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비 10조원 시대, 가족이 감당하기엔 역부족
'경기도 SOS 프로젝트'처럼... "국가가 나서야"

누군가는 부모를 돌보느라 직장을 그만두고, 또 누군가는 월 수백만 원에 달하는 간병비 앞에서 치료를 포기한다.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한국에서 간병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현실이다. 헬스조선은 ‘간병’ 기획 시리즈를 통해 독자와 함께 이 문제의 실체를 들여다보고 대안을 모색하려 한다. (편집자주)
치매 환자가 100만 명을 넘어선 초고령 사회. 간병은 이제 가정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과제가 됐다. 가족의 헌신에 기대던 전통적 방식은 한계에 다다랐고, 사적 간병인과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역시 비용과 인력 부족이라는 벽에 가로막혀 있다. 경기도의 ‘SOS 프로젝트’ 같은 지원책이 등장했지만, 근본적인 해법은 국가 차원의 책임제 도입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치매 등 간병 수요 폭증하는 한국
국내 간병 보험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1~11월 국내 전체 생명보험사·손해보험사 합산 치매·장기간병보험의 첫회 보험료는 883억6606만원으로, 전년 동기(519억2560만원)보다 70.2% 증가했다. 미래 간병비에 대비하려는 사람이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국내 연간 사적 간병비 지출 규모는 지난 2018년 이미 8조원을 넘었고, 올해 10조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가족 단위로 해결해왔던 전통적인 간병 체계는 더 이상 유지가 어렵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고 1~2인 가구가 많아지면서 환자를 장기간 돌보기 위한 인적·물적 자원이 턱없이 부족해졌다. 한신대 사회복지학과 홍선미 교수는 “수명은 늘어났지만 건강 수명이 따라 늘지 않다 보니 병의 이환 기간이 굉장히 길어졌다”며 “그동안 암 등 고액 중증질환 치료비에 대한 건강보험 보장률은 꾸준히 향상돼 의료비에 대한 부담은 줄었지만 치료 기간은 고려되지 않아 노인성 질환에 의한 간병 부담이 급증했다”고 말했다.
◇가족 간병 때문에 ‘죽고 싶다’는 생각도…
간병 형태는 크게 ▲가족 간병 ▲간병인에 의한 간병 ▲간호·간병통합서비스로 나뉜다. 이 가운데 가족 간병은 비용이 적게 드는 장점이 있지만 가족 구성원들의 건강과 삶이 심각하게 훼손되기도 한다. 간병하던 가족 구성원이 사회적 고립과 우울감으로 정신적 어려움까지 겪는 경우가 많다. 실제 경기복지재단이 간병 경험이 있는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간병으로 우울·불안·스트레스를 느낀다”고 응답한 비율이 87.8%에 이르렀다. “간병 때문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비율도 17.4%였다.
간병의 부담이 가족에게 전가되는 걸 막기 위해 정부가 도입한 게 ‘간호·간병통합서비스’다. 의료기관 내에서 전문 간호 인력이 24시간 환자를 돌보면서 가족이 병실에 상주하지 않아도 되는 체계다. 그러나 지난해 기준 전국 병상 수 가운데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상은 약 30%에 불과하다. 게다가 병원들이 거동이 어려운 중증 질환자 대신 경증 환자만 받으려고 하면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 상태다. 실제 건강돌봄시민행동이 지난 7월, 전국 상급종합병원과 지방의료원을 합쳐 총 82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중증환자가 통합병동 이용이 가능하지 문의한 결과, 조사에 응한 50개 기관 중 4곳(8%)만이 “서비스 이용이 가능하다”고 답했다.
여기에는 인력 문제가 주요 원인으로 거론된다. 간호사, 간호조무사 외에 보조 인력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병원이 서비스를 확대하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홍 교수는 “통합병동에서 간호 인력은 의료 서비스에 집중하고 간병은 보조 인력인 요양보호사나 간병인이 맡는 경우가 많은데 보조 인력이 부족한 게 원인”이라며 “또 인구 대비 병상 수가 많고 환자들의 재원 기간이 긴 한국에서 통합병동 서비스를 100% 확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간병인 고용에 370만 원 지불해도 불안
간병인에 의한 간병은 비용 문제가 크다. 급성기 치료를 마친 뒤에도 간병과 돌봄이 필요한 환자들은 대부분 장기요양시설로 향한다. 장기요양시설은 요양원과 요양병원으로 나뉘는데 통상 ‘장기요양등급’을 받으면 요양원으로, 그렇지 않으면 요양병원으로 향한다. 요양원은 장기요양보험을 통해 요양보호사를 고용한다. 반면, 요양병원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지만 간병 인력이 필요한 경우, 개인이 사적으로 고용해야 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간병인을 고용한 가구의 월 평균 간병비는 370만 원에 이른다. 6인실에서 공동으로 한 명의 간병인만 고용한다고 해도 월 80만~100만원이 든다.
