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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반복되는 ‘응급실 뺑뺑이’를 막겠다며 정부가 이송 체계 개편에 나섰지만, 의료 현장에서는 오히려 혼란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병원의 실제 수용 능력과 배후진료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환자 이송을 강제하면, 이미 가속화되고 있는 응급의학과 의사들의 이탈을 더욱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 “이송체계 정비”… 광주·전남서 시범 가동
부산 지역에서 응급실 뺑뺑이가 반복되자 정부는 거점 병원을 지정하거나 이송체계를 구축하는 식으로 대응하고 나섰다. 부산시는 24시간 외상 응급진료가 가능한 의료기관 중 인력·시설·장비 등 핵심 인프라와 역량을 갖춘 의료기관 2곳을 선정해 지역외상거점병원으로 지정한다는 계획이다.

의료취약지가 많은 광주·전남에서는 구급대의 개별 수용 문의 없이 중증도별로 적정 병원에 빠르게 이송될 수 있도록 절차를 정비했다. 보건복지부와 소방청은 최근 ‘응급환자 이송체계 혁신 시범사업 추진 계획’을 통해 광역상황실이 수용능력 확인 후 병원을 선정하고, 골든타임을 넘어 지연 시 우선수용병원을 지정해 안정화 처치를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다만 의료계는 응급실 뺑뺑이가 더 심화될 거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광주광역시의사회·전라남도의사회·전북특별자치도의사회는 5일, 공동성명을 내고 이번 시범사업은 “뇌사 상태인 응급의료전달체계의 사망 선언”이라면서 철회를 촉구했다. 특히 다른 지자체보다 격오지·의료취약지가 많은 호남 지역에는 “돌이킬 수 없는 상흔이 될 것”이라고 했다.

◇“수용능력은 외면하고 이송 강제”… 의료계 반발
의료계가 반대하는 이유는 연이은 정책들이 병원의 수용 능력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일단 병원에 이송해서 빨리 처치를 받도록 하는 데만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광주·전남 시범 사업의 핵심은 KTAS(한국형 응급환자 분류도구) 1~2등급 환자를 골든타임 내 수용할 병원을 못 찾으면 광역상황실이 우선지정병원을 선정해 이송하도록 하는 것이다. 경증으로 분류되는 3~5등급 환자는 구급대가 병원의 수용능력 확인 없이 프로토콜에 따라 병원에 이송하도록 한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은 “결국 최종 치료를 맡을 배후진료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환자를 응급실에 밀어 넣겠다는 것”이라며 “이대로 강행한다면 응급실 뺑뺑이는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법리스크, 배후진료 부재 등으로 응급실 업무 환경이 어려워지고 있는 상태에서 환자 수용을 강제하면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현장을 떠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 회장은 “전남 지역은 기존에도 광역상황실 기능이 미비했던 곳이라 현장 의료진들이 우려가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응급실 떠나는 전문의들… ‘조용한 탈출’ 가속
응급실 의사들의 ‘조용한 탈출’은 이전부터 계속되고 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개설한 병의원 수는 2022년 12월 149곳에서 2024년 192곳으로 늘었다. 개원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은 대부분 다른 진료과목을 선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지난해 기준 약 2700명인데 응급의학과의사회에 따르면 이들 중 응급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비율은 약 65%에 불과하다.

최한조 강동경희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개원을 하는 게 아니면 중환자실, 요양병원으로 가는 전문의들도 있고, 아예 환자를 보지 않고 제약회사나 빅데이터·IT 분야로 가는 경우도 많다”라며 “개인의 목표가 있어서 떠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응급실 진료 환경이 악화되다 보니 지쳐서 그만두는 경우”라고 말했다.

새로운 전문의가 원활히 수급될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지난 1월, 대한응급의학회가 전국 수련병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긴급 조사 결과, 57개 병원 가운데 84%인 48개 병원의 신규 전임의 지원자가 ‘0명’이라고 답했다. 전문의를 딴 뒤에 응급의학과에 남아 더 일하겠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뜻이다. 이러한 여파는 지역 종합병원으로 전가되고 있다. 실제 부산은 현재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없는 종합병원이 4곳에 달한다.

◇응급실 구조부터 다시 묻는 의료계
응급의료계는 오래전부터 ‘응급실 뺑뺑이’의 해법으로 의사 개인에게 과도한 책임이 전가되도록 설계된 구조부터 손봐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특히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에 대한 사법 리스크를 완화해 필수의료 의사들이 현장에 돌아와야 배후진료가 완성되고 응급실이 원활히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이에 앞서 정부가 ‘어떤 응급실을 만들고 싶은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부터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형민 회장은 “모두 응급실은 응급 환자가 이용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만, 아픈 당사자는 그럴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그 결과 응급실은 경증 환자로 넘쳐나고, 시간 당 평균 2명의 환자를 보는 미국의 응급실과 달리 한국은 10명의 환자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최한조 교수는 “시범사업만 봐도 정부가 응급실의 역할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는 게 보인다”라며 “KTAS 3~5등급 경증 환자를 별도 문의 없이 이송하도록 하고 있지만, 원칙적으로 경증 환자는 응급실 이송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결국 경증 환자가 갈 수 있는 의료기관이 없으니 응급실로 밀어 넣겠다는 발상”이라며 “이런 방식이 계속되면 응급실은 중증 환자를 치료할 여력을 더 잃게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