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정보
청와대가 구입한 또 다른 의약품 염산에페드린
글 심봉석(이대목동병원 비뇨기과 교수) | 사진 셔터스톡
입력 2017/01/05 09:24
최근의 역대급 국정 농단 사태는 분야를 가리지 않는 종합 게이트로, 의료 분야도 포함되어 있다. 비뇨기과는 청와대가 구입한 약품 목록에 포함된 몇 가지 약들로 인해 논란에 끼어들게 되었다. 필자도 “고산병에 비아그라를 정말 사용하느냐”라는 문의를 많이 받았다. 하루는 동네 헬스장에 갔더니 몇몇 분이 나에게 대뜸 묻는다.
“비아그라를 고산병에도 쓴다던데, 비아그라 먹고 등산하다가 산에서 섹스하면 어떻게 돼?”
“그건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요. 산에서 그러면 팬티 속으로 흙이 잔뜩 들어가겠죠.”
함께 웃으면서 러닝머신쪽으로 걸어가는데, 다른 분이 옆자리로 오더니 또 묻는다.
“이번에 뉴스에 나온 사람들 대머리가 많던데, 대머리가 정력이 센 거 맞지?”
“머리털 빠진 저도 별 볼 일 없는 걸로 봐서는, 대머리라고 더 특별할 거 같지 않아요.”
운동을 마치고 사우나를 하는데 다른 한 분이 묻는다.
“프로포폴 맞고 섹스하면 어떻게 돼?”
“어떻게 되긴요. 프로포폴 맞은 후로는 정신을 잃으니까,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죠.”
프로포폴 통증 감소에 효과적
한 해를 마무리하는 즐거운 연말에, 건강상담도 아니고 무슨 우문우답(愚問愚答)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청와대에서 구입한 의약품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발기유발제 비아그라와 전립선비대증치료제 프로스카의 논란에 묻혀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한 중요한 약물이 하나 더 있었다. 최순실 씨의 사무실에서 입수되었다고 보도된 염산에페드린 주사제이다.
언론은 이 주사제가 프로포폴 투여 시 통증을 줄이기 위해 사용된다고 보도하면서 에페드린이 필로폰의 원료라는 설명을 덧붙여 묘한 여운을 남겼다. 마황(麻黃)에서 추출하는 알칼로이드성 결정체인 에페드린(ephedrine)은 교감신경자극제로 기침이나 가래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에페드린의 구조를 약간 변형한 슈도에페드린은 감기약으로 사용된다. 또한 에페드린은 신체의 산소 소모량을 높이고 체지방을 분해하는 효과가 있어 다이어트 약으로도 사용된다.
부작용으로는 교감신경 자극에 의한 심장 두근거림, 맥박 증가, 불안감이 생길 수 있다. 비뇨기과적으로는 에페드린이 방광 경부의 긴장도를 증가시키기 때문에 전립선비대증의 증상이 악화되거나 급성요폐가 생길 수가 있다. 전립선비대증 환자들이 감기약을 복용할 때 주의하여야 하는 이유이다. 보도된 대로 에페드린은 필로폰의 재료이기도 하다. 에페드린의 구조식은 C10H15NO이고 필로폰의 성분명인 메스암페타민의 구조식은 C10H15N으로, 이론적으로는 에페드린에서 산소기(O) 하나를 제거하면 필로폰이 된다.