비용 외에도 간병인을 둘러싼 갈등과 불신은 끊이지 않고 있다. 교체가 잦아 환자가 불안정한 환경에 놓이거나, 보호자가 여전히 병실을 오가며 돌봄 과정을 확인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간병인을 둘러싼 문제는 병원 입장에서도 곤란하기는 마찬가지다. 한 요양병원 관계자는 “대다수 환자가 간병인을 고용하는 방식은 민간 소개소를 통한 개인 계약”이라며 “문제가 생기면 병원에 책임을 묻는데, 사실 병원은 간병인을 고용하고 교육해야 할 책임이 없어 곤란한 상황이 많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간병인의 업무 범위나 책임 소재가 정해져야 병원에서 교육도 하고, 간병인들에 대한 문제에 책임도 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정부 지원만으로는 부족… 국가 간병 책임제 서둘러야”
간병으로 인한 실직과 파산, 가족 해체 등의 부작용이 속출하자 국가가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경기도는 올해 2월부터 ‘간병 SOS 프로젝트’를 시행중이다. 이 사업은 저소득층 65세 이상 노인이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 입원할 경우 연간 최대 120만 원의 간병비를 지원하는 제도로, 노인복지법과 경기도 간병비 지원 조례를 근거로 도입됐다. 8월까지의 중간 성과를 분석한 결과, 간병비를 지원받은 사람들의 만족도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수혜자의 86.7%가 “우울·스트레스가 감소했다”고 답했으며, 절반 이상은 “일을 그만둬야 할 위기를 피할 수 있었다”고 응답했다. 또한 “간병비 지원 덕분에 치료를 포기하지 않고 받을 수 있었다”고 답한 비율도 높았다.
다만, 지방정부 차원에서 추진되는 지원책은 한계가 명확하다. 재정 여건에 따라 사업 규모와 혜택 범위가 달라질 수밖에 없고, 경기도처럼 상대적으로 재정 여력이 있는 곳 외에는 유사한 지원을 시도하기조차 어렵다. 결국 근본적으로는 국가가 책임지고 보편적으로 간병을 지원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홍선미 교수는 “경기도 간병 SOS 프로젝트는 간병에 대한 국가 책임을 높이는 데 중요한 출발점인 것은 맞지만, 보편성을 갖춘 제도 설계, 급성기 병원과 지역사회를 연계한 통합 지원 등의 과제를 남겼다”며 “국가 차원에서 간병 책임의 사회적 분담과 제도적 정착을 이끌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치매 환자가 100만 명을 넘어선 초고령 사회. 간병은 이제 가정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과제가 됐다. 가족의 헌신에 기대던 전통적 방식은 한계에 다다랐고, 사적 간병인과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역시 비용과 인력 부족이라는 벽에 가로막혀 있다. 경기도의 ‘SOS 프로젝트’ 같은 지원책이 등장했지만, 근본적인 해법은 국가 차원의 책임제 도입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치매 등 간병 수요 폭증하는 한국
국내 간병 보험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1~11월 국내 전체 생명보험사·손해보험사 합산 치매·장기간병보험의 첫회 보험료는 883억6606만원으로, 전년 동기(519억2560만원)보다 70.2% 증가했다. 미래 간병비에 대비하려는 사람이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국내 연간 사적 간병비 지출 규모는 지난 2018년 이미 8조원을 넘었고, 올해 10조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가족 단위로 해결해왔던 전통적인 간병 체계는 더 이상 유지가 어렵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고 1~2인 가구가 많아지면서 환자를 장기간 돌보기 위한 인적·물적 자원이 턱없이 부족해졌다. 한신대 사회복지학과 홍선미 교수는 “수명은 늘어났지만 건강 수명이 따라 늘지 않다 보니 병의 이환 기간이 굉장히 길어졌다”며 “그동안 암 등 고액 중증질환 치료비에 대한 건강보험 보장률은 꾸준히 향상돼 의료비에 대한 부담은 줄었지만 치료 기간은 고려되지 않아 노인성 질환에 의한 간병 부담이 급증했다”고 말했다.
◇가족 간병 때문에 ‘죽고 싶다’는 생각도…
간병 형태는 크게 ▲가족 간병 ▲간병인에 의한 간병 ▲간호·간병통합서비스로 나뉜다. 이 가운데 가족 간병은 비용이 적게 드는 장점이 있지만 가족 구성원들의 건강과 삶이 심각하게 훼손되기도 한다. 간병하던 가족 구성원이 사회적 고립과 우울감으로 정신적 어려움까지 겪는 경우가 많다. 실제 경기복지재단이 간병 경험이 있는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간병으로 우울·불안·스트레스를 느낀다”고 응답한 비율이 87.8%에 이르렀다. “간병 때문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비율도 17.4%였다.
