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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연명치료를 경험한 고령 환자 수는 오히려 매년 증가하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회생 가능성이 낮은 ‘연명의료’를 중단해야 한다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의학적 효과가 제한적인 치료를 무리하게 이어갈 경우 환자의 고통과 부담만 늘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실제 연명치료를 경험한 고령 환자 수는 오히려 매년 증가하고 있다. 지난달 11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연명의료, 누구의 선택인가’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0년(2013~2023년)간 65세 이상 사망자 259만명 가운데 연명의료를 경험한 환자 수는 연평균 6.4%씩 늘었다. 같은 기간 전체 사망자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55%에서 67%로 높아졌다. 이처럼 연명의료를 경험하는 환자가 늘어나면서, 환자의 신체적 고통과 경제적 부담은 물론 가족의 간병 부담까지 함께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병원 치료 중심’​ 구조, 자기결정권 반영 어려워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의료·제도 전반의 구조적 요인과 맞닿아 있다고 본다. 아주대 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이미진 교수는 “재택 돌봄과 호스피스·완화의료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말기 환자는 병원 치료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며 “치료 행위에 보상이 집중된 행위별 수가 체계와 연명의료 중단 이후 법적 분쟁을 우려한 방어적 진료가 맞물리면서, 의료진과 가족 모두 일단 치료를 이어가는 선택을 하게 되는 구조”라고 말했다.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점도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률이 낮고 죽음에 대한 대화를 꺼리는 문화 탓에, 대부분 위기 상황에서 연명의료 여부를 뒤늦게 논의한다. 이때 환자는 이미 의사 표현이 어려운 상태에 놓여, 가족과 의료진이 관성적으로 치료를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서울성모병원 가정의학과 신현영 교수는 “가족 전원 합의 등의 절차 요건이 현실에서는 큰 장벽으로 작용한다”며 “환자가 사전 의사를 밝혔더라도, 실제 상황에서는 가족 간 이견이나 판단 번복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현행 법·제도의 한계도 영향을 미친다. 연명의료결정법 제16조 제1항에 따르면, 연명의료 중단은 회생 가능성이 없고 임종이 임박한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 한해 허용된다. 이 요건을 충족해도 담당 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 1인의 공동 판단을 거쳐야 한다. 다만, 임종기 해당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회복 가능성이 낮은 상황에서도 연명의료 중단 논의가 지연되기 쉽다.

◇‘​​치료 중단 결정’​ 심리적 큰 압박… 의료비·간병 부담 키워
연명의료가 장기화하면 의료비 부담은 물론, 가족의 간병 부담도 가중될 수밖에 없다. 회복 가능성이 낮은 말기 환자의 경우 생애 마지막 1년 동안 입원 치료와 중환자실 이용, 고가 시술이 집중되면서 의료비 지출이 많이 늘어난다. 동시에 가족이 병원에 상주하거나 교대로 간병을 맡는 경우가 많아 간병 시간과 돌봄 부담도 함께 증가한다.

이미진 교수는 “장기 입원이 이어질수록 가족 구성원이 일을 그만두거나 근로 시간을 줄이게 되면서 가계 소득이 감소하고, 의료비와 간병비 부담까지 겹쳐 재난적 의료비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이러한 돌봄 부담은 딸이나 며느리, 배우자 등 여성 가족 구성원에게 집중되는 경향을 보이며, 경력 단절과 건강 악화로 연결될 수 있다”고 했다.


연명의료 결정 과정에서 가족이 떠안는 심리적 부담도 적지 않다. 환자의 사전 의사가 명확히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연명의료 중단 여부를 가족이 대신 판단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가족은 생명의 마지막을 두고 윤리적으로 가장 어려운 선택을 제한된 시간 안에 내려야 하고, 여기에 장기 간병 부담까지 겹치면서 심리적 소진을 겪게 된다. 동국대 사회복지학과 김학주 교수는 “유교적 문화 속에서 ‘끝까지 치료해야 한다’는 인식이 작용하면서 가족 간 의견 차이가 갈등으로 번지기 쉽다”며 “막판 결정이 다툼이나 법적 분쟁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일본 등 제도화… “​병원 밖 돌봄 선택지 넓혀야”​
이처럼 한국은 연명의료 결정과 간병, 비용 부담이 가족에게 동시에 집중되는 구조인 반면, 해외는 사전의료계획과 공적 돌봄 제도를 통해 그 부담을 사회가 흡수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성인 인구의 약 3분의 1이 사전의료지시서를 작성해 말기 치료에 대한 선호를 미리 정리하고 공유하는 흐름이 확산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국가 의료체계(NHS)에서 ‘지속적 의료보장 제도’를 통해 중증·복합적인 의료적 필요가 있는 환자에게 의료·돌봄 서비스를 공적으로 지원한다.

일본 역시 개호보험제도를 통해 말기 환자 돌봄을 사회보험 체계 안에서 분담하고 있다. 장기요양이 필요한 환자는 공적 보험을 통해 방문간호, 재가 돌봄, 시설 서비스 등을 이용할 수 있어, 간병 책임과 비용이 가족에게 전적으로 집중되지 않도록 설계돼 있다. 이미진 교수는 “이 같은 차이가 연명의료 장기화는 물론, 외국과 우리나라의 간병 부담 격차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불필요한 연명의료가 관성적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바꾸기 위해 충분한 상담이 가능하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 연명의료 결정과 사전의료계획(ACP) 상담은 의료진의 자발적 설명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충분한 시간과 논의가 이뤄지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미진 교수는 “ACP 상담에 대한 별도 수가를 신설하고, 의료기관 내 윤리 자문과 상담을 전담할 인프라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며 “상담과 작성에 그치지 않고, 사전의사가 실제 진료 현장에서 확인·반영되도록 시스템 연계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중장기적으로는 호스피스·완화의료와 지역사회 돌봄 인프라 확충이 필수적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김학주 교수는 “​​말기 환자가 병원에 머물 수밖에 없는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연명의료 장기화와 가족 부담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재택 의료와 재가 돌봄, 호스피스 서비스가 충분히 제공돼야 환자와 가족이 치료 중단 이후의 삶을 현실적인 선택지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다.

공적 간병 지원과 소득 보전 장치 강화 역시 함께 논의돼야 할 과제로 제시된다. 장기 간병으로 인한 소득 감소와 돌봄 부담이 가족 개인의 문제로 남을 경우, 연명의료 결정 자체가 가족의 경제적·사회적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신현영 교수는 “연명의료 문제를 개인의 선택이나 가족의 책임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생애 말기 돌봄 전반을 공적 제도가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