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7-11-15


커피는 개인적으로 가장 즐기는 기호품 중 하나였습니다. “영혼을 깨우는 향기”라고 했나요? 그 흑암처럼 깊고 쓰고 매혹적인 향기는 축축 늘어진 몸과 마음에 신비한 힘이었습니다. 한 잔의 진한 블랙 커피가 있기에 충분히 행복했습니다.

언제부턴가 문제가 생겼습니다. 저녁에 커피를 마시면 잠을 못 자게 됐습니다. 그때만 해도 참을 만 했는데, 상황은 점점 악화돼 몇 년 전부턴 오후에 마시는 커피도 문제가 됐습니다. 급기야 요즘은 오전이라도 두 세잔 이상 마시면 잠을 설칩니다. 내 청년 시절의 ‘낙(樂)’들이 이렇게 사라져 가는 것 같아 마음이 착잡합니다.

한 가정의학과 의사가 “피하지 말고 부딪히라”는 해법을 제시했습니다. 최소 몇 주일간은 잠을 설칠 각오를 하고 오후에든 저녁에든 커피를 마시라고 했습니다. 다만 몸이 적응되기까지 처음엔 조금씩 마시다, 차츰 양을 늘여 나가라고 했습니다. 물론 불면의 고통이 따르겠지만 그 값으로 커피에 대한 민감성이 떨어져 예전처럼 커피를 즐길 수 있다고 했습니다. 몸에 해롭다고 무조건 피하기만 하면 결국엔 좋아하던 모든 것들을 포기해야 될 수 있으니, 일부러라도 그 해로움에 노출돼 저항력을 키워야 한다는 논리였습니다.

최근 20~30대 이하 연령층에서 A형 간염이나 아토피·알레르기 질환 등이 급증하는 이유를 의학자들은 ‘위생 가설’로 설명합니다. 위생 상태가 좋지 않았던 과거엔 태어나면서부터 온갖 세균과 바이러스, 알레르겐(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물질) 등에 노출되고 자연스레 그에 대한 항체가 생겨 이런 병들이 별 문제가 안됐는데, 위생적인 환경에서 자란 요즘 세대는 한번도 인체 면역체계가 적과 싸워 단련 받을 기회를 갖지 못해 쉽게 병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의사들은 끊임없이 도망치는 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집이나 사무실 같은 주거-업무 환경을 마치 무균실(無菌室)처럼 유지하라고 합니다. 틈만 나면 손을 깨끗이 씻고, 독감 철엔 극장 같이 사람 많은 곳에 가지도 말라고 합니다. 심지어 조금 춥거나 더우면 야외 활동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도대체 조심스러워서 어떻게 그렇게 살수 있겠습니까?

온실 속 화초가 아닌 잡초가 되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모든 환경을 100% 제 구미에 맞게 통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살다 보면 상한 음식이나 불량식품을 먹어야 할 때도 있고, 때로는 온갖 세균과 바이러스가 득시글거리는 곳에서 잠도 자야 합니다. 환경을 사람에 맞게 통제하는 것보다는 자기 몸을 환경에 맞게 단련시키는 것이 훨씬 고(高) 차원의 건강법입니다. “이건 이래서 건강에 나쁜데…”라며 조마조마하며 살기보다 짓밟히고 짓밟혀도 살아나는 잡초의 건강법을 배울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임호준 Health 편집장 hjl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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