간병의 부담이 가족에게 전가되는 걸 막기 위해 정부가 도입한 게 ‘간호·간병통합서비스’다. 의료기관 내에서 전문 간호 인력이 24시간 환자를 돌보면서 가족이 병실에 상주하지 않아도 되는 체계다. 그러나 지난해 기준 전국 병상 수 가운데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상은 약 30%에 불과하다. 게다가 병원들이 거동이 어려운 중증 질환자 대신 경증 환자만 받으려고 하면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 상태다. 실제 건강돌봄시민행동이 지난 7월, 전국 상급종합병원과 지방의료원을 합쳐 총 82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중증환자가 통합병동 이용이 가능하지 문의한 결과, 조사에 응한 50개 기관 중 4곳(8%)만이 “서비스 이용이 가능하다”고 답했다.
여기에는 인력 문제가 주요 원인으로 거론된다. 간호사, 간호조무사 외에 보조 인력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병원이 서비스를 확대하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홍 교수는 “통합병동에서 간호 인력은 의료 서비스에 집중하고 간병은 보조 인력인 요양보호사나 간병인이 맡는 경우가 많은데 보조 인력이 부족한 게 원인”이라며 “또 인구 대비 병상 수가 많고 환자들의 재원 기간이 긴 한국에서 통합병동 서비스를 100% 확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간병인 고용에 370만 원 지불해도 불안
간병인에 의한 간병은 비용 문제가 크다. 급성기 치료를 마친 뒤에도 간병과 돌봄이 필요한 환자들은 대부분 장기요양시설로 향한다. 장기요양시설은 요양원과 요양병원으로 나뉘는데 통상 ‘장기요양등급’을 받으면 요양원으로, 그렇지 않으면 요양병원으로 향한다. 요양원은 장기요양보험을 통해 요양보호사를 고용한다. 반면, 요양병원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지만 간병 인력이 필요한 경우, 개인이 사적으로 고용해야 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간병인을 고용한 가구의 월 평균 간병비는 370만 원에 이른다. 6인실에서 공동으로 한 명의 간병인만 고용한다고 해도 월 80만~100만원이 든다.
비용 외에도 간병인을 둘러싼 갈등과 불신은 끊이지 않고 있다. 교체가 잦아 환자가 불안정한 환경에 놓이거나, 보호자가 여전히 병실을 오가며 돌봄 과정을 확인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간병인을 둘러싼 문제는 병원 입장에서도 곤란하기는 마찬가지다. 한 요양병원 관계자는 “대다수 환자가 간병인을 고용하는 방식은 민간 소개소를 통한 개인 계약”이라며 “문제가 생기면 병원에 책임을 묻는데, 사실 병원은 간병인을 고용하고 교육해야 할 책임이 없어 곤란한 상황이 많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간병인의 업무 범위나 책임 소재가 정해져야 병원에서 교육도 하고, 간병인들에 대한 문제에 책임도 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정부 지원만으로는 부족… 국가 간병 책임제 서둘러야”
간병으로 인한 실직과 파산, 가족 해체 등의 부작용이 속출하자 국가가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경기도는 올해 2월부터 ‘간병 SOS 프로젝트’를 시행중이다. 이 사업은 저소득층 65세 이상 노인이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 입원할 경우 연간 최대 120만 원의 간병비를 지원하는 제도로, 노인복지법과 경기도 간병비 지원 조례를 근거로 도입됐다. 8월까지의 중간 성과를 분석한 결과, 간병비를 지원받은 사람들의 만족도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수혜자의 86.7%가 “우울·스트레스가 감소했다”고 답했으며, 절반 이상은 “일을 그만둬야 할 위기를 피할 수 있었다”고 응답했다. 또한 “간병비 지원 덕분에 치료를 포기하지 않고 받을 수 있었다”고 답한 비율도 높았다.
다만, 지방정부 차원에서 추진되는 지원책은 한계가 명확하다. 재정 여건에 따라 사업 규모와 혜택 범위가 달라질 수밖에 없고, 경기도처럼 상대적으로 재정 여력이 있는 곳 외에는 유사한 지원을 시도하기조차 어렵다. 결국 근본적으로는 국가가 책임지고 보편적으로 간병을 지원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홍선미 교수는 “경기도 간병 SOS 프로젝트는 간병에 대한 국가 책임을 높이는 데 중요한 출발점인 것은 맞지만, 보편성을 갖춘 제도 설계, 급성기 병원과 지역사회를 연계한 통합 지원 등의 과제를 남겼다”며 “국가 차원에서 간병 책임의 사회적 분담과 제도적 정착을 이끌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