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6-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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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맞아 부모님 건강에 관한 글을 준비해 봤습니다. 그토록 크고 높게만 보이던 부모님의 어깨가 자식 앞에서 왜소해져 보일 때 자식은 참으로 이상한 감정에 빠지게 합니다.
일제 식민통치와 한국전쟁의 격동을 겪어내고, 개발시대에 허리띠를 졸라매며 자식을 생명처럼 아끼고 키워 준 부모님들의 얼굴과 몸가짐, 행동들을 한번 찬찬히 살펴 보시길 바라겠습니다. 이번 추석에는 당신 몸이 아프고 불편해도 내색하지 않았던 부모님에게 건강을 한 보따리 선물해 보시길 권하겠습니다.
제일 먼저 하실 일은 부모님의 혈압과 혈당, 콜레스테롤 등을 살펴보는 일입니다. 만약 최근에 피 검사를 받지 않았다면 연휴가 끝난 직후 병원에 가서 피 검사를 받게 하십시오. 십중팔구 부모님께선 “내 몸은 내가 안다. 필요 없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어머님(아버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절 위해서 꼭 받으세요”라고 말입니다.
제가 항상 강조하는 바이지만 요즘은 아프다고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는 시대입니다. 만약 어르신 연세가 일흔이고 현재 특별히 중한 병으로 고생하지 않는다면 최소 10년 이상은 사십니다.
문제는 지금부터 혈압-혈당-콜레스테롤 등을 적극적으로 관리하지 않는다면 남은 세월 동안 병치레를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본인이 고통스러울 뿐 아니라 치료비도 엄청나게 많이 들기 때문에 제발 아들(딸)을 위해서라도 꼭 병원 검사를 받고, 혈압약-혈당약-콜레스테롤약 등을 복용하라고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약 값을 걱정하시는 분이 있다면 혈압-혈당-콜레스테롤약은 대부분 보험이 되므로 아주 싼 값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꼭 강조하십시오. 실제로 한달 혈압약값의 본인부담금은 1만원 정도면 해결 됩니다. 만약 그 돈을 아끼려다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이 오면 천문학적 치료비용이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편 특별히 혈압이나 콜레스테롤이 높지 않더라도 예방적으로 어린이용 아스피린 한 알 정도를 매일 복용하게 하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것도 병원에 가서 처방 해 달라고 하면 싼 값으로 복용할 수 있습니다.
아스피린을 복용하면 피가 묽어져 뇌졸중이나 심근경색 등 순환기 질환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값비싼 혈액순환 개선제나 보약보단 한 알에 50~100원 정도인 아스피린이 훨씬 명약이고 보약이란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노인에게 가장 위험한 병이 뇌졸중 이므로 부모님께 최근 1년간 1)신체 한 쪽에 갑자기 힘이 빠지거나 감각이 둔해진 적이 있는지 2)물체가 두 개로 보이는 등 시력 또는 시야장애가 생긴 적이 있는지 3)말이 잘 안되거나 이해를 하지 못하거나 또는 발음이 어눌해 진 적이 있는지 4)갑자기 어지러워 쓰러지거나 걸음이 휘청거린 적이 있는지 5)평생 경험해 보지 못했던 극심한 두통이 갑자기 생긴 적이 있는지를 물어봐야 합니다.
이런 증상은 본격적인 뇌졸중이 생기기 전에 나타나는 뇌졸중 전조증상일 가능성이 크므로 정밀검사를 받아 보시게 해야 합니다. 재빨리 손을 쓰지 않으면 본격적인 뇌졸중이 들이닥쳐 반신불수, 언어장애 등을 남길 수 있다고 좀 ‘겁’을 주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다음은 체중감소가 있는지를 눈 여겨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체중감소란 최근 6개월 동안 체중의 10% 이하가 감소한 경우를 말합니다.
