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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경도요양병원 이윤환 이사장​./사진=오상훈 기자
간병비 부담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가운데, 요양병원 간병비를 건강보험 급여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7일,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서영석, 김남희, 김 윤 의원 공동 주최로 열린 ‘요양병원 의료기능 강화 및 간병비 급여화’ 국회 토론회에서 요양병원 종사자들은 “간병비가 단순한 비용 문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는 문제”라고 말했다. 정부는 현재 진행 1단계 시범사업을 통해 국비로 간병비를 지원하고 있다. 급여화가 되면 건강보험 재정이 투입되는 만큼 요양병원의 기능 강화 등이 필요하다는 전문가 제언도 잇따랐다.

◇의료적 필요도 높은 환자 선별해 지원해야
고령 인구 증가에 따라 건강보험 진료비는 매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간병은 여전히 개인의 몫으로 남아 있다. 보호자가 병실에 상주하지 않는 간호간병통합병동이 활성화되고 있는 중증질환자나 요양병원은 입원 환자들은 여전히 가족, 간병인 중심의 사적 간병에 의존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간병인 1인을 고용하는 데 월 평균 370만원이 소요된다.

요양병원 간병비에 대한 공적 지원체계는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발제자로 나선 순천향대 보건행정경영학과 함명일 교수는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받으면 요양보호사가 있는 요양시설에 입소하거나 재택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만 의료적 필요가 크다면 요양병원에 들어가야 한다”라며 “요양병원 간병비는 급여가 안 되기 때문에 환자들이 전액 본인 부담해야 하는데 간병 도우미료가 연간 9% 상승하는 등 고통이 큰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요양병원 간병비 급여화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정부도 요양병원 중증환자 간병비 본인 부담율을 현재 100%에서 2030년 30% 이내로 낮추는 전략 과제를 발표한 바 있다. 다만 건보 재정이 안정적으로 늘어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의료적 필요가 높은 환자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게 함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인공호흡기 치료가 필요한 환자나 중증 치매 환자 같은 최고도·고도 환자를 우선 적용 대상으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며 “현재 요양병원에는 의료적 필요도가 높은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가 혼재돼 있는데, 낮은 환자는 지역돌봄 체계로 편입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함 교수는 아울러 요양병원의 기능 재편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필요한 비급여 치료나 면역항암제 등을 처방하는 요양병원에 간병비를 지원하는 경우 재정 누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간병비 지원 대상 환자는 일정 수준 이상의 질을 담보하는 요양병원 입원 환자로 정할 필요가 있다”라며 “기준을 세워 첫해에는 200개 병원에서 시범사업을 시작하고 이후 350개, 500개로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가는 방안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료 역량이 떨어지는 요양병원은 장기요양시설이나 재가 돌봄으로 전환을 유도하거나 호스피스, 치매 등 특화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처럼…” 입원 환자 인권 향상시키려면 급여화 시급
요양병원 관계자들은 간병비 급여화가 미룰 수 없는 과제라는 입장을 내비쳤다. 또 다른 발제자로 나선 예천 경도요양병원 이윤환 이사장은 일본 사례를 들어 간병비 제도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2000년 이전 일본 요양병원은 냄새가 진동하고 환자가 묶여 있는 모습이 지금의 한국과 다르지 않았다”며 “개호보험이 도입되면서 모든 병원이 동일한 수가를 적용받게 됐고, 서비스 질 경쟁이 촉발되면서 환자 인권이 크게 향상됐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요양병원이 간병비 할인 경쟁에 내몰려 인력을 줄이고 서비스 질이 떨어지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이사장은 “간병비를 낮추면 적정 인력을 둘 수 없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간다”며 “2014년 장성 요양병원 화재 참사 역시 야간에 간병인이 한 명도 없는 상황에서 발생한 구조적 문제의 결과였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실제 환자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중증 치매 환자가 간병인의 도움으로 증상이 호전됐지만 한 달 60만원의 간병비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했다”며 “간병비를 받지 않는 병원에서는 돌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환자가 욕창으로 악화됐고, 3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간병비 급여화는 병원의 생존이 아니라 환자가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권리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라고 말했다.

토론자로 참여한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 환자 중심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대표는 “급성기 병원에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적용된 이후 간호 인력은 늘고 간병 인력은 줄었다”라며 “처음에는 환자들 반응도 좋았지만 병원들이 중증 환자나 간병이 필요한 고령자들은 안 받으면서 비판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요양 부분만큼은 환자들 중심으로 갔으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내년 하반기부터는 급여화를 시행한다는 입장이다. 정부쪽 인사로 참여한 복지부 공인식 건강보험지불혁신추진단장은 “오는 12월까지는 세부적인 추진 방안을 세운 다음 내년 하반기에는 급여화를 시작할 예정”이라며 “22일에는 공청회를 통해 요양병원 간병비 급여화 추진 방향을 발표하고 현장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요양병원이 의료적 필요도가 높은 환자 중심으로 양질의 간병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