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조선 명의 톡톡’ 인터뷰
‘신장이식 명의’ 세브란스병원 이식외과 허규하 교수

신장 기능이 완전히 망가진 말기 신부전 환자는 투석 또는 이식이라는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상대적으로 짧은 생존 기간, 잦은 병원 방문에 따른 번거로움 등을 고려하면 투석보다 이식이 더 나은 선택지로 평가되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가족으로부터 신장을 이식 받는 생체공여자 이식은 혈액형이 맞아야 하고, 뇌사공여자 장기 이식은 공여자, 즉 이식 받을 장기를 찾는 것 자체가 어렵다.

‘혈액형 부적합 신장 이식’이 등장하게 된 데는 이 같은 배경이 깔려있다. 이 수술은 이식 전 전처리 과정을 통해 거부 반응을 억제함으로써, 혈액형이 맞지 않는 사람 간에도 신장 이식이 가능하게 한다. 1990년대 일본에서 처음 시작했고, 우리나라에는 2000년 중반 도입됐다. 혈액형 부적합 신장 이식이 시행되면서, 그간 이식 순번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많은 말기 신부전 환자들이 지체 없이 이식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세브란스병원 이식외과 허규하 교수를 만나 혈액형 부적합 신장 이식의 원리와 효과에 대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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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병원 이식외과 허규하 교수 / 세브란스병원 제공
-혈액형이 다른데 어떻게 이식이 가능한 건가?
“예를 들어 혈액형이 A형인 환자는 B형 혈액형 항원에 대해 항체를 갖고 있다. 때문에 A형 환자에게 B형 공여자의 신장을 이식하면 항체가 항원을 공격하고, 심한 경우 곧바로 신장이 망가지는 초급성 거부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혈액형 부적합 신장 이식은 이를 막기 위해 이식 전 항체를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뜨리는 탈감작 치료를 시행한다. 항체를 물리적으로 걸러내는 혈장교환술을 진행하고, 항체를 만드는 면역 세포를 억제하기 위해 면역억제제를 쓰기도 한다.”

-혈액형 부적합 신장 이식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나?
“이식 전 검사를 통해 ‘항체 역가’를 확인한다. 이식이 필요한 환자가 특정 혈액형 항원에 대한 얼마나 많은 항체를 갖고 있는지 보는 거다. 항체 역가가 너무 높은 경우 수술 전 혈장교환술이나 약물 치료를 통해 항체 역가를 낮춘다. 그럼에도 항체 역가가 떨어지지 않으면 혈액형 부적합 이식이 어려울 수 있다. 그런 경우는 10명 중 1명 정도다.”

-탈감작 치료는 언제부터 얼마나 받아야 하나?
“항체 역가에 따라 다르다. 역가가 낮으면 수술 일주일 전쯤 입원해서 혈장교환술을 두세 번만 실시하고, 역가가 매우 낮을 경우엔 혈장교환술 없이 면역억제제만 사용하기도 한다. 반대로 항체 역가가 매우 높으면 3주 정도 전에 입원해 10회 이상 혈장교환술을 시행해야 할 수도 있다.”


-탈감작 치료에 따른 부작용이나 합병증 위험은 없나?
“면역억제제를 사용하면 아무래도 감염에 의한 합병증 발생 위험이 있다. 혈장교환술을 많이 시행한 경우에는 혈액형 항체와 함께 혈액 응고 인자가 함께 걸러지면서 수술할 때 일시적으로 지혈이 안 될 수도 있다. 다만, 문제가 생겨도 대부분 치료 가능하다. 치료가 안 되는 경우, 초반에 급속히 안 좋아지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전체 신장 이식 중 혈액형 부적합 이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우리나라 신장 이식 건수가 1년에 2000건 정도이고, 그 중 3분의 2가 생체공여자 신장 이식이다. 혈액형 부적합 신장 이식은 생체공여자 이식의 25~30%를 차지한다. 세 건 중 한 건 정도라고 볼 수 있다.”

