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말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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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클립아트코리아
“선생님, 저 오늘 암 진단받은 지 딱 5년째 되는 날이에요. 이제 저, 진짜 완치된 거 맞죠?”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온 환자의 얼굴에는 설렘과 두려움이 동시에 어려 있었다. 그 짧은 질문 속에서 지난 5년, 아니 그보다 훨씬 길었을 시간의 무게가 느껴져 코끝이 찡해졌다. 장하다고, 참 잘 견뎌냈다고 그 마른 등을 꼭 한 번 두드려주고 싶었다.

차가운 수술대 위에서의 숨 막히는 긴장, 독한 약 기운에 입맛을 잃고 마른침을 삼키던 오후, 그리고 내일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젖어 밤을 지새웠을 그 모든 계절을 그녀는 온몸으로 통과해 왔다. “치료가 끝났다”라는 그 기적 같은 한마디를 듣기 위해.

완치라는 정거장,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길
하지만 병원 문을 나서는 발걸음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는 것을 필자는 잘 알고 있다. 항암제의 잔향은 여전히 코끝에 맴도는 듯하고, 거울 속 흉터는 불쑥불쑥 아픈 기억을 소환한다. 주변에서는 “이제 다 나았으니 예전처럼 씩씩하게 살라”며 축복을 건네지만, 정작 본인의 마음은 작은 몸의 변화 하나에도 다시 벼랑 끝에 서는 기분이 들 것이다.

의학적으로 ‘5년 생존’은 완치를 의미하는 중요한 지표다. 하지만 임상 현장에서 만나는 암 생존자들에게 완치는 끝이 아닌, 새로운 삶의 방식인 ‘뉴 노멀(New Normal)’로 진입하는 시작점이다. 이제는 종양의 크기에 매몰되던 시선을 거두어, 그동안 무너졌던 일상의 결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삶의 질’에 집중해야 할 시기다.

암이라는 폭풍이 남기고 간 선물
암이라는 폭풍이 지나간 자리는 결코 폐허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생명이 돋아나기 위해 숨을 고르는 비옥한 토양에 가깝다. 앞만 보고 달리느라 놓쳤던 ‘진짜 나’와 대화하고, 내 몸이 보내는 미세한 신호에 귀 기울이며 자신과 화해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비로소 허락된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빨리 걷지 못한다고, 금방 숨이 차오른다고 자신을 채찍질하지 말아야 한다. 계절이 바뀌는 속도에 맞춰 천천히 걷다 보면,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길가의 작은 들꽃과 눈이 마주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꽃 한 송이의 경이로움을 발견하는 여유, 그것이야말로 암을 이겨낸 생존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첫 번째 축복이다.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여전히 불쑥 찾아오는 피로와 재발에 대한 공포가 당신을 순간순간 뒤흔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꼭 기억해야 할 것은,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 마음의 무게를 기꺼이 나누고 싶어 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당신 옆에 있고, 당신이 일상의 주인공으로 온전히 복귀할 수 있도록 밤낮으로 고민하는 의료진이 든든한 버팀목으로 곁에 서 있다.

치료는 의사의 몫이었지만, 그 너머의 삶을 이름다운 풍경으로 채워가는 것은 바로 당신, 암 생존자의 용기다. 오늘 하루만큼은 고된 시간을 견뎌낸 자신의 몸을 향해 이렇게 속삭여보는 건 어떨까.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 고마워.”

당신이 맞이할 두 번째 인생은 이전보다 더 깊고, 단단하며, 향기로운 봄일 것임을 필자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이곳 진료실에서 당신이 내딛는 그 찬란한 기지개를 언제까지나 응원하며 지키고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갈 수 없을 때까지, 당신의 삶이 계속해서 나아가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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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정 인천권역암생존자통합지지센터장(가천대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