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학과 전문의의 '급성기 클리닉' 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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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 원장이 봉합 전 국소마취를 시행하고 있다./사진=오상훈 기자
‘응급실 뺑뺑이’ 문제가 반복되고 있는 가운데 사법리스크, 배후진료 부족 등 여러 원인이 거론되지만 갑자기 아픈 환자들이 응급실 말고는 ‘갈 곳이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중증 환자가 병상을 찾지 못해 전전하는 동안, 응급실 대기석이 고열·복통·경미한 외상 등 경증 환자들로 가득 찬 사례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인천 영종도에서 ‘급성기 클리닉’을 표방하는 영종EM365의원 이기호 원장(응급의학과 전문의)은 “경증 환자를 제대로 흡수할 수 있는 급성기 클리닉을 지원하는 게 현실적인 대안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응급실 3~4시간 대기하는 환자 보고 개원 결정"
지난 10일 방문한 영종EM365의원은 점심시간을 앞둔 와중에도 고열에 지친 아이를 안은 부모, 복통을 호소하는 노인 등으로 붐볐다. 치료실 앞 복도에는 수액 거치대가 줄지어 서 있고, 처치실에서는 봉합 등의 치료가 이뤄졌다. 외래의원이기보다는 혈액검사와 CT(컴퓨터단층촬영), 다수의 수액 처치 공간을 갖춘 ‘경증 특화 응급실’에 가까워 보였다.

이 원장은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오랜 기간 근무한 뒤, 지난 2021년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직접 운영하는 외래형 급성기 클리닉을 열었다. 낮과 밤, 휴일을 가리지 않고 몰려오는 ‘당장 아픈’ 환자들을 1차 의료기관에서 소화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는 “과거 응급실에서 근무할 때 70~80%, 많을 때는 90% 가까이가 경증 환자였다”며 “갑자기 아픈 환자들이 3~4시간 대기하는 걸 보며 급성기 클리닉이 필요하다 생각해 개원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보는 환자군은 매우 다양하다. 고열·복통·두통·구토 등 내과적 증상부터 출혈·골절 등 외과적 증상까지 가리지 않는다. 오전에만 골절 환자 두 명이 방문했는데 모두 단순골절로 진단돼 깁스 치료를 받았다. 이처럼 경증이면 직접 치료하고, 중증이 의심되면 안정화시킨 후 인근 인하대병원·국제성모병원 등의 응급실로 전원한다. 전원 비율은 10% 미만이다.

특히 소아 환자에 대한 역할이 크다. 영종국제도시는 공항 근무자가 많은 신도시 특성상 젊은 부부와 소아 환자가 많다. 이기호 원장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2년 한 해에만 약 4만 명의 소아 환자를 진료했다. 덕분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상주하지 않음에도 달빛어린이병원에 지정되기도 했다. 수액 정맥 삽입이 어려운 경우 소아과에서 역으로 의뢰를 보내기도 한다.

이 원장은 “처음에는 주민들도 어떤 의원인 줄 몰라 물어보곤 했지만 이제는 응급실에서 일했던 의사인 것을 알아서 급성기 증상이 생겼을 때 방문한다”라며 “구급차 이용 시 응급실에서 튕겨져 나온 경증 환자들이 이송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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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종EM365의원의 병상들. 주로 경증 환자들을 처지하는 데 사용된다./사진=오상훈 기자
◇경증은 지역에서, 중증은 상급병원으로… 교통정리 필요
경증 환자로 인한 응급실 과밀화는 응급실 뺑뺑이의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된다. 중증환자를 치료해야 할 상급 응급의료기관에 경증환자도 함께 몰리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정부는 경증 비율을 낮추기 위해 응급실 진료비 본인부담률을 90%로 높이고 경증 환자 응급실 방문 자제령을 내렸지만, 여전히 응급실 환자 중 40%가 경증 및 비응급 환자로 파악된다.

이기호 원장은 환자에게 “응급실에 가지 말라”고 요구하는 방식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본다. 그는 “아픈 환자가 자신의 증상이 응급인지 아닌지 판단하기는 어렵고, 그걸 구분해주는 게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역할”이라며 “국가 차원에서 경증은 지역 급성기 클리닉으로, 중증은 권역응급센터로 가도록 체계를 설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야간 대응은 과제로 남는다. 응급실은 24시간 운영하지만 영종EM365의원은 밤 12시까지만 문을 연다. 이에 대해 이 원장은 “24시간 운영도 고민했지만, 결국은 사람 문제”라며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안정적으로 구하는 게 어렵고, 인건비 부담도 크다”고 했다.


그는 인천 지역의 ‘무늬만 응급실’ 문제도 지적했다. 인천에는 20여 개 응급의료기관이 있지만, 실제 중증 응급환자는 네 곳 병원으로 쏠리고 있다는 것이다. 응급수술이나 중환자 처치가 가능한 배후진료 체계를 갖추지 못한 채 형식적으로 응급실을 운영하는 곳이 적지 않아, 환자 전원이 반복되면서 오히려 뺑뺑이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원장은 “응급실을 제대로 유지하려면 응급의학과 전문의 4~5명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중증을 맡을 배후진료가 갖춰져야 한다”며 “응급실 숫자만 늘리기보다는 중증을 담당할 권역·지역센터에 집중 투자하고, 나머지는 경증 급성기 환자를 전담하는 클리닉으로 제도권 안에서 지원·확대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