감기약 성분 중에 있는 슈도에페드린을 추출해서 필로폰을 만들기도 하지만, 아무나 집에서 쉽게 에페드린으로 필로폰을 제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니 염산에페드린 주사제가 필로폰 제조용이라기보다는, 언론 보도대로 프로포폴 주사 시 통증 경감 목적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남성’이 시들지 않는 질환, 음경지속발기증
감기 치료나 다이어트에 도움을 주기 위해 에페드린 주사제를 사용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비뇨기과 영역에서는 염산에페드린 주사제를 사용한다. 그것도 일반적인 근육주사나 정맥주사가 아니라 페니스(penis), 즉 음경에 직접 놓는 주사다. 비아그라를 어디에 썼을까 하는 논란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필로폰의 원료로도 쓰이는 약물이 음경에 놓는 주사라고 하면 또다시 묘한 일들을 떠올릴 수 있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음경은 필요에 따라 발기와 이완을 반복하는 장기이다. 적절한 때에 발기가 이루어져서 적당한 시간 동안 잘 유지가 되고, 사정을 한 후에는 서서히 이완이 되어 평소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정상이다. 발기가 제대로 되지 않거나 유지가 어려운 경우를 발기부전으로 진단하는데, 치료법은 비아그라 같은 발기유발제를 사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발기가 가라앉지 않는 반대의 경우도 있다.
계속 발기되어 있다고 혹시 부러워할 남성들도 있겠지만 그렇게 좋아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 사용하고 난 후에는 말랑말랑하게 이완되어야 하는 음경이 몇 시간이 지나도 계속 딱딱하게 발기되어 있는 질환을 ‘음경지속발기증’이라 부른다. 음경에 몰린 피가 빠져나가지 않아서 생긴다. 영어 이름은 프라이어피즘(priapism)으로, 어원은 그리스 신화에서 ‘번식의 신’ 프리아포스(Priapus)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특별한 원인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골반이나 척추손상, 악성종양이나 백혈병 환자에게 발생할 수 있다. 우울증치료제 트라조돈(trazodone), 정신질환치료제 클로르프로마진(chlorpromazine), 항고혈압약제 등을 복용하는 경우에도 생길 수 있다. 어느 연령층에서나 발생하지만 성적 활동이 활발한 나이에서 주로 생기고, 발기유발제를 과다하게 투여한 경우에도 발생한다.
음경지속발기증은 몇 시간에서 수일까지 발기가 지속되는데, 심한 통증과 배뇨 곤란이 동반된다. 보통 4시간 이상 지속되면 해면체에 혈전이 생기고 피가 통하지 않아 결국 음경의 괴사가 일어난다. 즉각적인 처치로 얼음 마사지를 한다. 그래도 가라앉지 않으면 척추마취를 한 상태에서 음경에 16게이지 이상의 대바늘을 찔러 고여 있는 혈전을 뽑아내고 생리식염수로 세척한다.
음경지속발기증 치료에도 사용 가능
음경지속발기증의 응급처치법 중의 하나로, 앞서 얘기한 염산에페드린 주사제나 다른 교감신경흥분제인 에피네프린 주사제를 사용한다. 그런데 근육이나 정맥에 주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음경에 직접 주사를 놓는다. 이런 염산에페드린 음경주사는 발기유발제에 의한 음경지속발기증 치료에 더 큰 효과가 있다.
이런 치료에도 발기가 해소되지 않으면 음경해면체를 다른 정맥과 연결시키는 문합수술을 시행한다. 음경지속발기증은 즉각적인 처치를 받으면 큰 문제가 없지만, 처치가 지연되면 후유증으로 발기부전이 발생한다.
이번 의료게이트에서 갱년기 영양제인 태반주사나 마늘주사와 함께 발기유발제인 비아그라도 등장하였고, 이후 발견되었다는 염산에페드린 주사제가 음경지속발기증의 응급처치에도 쓰인다고 알게 되었다.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들을 엮어서 묘한 상상은 하지 말자. 그런 상상에 대한 의학적 근거도 없을뿐더러 너무 과도한 상상은 건강에 해롭다.
심봉석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부속 목동병원 비뇨기과 교수이다. 연세대학교 의과 대학을 졸업(의학박사)했으며, 미국 샌프란시스코 UCSF에서 연수했다. 이대 동대문병원 기획실장·응급실장·병원장 등을 역임했다. 비뇨기과 건강 서적 《남자는 털고, 여자는 닦고》를 출간하는 등 비뇨기질환에 대해 국민들이 편견 없이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있도록 앞장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