체중감소의 원인은 여러 가지인데 예를 들어 다뇨(多尿), 다음(多飮), 다식(多食)하면서 피로감을 느낀다면 당뇨병을 의심할 수 있고, 속 쓰림, 설사, 구토, 복통이 주기적으로 발생하며 체중감소가 된 경우에 위암 등 소화기관 장애를 의심할 수 있습니다.
또 기침이나 미열이 지속되며 체중이 감소한 경우엔 폐결핵을, 늘 피곤하고 피부가 누렇게 변하면서 체중이 감소된 경우엔 간질환을 의심할 수 있습니다. 호흡이 곤란하고 몸이 부으면서 체중이 감소된 경우엔 심장질환을 의심할 수 있습니다.
그 밖에 각종 암, 갑상선기능항진증, 뇌하수체기능저하증 등의 병도 체중감소가 생길 수 있습니다. 원인이 무엇이든 노인들의 체중감소는 매우 심각한 질병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크므로 즉시 진찰을 받고 적절한 치료를 하게 해야 합니다.
기침을 하는지, 숨을 가빠하는지, 가래가 많은지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심장병이나 뇌졸중 등 순환기 질환에 비해 호흡기 질환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간과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호흡기 환자는 순환기 환자에 비해 결코 적지 않습니다.
밤에 숨이 차서 잠을 잘 못 이루거나 계속 기침을 하는 경우엔 기관지 천식, 만성기관지염, 만성폐쇄성폐질환, 폐렴, 폐암 등을 의심하고 검사를 받아 보는 게 좋습니다. 호흡기 질환은 잘 낫지 않기 때문에 사실 병을 발견해도 당장 완치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적절한 치료로 병의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으며, 그것만으로도 삶의 질이 하늘과 땅만큼 좋아지므로 꼭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게 하십시오. 한가지 강조할 것은 담배를 끊게 하십시오.
어르신이 술을 즐기신다면 지금 와서 구태여 못 드시게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담배는 생명을 단축시킬 뿐 아니라, 노년의 삶의 질을 갉아먹기 때문에 꼭 끊게 하는 게 좋습니다.
특히 어머님은 걸음걸이가 어기적 거리게 변했는지 여부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집안에 파스가 박스 채 있는 지도 살펴보십시오. 만약 그렇다면 관절염 때문에 무진장 고생 하시고 계실 것입니다.
사실 이 시기 관절염은 대부분 퇴행성이므로 특별한 완치 법이 없지만 최소한 약물치료로 통증은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어머님의 말 못하는 고통을 덜어주시기 바랍니다. 어머님의 다리가 오(O)자형으로 벌어져 있는 분 중 경제력이 있다면 인공관절 수술도 고려해 보시기 바랍니다.
500만원 가량 드는데, 이 수술은 기본적으로 70대 노인들을 위해 개발됐기 때문에 나이가 많다고 절대 포기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꼬부랑 할머니처럼 허리가 구부정하게 변했다면 정형외과에 모셔서 사진을 찍고 척추성형술 등을 검토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머님들이 흔히 앓는 병 중 하나는 하지의 부정맥입니다. 다리 안쪽 혈관이 마치 지렁이처럼 튀어 나오는 병입니다. 이 병은 비교적 쉽게 수술로 치료가 가능하므로 가까운 외과에 가셔서 치료 받으시기 바랍니다.
시야에 이상이 있는지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눈 앞에 안개가 낀 듯 희뿌옇게 변했다면 백내장 가능성이 있고, 시야가 좁아져 정면에서 비껴나 있는, 즉 측면에 있는 물체를 잘 못 본다면 녹내장 가능성이 있습니다.
녹내장은 사실 치료가 불가능하지만, 백내장은 인공수정체를 갈아 끼우는 수술로 간단하게 완치되므로 안과검진을 꼭 받게 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제 부모님도 그렇지만 아프고 불편하셔도 자식에게 누가 될까봐 말을 않고 계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 못하시는 그 심정을 자식이 먼저 헤아려서 돌보는 이번 추석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세상 사는 것이 팍팍하고 어렵지만 마음만이라도 넉넉한 한가위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조선일보 의료건강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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