 의사
희귀병 ‘쇼그렌증후군’ 함께 치료하는 한양대병원 황경균·성윤경 교수
입추(立秋)가 지난 8월 초, 한양대병원의 한 회의실에서 황경균·성윤경 교수를 만났다. ‘어쩌다 같이 협진을 시작하게 되었는가’라는 물음에 두 사람은 서로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씨익 웃었다. 성 교수는 웃으며 “메일도, 공문도 없이 제가 무작정 교수님 방으로 가서 들이댔다”고 설명했다. 황 교수는 이에 질세라 “제가 평소에 같이 하자고 여기 저기 좀 흘리고 다녔는데, 성 교수님이 걸려들었다”고 응수했다. ‘환자를 위해서’란 생각 하나로 뭉친 두 사람의 이야기.
헬스조선 두 분은 쇼그렌증후군 환자를 함께 치료한다고 들었습니다. 병명이 생소한데, 어떤 병인지 설명해주세요.
성윤경 교수 쇼그렌증후군은 몸의 면역체계에 이상이 생기는 자가면역질환입니다. 면역체계는 세균같이 인체를 위협하는 물질이 들어오면 그것을 공격하는 등의 일을 하죠. 그런데 면역체계에 이상이 생기면 정상인 몸을 이물질로 인식해 공격합니다. 침샘이나 눈물샘 등을 주로 공격해 염증을 일으키죠. 구강·안구·피부·기관지·생식기 등 다양한 곳에 건조 증상이 나타나는 전신질환입니다. 또 다른 자가면역질환으로는 류마티스관절염이 있는데요, 이 특성상 류마티스내과에서 주로 관리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류마티스관절염 환자 중 쇼그렌증후군이 많아요. 류마티스관절염이 없는 쇼그렌증후군 환자라 해도 60% 정도는 류마티스 인자 검사를 했을 때 양성이 나온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한양대병원 연구 결과를 보면, 류마티스관절염 환자의 약 7.5%가 쇼그렌증후군을 동반합니다. 건조 증상이 있다고 대답한 류마티스관절염 환자는 14% 이상이 쇼그렌증후군으로 진단됐고요. 류마티스관절염이 있으면서 쇼그렌증후군이 있는 사람도 있고, 쇼그렌증후군이면서 다른 질환은 없는데 류마티스관절염이나, 그 외 다른 질환으로 오해받는 사람도 있는 거죠. 진단하기 어려운 질환입니다.
헬스조선 쇼그렌증후군에 협진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황경균 교수 다양한 곳에 건조 증상이 나타나는데, 대표적인 게 구강건조와 안구건조입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사실은 꽤 큰 문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증상입니다. 구강이 건조한건 침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아서입니다. 침은 구강 내 윤활작용·항균작용을 하죠. 침이 잇몸이나 치아를 코팅해주면 세균이 잘 붙지 않습니다. 그런데 침이 많이 없어 구강 내부가 건조하면 치주염이나 충치가 훨씬 잘 생겨요. 증상도 심하고요. 쇼그렌 같은 면역질환을 앓고 있는 분들에게 임플란트 수술 같은 행동은 신체적으로 부담이 됩니다. 그래서 일반인보다 전문적인 구강 관리가 필요합니다. 아, 건조로 인해 수면장애를 호소하는 분도 많습니다. 길게 자 봤자 2시간? 목이 너무 건조해서 아프고 불편하니 자꾸 깨는 겁니다.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지는 거죠. ‘불편해 죽겠다’고 아우성인데, 쇼그렌증후군인지도 모르고 있는 사람이 꽤 있지요.
성윤경 교수 진단이 어렵다 보니, 치과와 협진하지 않으면 엉뚱한 질환으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진단 자체에도 꼭 협진이 필요합니다. 류마티스관절염에 쓰이는 약들이 구강건조를 일으키는 게 많아요. 류마티스질환이 있으면 쇼그렌증후군이 있을 가능성도 높은데 말이에요. 그러다보니 류마티스질환 치료약 때문에 구강건조가 생기는 건지, 정말 쇼그렌증후군이 있는 건지 증상만으로는 가늠할 수가 없었어요.
