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수염으로 하반신 마비… 극심한 신경통에 일상 제한
“존엄한 죽음 선택권 필요” 헌재 헌법소원 심리 진행 중
전문가들 “환자 선택권” vs “생명 경시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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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계 이상으로 체온 조절 능력이 떨어져 마비된 두 다리는 얼음장처럼 차갑고, 마비되지 않은 가슴 윗부분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뜨거워 이명식씨는 큰 고통을 겪고 있다./사진=이명식씨 제공
극심한 통증이 오래 이어지면 삶의 끝을 스스로 결정하고 싶다는 생각에 이른다. 중증 질환으로 일상생활 대부분을 타인의 돌봄에 의존해야 하는 경우라면 그 고민은 더 깊다. 간병과 돌봄이 이뤄지더라도 고통을 완전히 덜어주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척수염을 앓아 하반신이 마비된 이명식(65)씨도 그런 상황에 놓여 있다. 척수염은 척수(뇌와 몸을 연결하는 신경 조직)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이다. 그는 어느 날 ‘존엄한 죽음’을 주제로 한 기사를 우연히 접한 뒤 조력 존엄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 조력 존엄사란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통해 통증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간병 부담을 지고 있는 가족에게 짐을 덜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현재 조력 존엄사는 스위스·호주 등 일부 국가에서 제도적으로 허용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관련 법이 마련돼 있지 않다. 이에 이씨는 2023년 12월 조력 존엄사를 허용하지 않는 현행 법체계가 헌법에 위반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그가 이러한 결심에 이르기까지는 긴 투병 과정이 있었다.

◇피부 알레르기 주사 뒤 척수염 진단… 하반신 마비로 이어져
이명식씨는 2019년 12월 26일 제주 한림읍의 한 의원에서 피부 알레르기 증상 완화를 위해 주사제를 맞았다. 그날 저녁부터 두통이 시작됐다. 다음 날 뇌가 잘리는 듯한 통증을 느꼈고, 12월 29일 응급실 치료를 받았지만 호전되지 않았다. 2020년 1월 1일부터는 섬망과 단기 기억 상실 증상이 나타나 의식을 제대로 회복하지 못했다. 소변까지 나오지 않으면서 여러 병원을 거쳐 서울의 상급종합병원에 입원했다. 그는 2020년 2월 12일 퇴원 당시 ‘척수염’ 진단을 받았으며 이후 젖꼭지 아래 감각 저하와 하반신 마비, 배뇨·배변 장애를 안고 사는 중이다. 장애 등급은 2020년 9월 ‘심한 장애’로 확정됐다.


이씨가 겪는 고통은 단순한 하반신 마비에 그치지 않는다. 마비된 두 다리에는 덤프트럭에 깔린 듯한 압박감이 지속되거나, 동상에 걸린 다리를 쇠파이프로 두들겨 맞는 듯한 통증이 번갈아 나타난다. 여기에 다리가 통제되지 않게 떨리거나 갑자기 굳어버리는 강직 증상까지 반복돼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힘들다. 휠체어에 오래 앉아 있는 것도 쉽지 않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은 하루 두세 시간을 넘기기 어렵다. 이씨는 “배뇨는 소변줄에 의존하고 배변도 가족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외부 활동도 사실상 제한됐다”며 “오후 4시 30분 이후부터 통증이 심해져 일찍 잠자리에 들고, 통증을 피하고자 다음 날 오후 1시까지 잠을 잔다”고 말했다.

