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癌으로 패인 가슴엔 남편 사랑 채웠어요"
광주광역시=정리·배지영 헬스조선 기자
입력 2008/10/07 16:01
유방암 3기 이겨낸 조복순·김현귀 부부
조복순(51ㆍ광주광역시)씨는 지난 2004년 8월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았다. 조씨는 평소 감기에도 걸리지 않을 정도로 건강했고, 10여 년 전부터 2년마다 정기 건강검진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2002년 건강검진 때에는 검진센터에 유방암 검진 장비가 없어 검사를 받지 않았다. 의사는 다른 의료기관에서라도 꼭 유방 검진을 받으라고 했으나,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건너뛰고 말았다.
어느 날 샤워 도중 우연히 가슴에 혹이 만져지는 것을 확인하고 병원에 찾았을 때는 이미 유방암이 3기까지 진행된 상태였다. 진단 당시만 해도 한 두 달을 넘기기 어려울 것으로 의료진은 예상했으나, 성공적인 수술과 항암치료 끝에 유방암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유방암 극복은 본인의 의지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가족들, 특히 남편의 도움이다. 유방암 투병 중인 아내를 지켜보며 큰 힘이돼준 남편 김현귀(53)씨와 그런 남편에게 감사하는 조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1 남편의 이야기
2004년 8월, 그날 광주광역시에서 4시간 가량 기차를 타고 서울 영등포 역에 도착할 때까지 애써 태연한 척하는 아내를 바라보며 나는 속으로 울음을 삼켜야 했다. 회사 야유회 때 처음 만나 똑 부러지고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던 성격에 반해 결혼한 지 20여 년. 평생 행복할 줄만 알았는데 아내에게 왜 암이 찾아왔을까.
암 진단을 받던 날, 주치의가 아내를 진료실 밖으로 내보내고 혼자 남은 나에게 아내가 암이라는 말을 했을 때, 온몸의 장기들이 굳어 버린 것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도 유방암 3기이며, 한 두 달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그냥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아내 없는 세상은 단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하지만 암이란 사실을 알게 된 순간에도 아내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한 두 달을 넘기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에도 아내는 울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다독였다.
"여보, 나 반드시 암 이겨낼 거야. 3기라도 치료만 잘 하면 5~6명 중에 1명은 살아난대. 절대 당신 혼자 두고 먼저 죽지 않을 거니까 나버리고 도망가면 안돼. 나 많이 도와줘야 해."
아내와 나는 유방암과의 길고 긴 싸움을 시작했다. 다행히 유방을 절제하는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하지만 항암치료라는 고개가 우리를 기다렸다.
유방암은 수술이 잘 돼도 주변으로의 전이 가능성과 재발 위험이 높은 암이기 때문에 항암치료를 1~2년간 꾸준히 받아야 한다. 1~2개월 서울의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은 뒤 광주로 와 서울을 오가며 통원 치료를 받는 생활이 시작됐다. 1주일에 2번씩 항암치료를 받으러 서울로 가야 했지만, 아내는 점점 더 용기를 얻는 것 같았다.
개인사업을 하는 나는 짬을 내고 서울에 치료 받으러 가는 아내와 동행하곤 했다. 아침 9시 당일 입원 시간에 맞추려면 새벽 3시에 일어나 밥을 지어 아내에게 먹이고, 아이들 아침 준비까지 해둬야 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힘들었지만 그보다 더 걱정됐던 것은 유방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은 뒤에도 항암치료를 받느라 머리와 눈썹, 손톱이 빠지는 등 아내가 겪고 있는 고통이었다. 예쁘고 멋 부리는 것도 좋아했던 아내의 그런 모습을 보기가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항암치료 후유증으로 병상 시트에 머리카락이 빠진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병실 청소도 항상 내가 직접 했다. 머리카락이 빠진 아내를 위해 예쁜 가발을 구입했고, 남대문 시장에 들러 예쁜 두건을 사주기도 했다.
아내는 항암치료를 받은 1년여 만에 암이 없어졌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마지막으로 입원해 항암치료를 받고 퇴원하던 날, 나는 주치의 앞에서 그 동안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기쁨과 감사의 눈물이었다.
한 두 달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던 주치의의 말이 거짓말이 된 것이 그렇게 감사할 수 없었다. 유방암을 이기겠다는 아내의 의지 앞에서 암도 굴복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3기 암을 이긴 아내가 자랑스럽다. 그리고 힘들고 고통스런 날들을 이겨낸 아내가 고맙다.
#2 아내의 이야기
그날 새벽 욕실에서 샤워기를 틀어놓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병원 진료실 문틈 사이로 들렸던 주치의 선생님의 목소리.
"유방암 3기입니다. 한 두 달을 넘기 어려우실 수도 있습니다." 믿을 수가 없었다. 감기 한 번 안 걸린 내가 유방암, 그것도 말기라니….
중고생인 두 아들은 어쩌며, 평생 밥 한번 지어 본 적 없는 남편을 두고 어떻게 세상을 떠나야 할지. 샤워기를 붙잡고 정신을 잃을 정도로 실컷 울었다. 새벽에 교회에 가 간절하게 기도했다.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린 것 같다. 살 수 있다고. 정신력만 있으면 살아나는 사람도 많다, 빨리 딛고 일어서라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오기가 생겼다. '그래, 해 보자, 암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남편은 목이 멘 소리로 의사선생님으로부터 들은 나의 몸 상태에 대해서 모두 얘기했다. 난 울지 않았다. 오히려 웃으며 말했다.
"안 됐네. 오늘부터 당신이 집안 일 다해야겠어. 나 다 나을 때까지 병수발 잘 들어야 해." 그날 밤 남편의 얼굴이 왜 그렇게 초췌해 보이던지…. 오히려 내가 남편을 위로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암과의 싸움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수술은 일단 잘 끝났지만 고통스런 항암치료가 기다리고 있었다. 워낙 평소에 체력이 좋았고, 무엇보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었던 덕분인지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구토 한번 하지 않았다. 가장 힘든 것은 남들의 시선이었다. 삼단 같던 머리는 한 움큼씩 빠졌고, 얼굴과 팔다리는 퉁퉁 부었다. 무엇보다 가슴이 없어졌다고 생각하면 속상했고, 창피했다. 남편은 묵묵히 나를 지켜보았고, 그것이 내게는 힘이 됐다.
"그 뭐냐, 내겐 수퍼모델보다 당신이 더 예뻐. 모델보다 더 예쁜 당신이 이렇게 옆에 있는데 뭘…." 남편의 실없는 농담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길고도 힘들었던 항암치료가 끝났고, 한 두 달을 못 넘길 것이라던 예상은 빗나갔다. 그 말은 내가 태어나서 들은 가장 즐거운 '거짓말'이 돼 버렸다. 이제 유방암이 내게서 물러간 지 3년 여. 남편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본 기억이 없는 것같다.
"당신, 내가 당신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르지요. 당신이 내 곁에 있으면 나는 세상 어떤 것도 두렵지 않답니다.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