헬스조선 협진이 어떻게 이뤄지나요? 두 분이 같이 협진하게 된 과정도 궁금합니다.
성윤경 교수 쇼그렌증후군으로 보이는 환자가 오면, 진단을 위해 환자를 황 교수님에게 보냅니다. 침샘 조직을 떼어내 검사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조직검사를 해보면 쇼그렌증후군이 아닌 다른 질환이라면 침샘 조직에 염증 등으로 생기는 면역세포가 없습니다. 그런데 쇼그렌 환자는 침샘에 면역 세포가 있어요. 이 부분은 내과 의사가 하기 힘듭니다. 치과 선생님들이 침샘에 관한 한 조예가 깊어요. 입술 밑에 있는 조그마한 침샘 조직을 찾아내야 하는데, 아무나 이걸 정확히 찾아내서 검사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또 류마티스질환 환자들은 발치나 임플란트를 하는 경우가 많아서, 처음부터 치과 관리를 함께 받는 게 좋아요. 쇼그렌증후군 자체는 치료도 어렵지만 진단에 있어 전문의들도 어려워하는 병입니다. 진단 기준 자체가 증상을 느껴야지만 진단을 하게 되는데, 이미 이렇게 되면 침샘이나 눈물샘이 망가져 있는 경우가 많아요. 침샘은 한번 망가지면 회복이 안 되기 때문에 처음부터 치과 관리를 받는 게 좋다고 거듭 말하는 겁니다.
황경균 교수 제가 연구하는 분야 중 하나가 침샘이라, 쇼그렌증후군에 원래 관심이 많았어요. 환자들이 구강건조를 호소하는데, 쇼그렌증후군은 기본적으로 내과에서 관리하니 ‘치과가 같이 보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을 많이 했죠. 그 전에 있던 병원에서는 전임의였기 때문에 주관해서 협진을 이끌 입장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평소에 병원에서 교수님들을 만나면 슬쩍슬쩍 흘리고 다녔죠(웃음).
성윤경 교수 큰 접점은 없지만, 치과가 적격이라고 생각한 차에 황 교수님이 침샘 분야를 잘 아시니 무작정 연구실로 가서 노크했죠(웃음). 몇 번의 미팅 끝에 쇼그렌증후군 환자를 같이 보기로 했고, 그때부터 저에게 쇼그렌증후군 환자가 오면 황 교수님도 함께 보시게 됐습니다. 사실 ‘내 환자도 아닌데’, ‘나는 구강악안면외과 교수니 내 업적에 있어 저 환자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몰라’라고 생각하셨다면 안 받아주셨을 겁니다. 제가 참 감사하죠.
황경균 교수 구강건조 증상이 있는 환자가 저에게 먼저 온 상황에서, 쇼그렌증후군이 의심되면 함께 봐달라고 요청도 합니다. 환자가 아프지 않는 상태가 우선이지요. 의사가 ‘이 환자는 안 중요하니까, 덜 아프니까 굳이 다른 과로 보낼 필요는 없다’라고 생각할 입장은 아니니까요.
성윤경 교수 제가 황 교수님에게 감동을 받은 게, 모든 의사가 황 교수님 같지만은 않습니다. 치과에 가서 침샘 기능 검사를 하고 싶다고 하면 ‘나이 들어서 그러니, 그냥 사세요’ 하는 사람도 많아요. 침샘 기능 검사를 하는 거 자체가 의사에게도, 환자에게도 어려워요. 1시간 걸립니다. 침 분비를 위해 사탕도 먹고, 침이 고이게 하고 이런 과정들을 다 거치다 보면 의사 입장에선 번거롭고 오래 걸리는 일이죠.
