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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신경학회지'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주 3회 이상 3개월 넘게 지속되는 만성 불면증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경도인지장애나 치매로 진행할 위험이 약 40%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밤마다 반복되는 수면 문제를 단순한 불편함으로 넘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증상이 치매와 같은 뇌 질환의 초기 신호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신경과 전문의들은 수면과 뇌 노화의 관계를 '양방향'으로 설명한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치매 위험이 커지고, 반대로 치매 초기에는 뇌의 수면-각성 조절 기능이 무너지면서 수면 장애가 먼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수면 변화 자체가 뇌 이상을 알리는 신호가 될 수 있다.

특히 수면의 질이 떨어지면 뇌의 '청소 기능'도 함께 약해진다. 뇌에는 노폐물을 제거하는 '글림프계'가 있는데, 이 시스템은 깊은 잠을 잘 때 가장 활발히 작동한다. 이 과정에서 알츠하이머병과 관련된 독성 단백질인 베타 아밀로이드가 제거된다. 하지만 깊은 수면이 부족하면 이 노폐물이 제대로 배출되지 않고 뇌에 쌓인다. 이런 축적이 반복되면 치매 발생과 진행을 촉진할 수 있다.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대표적인 '경고 신호' 세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밤에는 못 자고 낮에는 졸릴 때
뇌의 ‘생체 시계’가 망가지면 낮과 밤의 리듬이 흐트러진다.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은 기억뿐 아니라 수면 리듬을 조절하는 뇌 부위에도 영향을 준다. 이로 인해 깊은 잠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기 어려워지고, 수면 패턴이 불규칙해진다. 밤에는 잠들기 어렵고 자주 깨며, 낮에는 식사 중이나 대화 중에도 졸음을 참기 힘든 상태가 나타날 수 있다.

이른바 '밤 불면-낮 졸림' 패턴은 뇌 기능 변화의 초기 신호로 여겨진다. 여기에 오후나 저녁 시간대 혼란이나 불안이 심해지는 ‘일몰 증후군’이 함께 나타나기도 한다.

실제 연구에서도 이러한 연관성이 확인된다. '미국신경학회지'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주 3회 이상 3개월 넘게 지속되는 만성 불면증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경도인지장애나 치매로 진행할 위험이 약 40%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불면증이 아밀로이드 축적뿐 아니라 뇌혈관 기능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꿈을 실제 행동으로 옮길 때
잠자는 동안 꿈 내용을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증상도 중요한 신호다. 소리를 지르거나 발로 차고, 심하면 침대에서 뛰어내리는 행동은 '렘수면행동장애(RBD)'로 불린다. 정상적인 렘(REM)수면에서는 몸의 근육이 일시적으로 마비돼 꿈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이 기능이 무너지면 꿈을 그대로 몸으로 표현하게 된다.

이 증상은 특히 루이소체 치매나 파킨슨병과 관련이 깊으며, 기억력 저하보다 수년 먼저 나타날 수 있다. 미국 뉴욕대 랑곤헬스의 신경과 전문의 제러미 리프 박사는 최근 영국 '데일리메일'에 "파킨슨병 계열 질환은 수면 장애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며 "성인기에 갑자기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신경퇴행성 질환의 초기 신호일 수 있다"고 했다.

또 캐나다 맥길대 연구에서는 렘수면행동장애 환자를 약 12년간 추적한 결과, 절반가량이 파킨슨병이나 치매로 진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밤에 이유 없이 돌아다닐 때
밤에 이유 없이 집안을 돌아다니는 행동 역시 주의가 필요하다. 이는 뇌의 생체 시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초기 치매 환자는 밤에 집 안을 배회하거나 물건을 정리하고, 심한 경우 외출을 시도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낙상이나 사고 위험도 크게 높아진다. 또 깊은 수면 부족이 반복되면 뇌 노폐물이 더 많이 쌓이고, 이는 다시 수면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이런 증상이 지속된다면 반드시 진료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국 신경과학자 첼시 로르샤이브 박사는 "불면, 낮 졸림, 수면 리듬 이상, 이상 행동 등이 계속되면 수면 전문의 상담이 필요하다"며 "여기에 기억력 저하나 행동 변화까지 동반되면 신경과 진료를 꼭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장가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