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7-12-13
송년회의 계절입니다. 이 때쯤이면 두주불사(斗酒不辭)로 술을 마시는 사람이나, 보리 밭에만 가도 취하는 사람이나, 매 한가지로 술 걱정을 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신문이나 방송에선 ‘안주를 충분히 먹으면서 천천히 마시라’는 소위 ‘건강 음주법’ 기사를 앵무새처럼 내 보냅니다. 그러나 정말 건강하게 술을 마시는 방법이 있을까요?
술과 건강과의 관계에서 가장 헷갈리는 개념이 취기(醉氣)입니다. 사람들은 알코올의 독성과 취기를 같은 개념으로 여깁니다. 술이 많이 취하면 그만큼 몸이 많이 상하고, 취하지 않으면 건강에도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조금 마시고 취할 수도 있고, 많이 마시고 안 취할 수 있기 때문에 취기는 중요한 기준이 못됩니다.
알코올의 독성은 취기가 아니라 마신 술의 양과 정확하게 비례합니다. 취하든 취하지 않든 마신 양만큼 몸에 해롭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늦게 취하는 주법(酒法)을 ‘건강 음주법’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만, 때로는 빨리 취해서 뻗어 버리는 것이 알코올의 독성을 최소화하는 훌륭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취하지도 않고 주는 대로 넙죽넙죽 술을 받아 마시는 사람은 겉은 멀쩡해 보여도 속은 골병이 들고 있습니다.
‘건강 음주법’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방법대로 마시면 때로는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제 주량보다 훨씬 많은 술을 마시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주량이 100인 사람이 안주를 충분히 먹으면서 천천히 술을 마신다고 가정합시다.
이 사람의 위장에선 알코올뿐 아니라 안주까지 분해해야 하므로 그만큼 알코올의 흡수속도가 느려집니다. 따라서 100의 술을 마셨는데도 흡수는 50밖에 안돼, 뇌는 ‘50을 더 마시라’고 명령하게 됩니다. 50의 취기를 더 얻기 위해 또 100을 마셔야 하니, 모두 합해 200의 알코올을 마시게 되는 셈이지요. 거꾸로 빈속에 빨리 술을 마시면 알코올이 신속하게 흡수돼 50 밖에 마시지 않았는데도 뇌는 100을 마신 것으로 착각하고 “그만 마시라”고 명령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빈속에 ‘깡술’을 마시고 뻗어버린 사람은 건강을 지키고, 안주를 먹으며 천천히 술을 마신 사람은 건강을 망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실제로 숙취로 고생하는 사람은 회식 자리서 일찍 뻗어 버린 사람이 아니라 대부분 2차 3차를 전전하고, 해장국까지 먹고 귀가하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한번 마셨다 하면 ‘끝장’을 보고야 마는 주당(酒黨)과의 술자리나,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반 강제로 술을 마셔야 하는 송년회 자리 등에선 차라리 빈속에 빨리 폭탄주를 마시고 뻗어 버리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습니다. 최선의 송년회 전략은 안 취하는 게 아니라, 적게 마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설마 이 글을 ‘폭탄주 예찬론’으로 이해하는, 머리 나쁜 주당들은 없겠지요?
/ 임호준 Health 편집장 hjl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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