그는 통증을 줄이기 위해 신경병증 통증 치료제와 트라마돌 성분 진통제를 복용하고, 마약성 진통제 계열 패치인 노스판 패치도 사용하고 있다. 양쪽 허벅지에 패치를 붙이면 통증이 약간 완화되지만, 부작용으로 피부가 화상을 입을 정도로 타들어 간다. 그럼에도 다른 방법이 없어 4일 간격으로 교체하며 사용하고 있다. 이씨는 “패치를 붙이면 통증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겨우 버틸 수 있는 수준으로 낮아질 뿐”이라며 “그마저도 없으면 견디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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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글라이딩을 즐길 만큼 건강했던 시절의 이명식씨./사진=이명식씨 제공
◇통증 속 극단 선택 고민… 조력 존엄사 알아봤지만 현실 장벽
이러한 극심한 통증 때문에 이명식씨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고민했다. 다만 가족이 사고 현장을 감당해야 할 상황을 떠올리며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이후 이씨는 통증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던 중 해외 조력 존엄사 제도를 알게 됐다. 스위스의 조력 존엄사 단체들을 검색하며 관련 절차와 기준을 확인했다. 그는 “알아보니 말기암 환자뿐 아니라 ‘극심한 통증’으로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진 환자도 대상이 될 수 있었다”며 “나 같은 사람에게도 길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희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후 스위스의 조력 존엄사 단체인 디그니타스, 페가소스, 라이프서클, 그리고 호주의 엑시트 인터내셔널 등에 회원으로 가입했다. 그러나 실행을 위해선 넘어야 할 현실적인 제약이 많았다. 현재 그는 휠체어를 사용하고 있어 해외로 이동하려면 가족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씨는 “딸이 함께 가야 하는 상황인데, 현행 법에 따르면 가족이 해외에서 조력 자살을 돕는 경우 자살방조죄로 처벌될 가능성이 있다”며 “간병으로 지친 딸에게 범죄 이력까지 남길 수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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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이명식씨의 모습과 노스판 패치로 인해 화상을 입은 양쪽 허벅지​./사진=이명식씨 제공
◇“간병·돌봄도 필요하지만 존엄한 죽음 선택할 권리 있어야”
이러한 현실적인 제약 속에서 이명식씨는 조력 존엄사를 허용하지 않는 지금의 법체계가 헌법에 위반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그는 현재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 연명의료 중단만 허용할 뿐 조력 존엄사 제도는 마련하지 않은 점을 문제로 들었다.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제삼자의 도움을 받아 삶을 마감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이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과 자기결정권, 헌법 제17조의 사생활의 자유에 포함된다는 주장이다.

또한 현행 대한민국 형법 제252조는 자살을 돕는 행위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조력 존엄사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1월 16일 해당 사건을 ‘심판회부(사건을 본격적으로 심리·판단하기로 결정하는 절차)’ 하면서 조력 존엄사에 대한 헌법소원 심리가 시작됐다. 앞서 2017년과 2018년 제기된 유사한 헌법소원은 모두 각하된 바 있다.

이명식씨는 조력 존엄사 제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더욱 폭넓게 이뤄지기를 바라고 있다. 특히 현재 국내에서 조력 존엄사 논의가 주로 말기 환자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흐름에 대해, 극심한 통증을 겪는 환자 역시 제도 논의에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씨는 “간병·돌봄 체계 확대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돌봄만으로 통증을 해결하기 어려운 환자에게는 삶의 마지막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선택지도 필요하다”며 “저처럼 죽음의 시점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장기간 극심한 통증을 겪는 환자들도 논의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헌법소원 본안 심리 중… 전문가 의견은 엇갈려
현재 이명식씨가 제기한 헌법소원은 헌법재판소에서 본안 심리(사건의 실질적인 쟁점을 판단하는 절차) 중이다. 이씨는 “변호인단에서는 공개 변론을 신청해 둔 상태”라며 “올해 말이나 내년쯤 결정이 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조력 존엄사 제도를 국회 입법만으로 도입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며 “헌법소원에서 위헌 결정이 내려지면 제도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조력 존엄사에 대한 전문가들의 입장은 어떨까. 조력 존엄사 법안을 대표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은 2022년 8월 국회 토론회에서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극심한 고통 속에서 생을 이어가야 하는 상황에서 환자가 스스로 삶을 마무리할 선택권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며 조력 존엄사 제도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의료·윤리 분야에서는 제도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 나온다. 같은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서울대 철학과 김현섭 교수는 “환자의 결정이 온전한 자신의 의사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며 “조력자살 합법화 이후 자살률이 증가했다는 연구도 있는 만큼, 제도 도입의 사회적 영향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 역시 해당 개정안과 관련해 “조력 존엄사에 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충분하지 않다”며 “생명 경시 풍조가 확산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유예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