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02-04
'병원 감염'은 의사들의 가장 큰 골치거리 중 하나입니다. 항상 소독약 냄새가 나는 병원은 겉보기에 얼마나 깨끗하고 청결해 보입니까? 그러나 사실은 온갖 병원체가 득시글거리는, 가장 위험한 곳 중 하나입니다. 병 고치러 병원에 갔다 도리어 병을 얻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집니다. 그런 환자에게 의사는 "체질이 이상해서 상처가 아물지 않고 계속 고름이 생긴다" "면역력이 너무 약해 감기가 폐렴으로 악화됐다"고 둘러댑니다. 보건복지가족위 소속 한나라당 임두성 의원이 정부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작년 한 해, 전국 57개 병원 99개 중환자실에서만 1871건의 병원 감염이 발생했습니다.
지난 주 한 의료계 인사와의 식사 자리에서 이 문제가 화제가 됐습니다. 이 분은 특히 중환자실에서 사용하는 인공 호흡기 튜브(플라스틱 대롱)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튜브를 통한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서구 선진국은 물론 많은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도 일회용을 사용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소독을 해서 재사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의사들이 '서킷'이라고 부르는 이 튜브는 공기만의 통로가 아닙니다. 환자의 침과 가래, 피와 고름도 이것을 통해 배출됩니다. 그 중에는 에이즈 환자의 침과 피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특수 가스로 깨끗하게 소독하므로 안심해도 된다지만 분초를 다투며 촉박하게 돌아가는 중환자실이란 특수 상황 속에서 '완벽하게' 소독되지 않은 튜브가 재사용될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임두성 의원이 국정감사를 통해 밝힌 1871건의 중환자실 병원감염 중 상당수는 이 튜브 때문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합니다.
'인공호흡기 병원 감염'의 결과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국내에는 정확한 연구 보고가 없지만, 미국의 한 연구팀이 1994~2000년 '인공호흡기 관련 폐렴'이 생긴 671명의 환자를 분석한 결과 사망률이 무려 42.3%에 달했습니다. 물론 일회용 튜브를 쓴다고 인공호흡기 폐렴을 100% 예방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감염률은 크게 낮춘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서구 선진국에서 값 비싼 일회용을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문제는 돈입니다. 중환자실 수가(酬價)가 너무 낮아 재사용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의사들의 설명입니다. 그렇다면 환자가 튜브 값을 지불하고 일회용을 쓰면 되지 않을까요? 어처구니 없게도 그것도 불가능합니다. 우리나라 의료법에 따르면 '급여' 또는 '비급여'로 결정되지 않은 약이나 의료장비는 환자가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의사의 '바가지 진료'를 차단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정부 설명이지만, 결국 자기 돈 내고 깨끗한 일회용을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것이 우리 현실입니다.
최근 대한중환자의학회는 환자 비용 부담을 조건으로 일회용을 쓸 수 있도록 이 튜브를 '법정 비급여'로 지정해 달라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요청했습니다.
/ 임호준 Health 편집장 hjlim@chosun.com
우리나라 100대 홈페이지로 선정된 인기블로그, 헬스조선 대표컬럼으로 새롭게 꾸며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