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6-11-30

위염 원인 찾기위해 '균' 마셔

1892년 10월 7일 아침, 74세의 막스 폰 페텐코페르는 콜레라균을 마셨다. 독일 최초 위생학 교수였던 그는 콜레라의 유행에는 균뿐 아니라 환경·개인 건강 같은 요인도 작용한다는 것을 증명하려 목숨 건 실험을 감행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예언대로 몇 차례의 가벼운 설사 후에 완쾌됐다.

거의 한 세기 지난 1984년 어느 여름날. 32세의 베리 마셜은 당시 ‘캄필로박터’로 알려진 세균이 위염과 궤양의 원인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 균을 마셨다. 의학에서 세균이 특정 질병의 원인이 되기 위해서는 ?병든 조직 속에 균이 존재할 것 ?균을 순수하게 분리 배양할 것 ?배양된 균을 동물에 주입해 같은 병을 만들 것 ?이 병든 조직에서 다시 같은 균을 발견할 것 등 네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마셜은 자신의 논문에서 균을 마신지 8일째에 소화불량 증상이 나타났고, 10일 후의 조직검사에서 많은 균이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의학계는 마셜의 주장을 받아 들이지 않았다. 논문의 당사자 한 명만이 참가한 실험이었던데다 궤양이 생기지 않았고, 그나마 별다른 치료없이 나았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강력한 산성인 위 속에 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주장이 배척당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이런 종류의 신화는 대부분 언론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위 속에 균이 존재한다는 것은 19세기에 이미 보고됐고, 1938년에 정식으로 확인됐다. 어찌 보면 마셜 본인도 신화를 만들어 내는 데 기여했다. 그는 자신의 발견으로 위산 억제제를 만드는 제약회사의 주식이 떨어졌다던가, 진실을 덮으려는 ‘기득권 세력들’이 있다는 등의 인터뷰를 했다. 페텐코페르 흉내를 내 균을 마신 것도 이 신화를 돋보이게 하는 극적인 요소 중 하나로 작용했다.

의학계가 이 균이 소화성 궤양의 원인이 된다는 마셜의 가설을 인정한 것은 균을 마신 실험 때문이 아니라 재발하는 궤양을 항생제로 완치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기 때문이었다. 1992년부터 발표되기 시작한 여러 임상시험 결과를 토대로, 1994년에 미국 국립보건원이 헬리코박터에 대한 항생물질 치료를 권고함으로써 소화성 궤양 치료에 새로운 장이 열리게 되었던 것이다. 이 공로로 마셜은 2005년 노벨 의학상을 수상했다. 사족을 하나 달자면, 필자가 아는 한, 헬리코박터와 요구르트는 별 관계가 없다.

이재담·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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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의학사

[울산 의과 대학교]
이재담 교수

서울대 의과대학
일본 오사카 시립대학 박사
미국 하버드 대학 과학사학교실 방문교수
현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교실 교수

의학의 역사를 이야기형식으로 재미있게 소개하는 이재담교수의 의학사 탐방코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