황경균 교수 가벼운 증상이라도 방치하면 환자는 힘들어요. 저렇게 하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까요. 그냥 살라고 하면 환자는 같은 증상으로 병원에 또 가게 됩니다. 그렇게 따지면 의사 입장에선 해줄 게 없는 거죠.
성윤경 교수 안구건조가 심한 환자는 안과의 임한웅 교수님이 봅니다. 오늘은 사정상 못 오셨지만요(웃음). 우리가 함께 진료한 지는 3년 정도 되었고, 성공적으로 협진한 쇼그렌증후군 환자는 150명이 넘습니다.
헬스조선 최근에 진료 보신 환자 이야기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성윤경 교수 마침 좋은 경우가 한 분 계시네요. 올해로 60세가 되신 한 여성 환자가 작년 5월에 처음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국내에서 ‘톱 5’로 꼽히는 한 대학병원에서 ‘루푸스신염(신장염의 일종)’으로 진단받은 분이셨죠. 고용량의 스테로이드제와 면역억제제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건강검진상 우연히 단백뇨가 발견됐고, 혈액검사 이후 루푸스신염으로 진단받았다고 했습니다. 자세한 문진 결과, 구강건조 증상이 있었습니다. 혈액검사를 해 보니 쇼그렌증후군과 관련이 있는 항체 2개가 양성으로 나타났고요. 황 교수님에게 침샘 조직검사를 부탁했죠.
황경균 교수 조직검사를 해보니 침샘에 면역 세포가 있었습니다. 침샘 영상검사에서는 턱 아래쪽 침샘의 분비 감소가 두드러져 있었고요.
성윤경 교수 신장 조직검사를 해보니 루푸스신염이 아닌 사구체신염이었고, 쇼그렌증후군도 함께 있었습니다. 병이 정확히 진단되지 못해, 굳이 필요 없는 면역억제제를 계속 먹고 있었던 셈이죠. 그래서 사용 중이던 면역억제제와 스테로이드제부터 중단했습니다. 쇼그렌증후군 조절을 위한 항말라리아제와 단백뇨 조절을 위한 항고혈압제를 처방했죠. 그렇게 1년 정도 치료했습니다. 지금 환자는 건조 증상을 호소하지 않고 큰 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최근에 받은 침샘 영상 검사에서는 침 분비 능력이 개선되었다는 것도 확인했고요. 불필요한 스테로이드제와 면역억제제도 먹지 않고 있습니다. 이럴 때 의사들은 참 뿌듯하죠. 환자에 대한 문진과, 정확한 진단을 위한 적절한 조직검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지요. 여기에는 협진이 필요합니다.
헬스조선 현재 우리나라 의료계에서는 협진이 제한적으로만 이뤄지고 있습니다. 협진이 더 활발히 이뤄지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황경균 교수 환자 입장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의사도 병원도 그렇게 해야 협진할 수 있어요. 의사가 혼자 ‘이 정도면 괜찮겠다’라고 생각할 게 아니라, 환자가 어디가 불편한지에 대해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병원도 환자를 우선으로 생각한다면 협진을 최대한 권장하고 배려해주게 돼요.
성윤경 교수 아, 그 말 제가 하려고 했는데… 다른 말을 해야겠네요(웃음). 우리끼리 ‘코모빌리티(co-mobility)’라는 말을 합니다. 동반질환이란 뜻으로 써요. 근데 동반질환이라는 말 자체가 메인이 되는 중요 질환이 하나 있고, 거기에 부가적으로 다른 질환이 따라온다는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류마티스 환자에게 동반질환으로 고혈압이 있다고 했을 때, 고혈압 진료 보는 의사가 ‘류마티스가 중하니 류마티스 치료부터 받으세요’라고 하면 고혈압은 거의 그냥 방치되다시피 합니다. ‘멀티모빌리티(multi-mobility)’로 이해해야 해요. 여러 개의 병을 같이 가지고 있는 거죠. 자기 과가 아니라고 별것 아닌 증상, 별것 아닌 질환이라 생각하지 말고 함께 치료해야 한다는 인식이 의사들에게 널리 퍼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