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 예술을 만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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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은 교수 그림
우리의 마음은 한순간도 멈춰 있지 않습니다.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어도 생각은 과거로 갔다가 미래로 달려갑니다. 이미 지나간 갈등의 순간을 떠올리며 다시 마음이 상하기도 하고, 아직 오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며 불안을 겪기도 합니다.

마음이 불편해지면 우리는 갈등의 장면을 되감습니다. 그때 못 했던 말을 마음속에서 반복하고, 이미 끝난 대화를 다시 꺼내어 자신을 스스로 설득합니다. 그러다 보면 작은 언짢음도 금세 커집니다. 화는 또 다른 화를 부르고, 후회는 원망으로 옮겨갑니다. 그렇게 마음속은 조용히 전쟁터가 됩니다. 겉으로는 고요해 보여도, 우리 안에서는 폭탄이 터지고 절규가 오가는 셈입니다.

어떤 분들은 “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으로 버틴다”고 말씀하십니다. 정말로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은 단단하고 힘이 있어 보여 마치 그것이 자신을 지켜주는 갑옷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렇게 강한 마음으로만 살아남은 존재는 아닌 듯합니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인간을 오래 이어오게 한 힘이 공격성이나 방어력이 아니라 협력과 친화성이었다고 설명합니다. 더 세게 싸운 집단이 아니라, 더 잘 돌보고 더 잘 연결된 집단이 살아남았다는 것입니다.

저의 할머니는 6.25 전쟁 당시 평양에서 서울, 다시 부산으로 피난을 갔던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셨습니다. 그 무서운 길 위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붙들어 주었기에 버틸 수 있었고 배고픔 속에서도 먹을 것을 나누었고, 함께였기에 두려움을 견딜 수 있었다고요.

암 치료 과정에서는 ‘이겨내야 한다’, ‘버텨야 한다’는 말에 익숙해집니다. 그러나 몸이 이미 치료를 위해 애쓰고 있다면, 마음까지 전투 태세로 서 있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이겨야 한다’를 ‘잘 견디고 있다’로, ‘왜 나는 이 모양일까’를 ‘내가 많이 외롭구나. 이만하면 충분히 애쓰고 있다’로 바꾸어 보는 연습을 해보면 어떨까요.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각의 고리를 잠시 멈추기 위해서는 거창한 결심보다 작은 감각이 도움이 됩니다.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보고, 소중한 사람의 사진을 꺼내 보고, 좋아하는 향이나 장면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 잠깐의 멈춤이 마음의 전쟁을 쉬게 합니다. 이러한 마음의 쉼표가 실제 우리 몸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에 대해, 미국의 의학 박사이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켈리 하딩(Kelli Harding)은 흥미로운 답을 내놓습니다. 그는 우리가 병원 밖에서 누구에게 어떻게 사랑받는지, 스스로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가 실제 치료 결과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합니다. 따뜻한 손길, 지지받는 관계, 스스로를 향한 친절함은 스트레스를 낮추고 회복을 돕는 환경이 됩니다.

질병을 겪다 보면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라는 자책이 따라오기도 합니다. 그럴 때일수록 스스로에게 조금 더 부드럽게 말해보고 무엇인가 더 잘하려 애쓰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안아주는 연습을 해보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원망하며 버티는 마음이 나를 보호하는 무거운 갑옷이었다면, 이제는 그 갑옷을 잠시 내려놓고 스스로를 보듬는 부드러운 손길에 몸을 맡겨보아야 합니다. 진정한 회복은 나를 채찍질하는 투쟁이 아니라, 나를 환대하는 다정함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전투의 언어를 내려놓고, 연결과 친절한 말을 스스로에게 하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마음이 머무는 자리가 전쟁터가 아니라,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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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은 드림(서울여자대학교 교양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