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제대혈, 백혈병 등에 효과 있지만 쓸일 적어… 치매 치료 "먼 얘기"

한희준 헬스조선 기자

국내 제대혈 보관 55만6465건
"난치병 고칠 것" 맹신 사례 많아
연구 활발하지만 불확실성 산재
현재로선 비용 대비 활용도 낮아

지난해 말 모병원그룹 총괄회장 일가가 연구용 제대혈을 미용·보양 목적으로 불법 시술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일을 계기로 '제대혈은 만병통치약'이라는 오해가 깊어질까 우려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제대혈은 탯줄에서 나온 혈액으로, 그 속에는 조혈모세포(혈액이 되는 세포)와 간엽줄기세포(조직이 되는 세포)가 들어 있어서 일부 질병을 치료하는 데 유용하게 쓰인다. 제대혈은 출산 시에 채취해서 보관·기증할 수 있는데, 지난해 상반기를 기준으로 제대혈을 보관한 건수가 55만6465건이었다(질병관리본부 통계). 하지만 제대혈이 모든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맹신해선 안 된다. 일부 산모들은 '제대혈만 보관해두면 아이가 커서 치매에 걸려도 치료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에 대해, 고대안암병원 혈액종양내과 김병수 교수는 "연구가 진행 중인 것은 맞지만, 아직까지 먼 얘기"라고 말했다. 반대로 제대혈을 보관하는 것에 대해 '전부 사기'라고 치부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제대혈과 관련된 말이 많다 보니, 제대혈을 보관하는 게 맞는 일인지 판단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제대혈에 대해 알아봤다.




이미지

그래픽=김충민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그래픽 뉴스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쓸 일 많지 않아 '보험'에 비유

제대혈은 출산 시에 탯줄에서 뽑아낸 피를 말한다. 출산하기 전에 제대혈 은행과 계약을 맺고 분만을 담당하는 의사에게 미리 알리면 출산할 때 제대혈을 채취해준다. 채취한 제대혈은 제대혈 보관 업체로 이송돼 냉동 탱크에 보관된다. 제대혈 보관 업체는 여러 곳이 있고, 보관하는 데 드는 비용은 보관 기간에 따라 다르다. 10~30년은 99만~220만원이고, 평생 보관의 경우 400만원에 이른다. 하지만 병에 걸리지 않으면 보관해둔 제대혈을 쓸 일이 없기 때문에, 제대혈 보관을 보험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제대혈로 치료하는 대표적인 질병인 백혈병의 경우, 매년 새로 병이 발생하는 게 10만명당 1.2명 꼴이다.

◇골수 이식하는 질병에 제대혈 적용 가능

그렇다면, 보관해둔 제대혈을 쓸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 걸까? 현재 백혈병, 재생불량성빈혈, 림프종처럼 혈액을 만들지 못 하거나 혈액에 문제가 생기는 병에는 제대혈이 쓰이고 있다. 정확하게는 제대혈 속의 조혈모세포가 치료 효과를 낸다. 버려지던 제대혈이 의학적인 가치를 갖게 된 이유는 제대혈 속에 조혈모세포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원래는 골수를 뽑아내 조혈모세포를 얻었는데, 제대혈에 조혈모세포가 든 것이 밝혀지고, 제대혈을 보관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를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골수를 뽑아내는 것보다 제대혈을 채취하는 게 더 수월하고, 출생 시의 혈액이라서 바이러스·방사능 등에 오염됐을 가능성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런 질병에 걸렸다고 무조건 제대혈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한양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이영호 교수는 "병이 생긴 원인이나 상태 등에 따라 골수가 치료 효과가 클 것으로 판단되면 골수를, 제대혈이 적합할 것 같으면 제대혈을 이용해 조혈모세포를 이식한다"며 "제대혈을 쓰더라도 기증된 제대혈 중 적합한 게 있는지를 먼저 찾아보고, 마지막 보루로 출산 시 보관해둔 자가 제대혈을 쓴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 보관된 기증 제대혈은 4만9000건 정도인데, 이 중 1.3%밖에 사용되지 않았다. 자가 제대혈이 쓰인 비율은 0.07%다. 조혈모세포를 이식해야 하는 질병이 워낙에 유병률이 낮고, 제대혈뿐 아니라 골수로도 치료할 수 있기 때문에 제대혈의 활용도가 높지 않다.


한편, 제대혈 보관 은행 업체에서 제대혈 보관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하는 말 중 하나가 "제대혈로 치매나 심장병 등을 치료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이다. 실제로 간엽줄기세포를 이용해 치매, 당뇨병, 심근경색 치료제를 개발하는 임상 단계의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전문가들에 따라 '5~10년 후에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견해와 '아직 먼 얘기'라는 비관적인 시각이 있다.

◇"비용 대비 효용성 낮고, 안전성 문제"

제대혈이 실제로 질병 치료에 쓰이고 있고 관련 분야 연구가 전 세계적으로 진행 중인 건 맞지만, 한계도 분명 있다. 그 중에서도 보관 비용에 비해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견해가 많다.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아야 하는 사례가 많지 않고, 간엽줄기세포는 굳이 제대혈에서 추출하지 않아도 지방에서도 얻을 수 있다. 김병수 교수는 "오랫동안 냉동시킨 제대혈이 온전할 지 알 수 없다"며 "치료용으로 주입된 세포가 몸속에서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에 대해서도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간엽줄기세포를 이용해 치매 등을 치료하게 될 날이 최소 60~70년은 지나야 올 것이라고 본다.

☞제대혈(臍帶血)

출산 시 탯줄에서 뽑아낸 혈액. 혈액을 만드는 조혈모세포와 조직으로 분화하는 간엽줄기세포가 들어 있다. 골수 이식 대신 제대혈을 이식해 백혈병 등을 치료한다.



헬스조선 서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