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6-11-30

독일 베스트팔리아 지방의 동네 약국 견습생이었던 20세의 세르튀너가 아편에서 모르핀을 정제하기 시작한 것은 1803년이었다. 그는 이 물질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잠의 신 모르페우스의 이름을 빌려 모르핀이라고 명명했다. 당시에는 식물에서 원하는 성분만을 추출해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렇지만 세르튀너는 별다른 특수 장비가 필요하지 않은, 약간의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따라 하기만 하면 되는, 57단계에 걸친 단순한 과정의 집합으로 이 불가능을 가능케 했다.

세르튀너는 모르핀의 약효를 검토하기 위해 동물실험을 했다. 실험동물로는 생쥐나 떠돌이 개를 주로 사용했다. 모르핀이 든 음식을 먹인 동물들은 곧 잠이 들었는데 일부는 깨어나지 못하고 죽기도 했다. 다음은 사람에서의 약효를 알아볼 차례였다. 세르튀너는 스스로 이 약을 시험해볼 생각이었지만 더 많은 데이터를 얻기 위해 세 명의 친구들에게 협력을 요청했다.

친구들은 약을 먹인 동물들 중 일부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망설였지만 안전을 기하기 위해서 약의 양을 극도로 줄일 뿐 아니라 자신도 같이 약을 먹겠다는 그의 간곡한 설득에 넘어가고 말았다. 이들은 모두 17세의 소년들이었다.

실험이 시작되었다. 세르튀너와 친구들은 용액에 녹인 반 그레인(0.0648g)의 모르핀을 마셨다. 곧 얼굴이 화끈해지고 열이 나는 것이 느껴졌다. 반시간 후 다시 같은 양의 모르핀을 복용하자 열감이 심해졌고 어지럼증과 구토가 나타났다. 15분이 지난 후 그들은 또 반 그레인의 모르핀을 복용했다. 이번에는 네 명 모두 예리한 복통을 느꼈고 정신이 몽롱해졌다.

반쯤 쓰러져 꿈속을 헤매던 세르튀너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준비했던 구토촉진제를 모두에게 복용시켰다. 결국 심한 구토 끝에 위 속에 남아 있던 모르핀을 토해낸 세 사람은 무사했으나 한 명은 혼수상태에 빠져 다음날 아침에야 겨우 깨어났다.

네 사람은 그 후 며칠 동안 구토와 식욕부진, 두통 및 복통에 시달렸다. 무모해 보이는 이 실험으로 세르튀너는 아편의 주요 효능이 모르핀에 의한 것임을 증명한 것이었다. 그들이 복용한 모르핀의 양은 현대의 환자들에게 권장되는 용량의 10배가 넘는 것이었다.

모르핀의 분리 정제는 약제를 화학적 방법으로 분석한 최초의 사건이었으며 약물들을 순수한 성분으로 파악하는 현대적 약리학의 시발점이었다. 이를 계기로 경험적으로 사용되어 왔던 혼합물 약제들이 정제된 성분으로서 치료에 사용되는 과학적 의학의 전통이 확립되었다.


/ 이재담·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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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의학사

[울산 의과 대학교]
이재담 교수

서울대 의과대학
일본 오사카 시립대학 박사
미국 하버드 대학 과학사학교실 방문교수
현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교실 교수

의학의 역사를 이야기형식으로 재미있게 소개하는 이재담교수의 의학사 탐방코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