-과거에 비해 늘어나는 추세인가?
“혈액형 부적합 신장 이식이 처음 개발된 당시에는 비장을 적출해 면역세포를 억제했다. 그러다 2000년대 초부터 면역억제제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후 다양한 면역억제제들이 개발·도입되면서 훨씬 더 안전하게 이식이 가능해졌다. 치료 성적 역시 좋아지면서 지금은 국내도 많은 의료기관에서 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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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클립아트코리아
-이식 후에는 어떤 치료·관리가 필요한가?
“수술 이후 항체 역가가 다시 올라가면 거부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때문에 수술 후 2주, 길게는 한 달 정도 자주 항체 역가를 확인해야 한다. 만약 항체 역가가가 높아졌다면 수술 후에도 혈장교환술이나 면역글로불린 치료 등이 필요할 수 있다. 수술 후 한 달 이상 지나면 항체로 인해 거부 반응이 발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혈액형 적합 신장 이식과 치료 성적은 비슷한가?
“큰 차이 없다. 혈액형 부적합 신장 이식 후 5년 콩팥 생존률은 94~95%, 10년 콩팥 생존율은 88~90%로 보고된다. 이식 직후에 생기는 문제들만 잘 해결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투석과 비교하면 확실한 이점이 있나?
“공여자와 혈액형이 맞지 않는 말기 신부전 환자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투석을 하면서 뇌사공여자 신장 이식을 기다리거나, 탈감작 치료 후 혈액형 부적합 신장 이식을 받는 거다. 전자의 경우 대기 등록 후 실제 이식하는 데 평균 7~8년이 소요되는 반면, 후자의 경우 바로 신장을 이식하기 때문에 치료 성적이 좋고 투석 기간도 줄일 수 있다. 실제 투석을 받는 뇌사자 신장 이식 대기 환자와 혈액형 부적합 신장 이식을 받은 환자들의 생존률을 비교했더니 혈액형 부적합 신장 이식 환자의 생존률이 더 높게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삶의 질 향상과 의료비 절감 측면에서도 혈액형 부적합 신장 이식이 투석만 받거나 투석을 받다가 뒤늦게 이식을 받는 것보다 이점이 더 크다.”

-최근 로봇 수술도 가능해졌다고?
“많은 외과 수술에 로봇을 도입·활용하고 있다. 신장 이식도 마찬가지다. 혈액형 부적합 신장 이식뿐 아니라, 전체 신장 이식 수술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는 변화다. 로봇 수술은 작은 신장 혈관을 꿰맬 때 정교한 기술·움직임이 가능하다. 수술 후 환자의 통증을 완화하고 회복 기간을 줄일 수 있으며, 작게 절개하기 때문에 미용적인 측면에서도 이점이 있다.”


-생존률을 높이려면 앞으로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지금보다 효과적인 탈감작 치료가 필요하다. 수술 후 항체 역가가 다시 상승하는 환자들의 경우 혈장교환술을 기반으로 치료해도 한계에 부딪힐 때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조직 적합형 항원에 대한 항체 거부 반응을 해결하는 약제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런 연구들이 잘 이뤄져서 이식 전·후 탈감작 치료를 통해 지금보다 효과적으로 항체 역가를 떨어뜨린다면 생존률이 더 높아질 수 있다.”

-끝으로 환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공여자와 혈액형이 안 맞는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실망할 필요 없다. 항체 역가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고, 비용이나 효과 등을 고려했을 때 적합하다고 판단되면 혈액형 부적합 신장 이식을 선택할 수 있다. 이식 후 초반에만 잘 관리한다면 장기적으로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허규하 교수는…
연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세브란스병원 장기이식센터 소장을 맡고 있으며, 전문 분야는 신장 이식이다. 혈액형 부적합 신장 이식, 고감작 환자 신장 이식, 로봇 신장 이식 등을 시행하고 있다. 대한이식학회 기획위원장, 대한신췌장이식외과연구회 학술이사 등을 맡는 등 대외적으로도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허 교수는 앞으로도 더 많은 환자들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신장 이식을 받고 새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연구·진료에 매진한다는 계획이다.


전종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