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제대혈, 백혈병 등에 효과 있지만 쓸일 적어… 치매 치료 "먼 얘기"
한희준 헬스조선 기자
입력 2017/02/08 04:00
국내 제대혈 보관 55만6465건
"난치병 고칠 것" 맹신 사례 많아
연구 활발하지만 불확실성 산재
현재로선 비용 대비 활용도 낮아
지난해 말 모병원그룹 총괄회장 일가가 연구용 제대혈을 미용·보양 목적으로 불법 시술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일을 계기로 '제대혈은 만병통치약'이라는 오해가 깊어질까 우려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제대혈은 탯줄에서 나온 혈액으로, 그 속에는 조혈모세포(혈액이 되는 세포)와 간엽줄기세포(조직이 되는 세포)가 들어 있어서 일부 질병을 치료하는 데 유용하게 쓰인다. 제대혈은 출산 시에 채취해서 보관·기증할 수 있는데, 지난해 상반기를 기준으로 제대혈을 보관한 건수가 55만6465건이었다(질병관리본부 통계). 하지만 제대혈이 모든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맹신해선 안 된다. 일부 산모들은 '제대혈만 보관해두면 아이가 커서 치매에 걸려도 치료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에 대해, 고대안암병원 혈액종양내과 김병수 교수는 "연구가 진행 중인 것은 맞지만, 아직까지 먼 얘기"라고 말했다. 반대로 제대혈을 보관하는 것에 대해 '전부 사기'라고 치부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제대혈과 관련된 말이 많다 보니, 제대혈을 보관하는 게 맞는 일인지 판단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제대혈에 대해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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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 일 많지 않아 '보험'에 비유
제대혈은 출산 시에 탯줄에서 뽑아낸 피를 말한다. 출산하기 전에 제대혈 은행과 계약을 맺고 분만을 담당하는 의사에게 미리 알리면 출산할 때 제대혈을 채취해준다. 채취한 제대혈은 제대혈 보관 업체로 이송돼 냉동 탱크에 보관된다. 제대혈 보관 업체는 여러 곳이 있고, 보관하는 데 드는 비용은 보관 기간에 따라 다르다. 10~30년은 99만~220만원이고, 평생 보관의 경우 400만원에 이른다. 하지만 병에 걸리지 않으면 보관해둔 제대혈을 쓸 일이 없기 때문에, 제대혈 보관을 보험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제대혈로 치료하는 대표적인 질병인 백혈병의 경우, 매년 새로 병이 발생하는 게 10만명당 1.2명 꼴이다.
◇골수 이식하는 질병에 제대혈 적용 가능
그렇다면, 보관해둔 제대혈을 쓸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 걸까? 현재 백혈병, 재생불량성빈혈, 림프종처럼 혈액을 만들지 못 하거나 혈액에 문제가 생기는 병에는 제대혈이 쓰이고 있다. 정확하게는 제대혈 속의 조혈모세포가 치료 효과를 낸다. 버려지던 제대혈이 의학적인 가치를 갖게 된 이유는 제대혈 속에 조혈모세포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원래는 골수를 뽑아내 조혈모세포를 얻었는데, 제대혈에 조혈모세포가 든 것이 밝혀지고, 제대혈을 보관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를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골수를 뽑아내는 것보다 제대혈을 채취하는 게 더 수월하고, 출생 시의 혈액이라서 바이러스·방사능 등에 오염됐을 가능성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런 질병에 걸렸다고 무조건 제대혈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한양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이영호 교수는 "병이 생긴 원인이나 상태 등에 따라 골수가 치료 효과가 클 것으로 판단되면 골수를, 제대혈이 적합할 것 같으면 제대혈을 이용해 조혈모세포를 이식한다"며 "제대혈을 쓰더라도 기증된 제대혈 중 적합한 게 있는지를 먼저 찾아보고, 마지막 보루로 출산 시 보관해둔 자가 제대혈을 쓴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 보관된 기증 제대혈은 4만9000건 정도인데, 이 중 1.3%밖에 사용되지 않았다. 자가 제대혈이 쓰인 비율은 0.07%다. 조혈모세포를 이식해야 하는 질병이 워낙에 유병률이 낮고, 제대혈뿐 아니라 골수로도 치료할 수 있기 때문에 제대혈의 활용도가 높지 않다.
한편, 제대혈 보관 은행 업체에서 제대혈 보관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하는 말 중 하나가 "제대혈로 치매나 심장병 등을 치료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이다. 실제로 간엽줄기세포를 이용해 치매, 당뇨병, 심근경색 치료제를 개발하는 임상 단계의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전문가들에 따라 '5~10년 후에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견해와 '아직 먼 얘기'라는 비관적인 시각이 있다.
◇"비용 대비 효용성 낮고, 안전성 문제"
제대혈이 실제로 질병 치료에 쓰이고 있고 관련 분야 연구가 전 세계적으로 진행 중인 건 맞지만, 한계도 분명 있다. 그 중에서도 보관 비용에 비해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견해가 많다.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아야 하는 사례가 많지 않고, 간엽줄기세포는 굳이 제대혈에서 추출하지 않아도 지방에서도 얻을 수 있다. 김병수 교수는 "오랫동안 냉동시킨 제대혈이 온전할 지 알 수 없다"며 "치료용으로 주입된 세포가 몸속에서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에 대해서도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간엽줄기세포를 이용해 치매 등을 치료하게 될 날이 최소 60~70년은 지나야 올 것이라고 본다.
☞제대혈(臍帶血)
출산 시 탯줄에서 뽑아낸 혈액. 혈액을 만드는 조혈모세포와 조직으로 분화하는 간엽줄기세포가 들어 있다. 골수 이식 대신 제대혈을 이식해 백혈병 등을 치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