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 희귀병을 앓는 사람들] <8> 어셔증후군 환아 최현지(가명·9) 양

<편집자 주>
희귀질환을 앓는 환자와 그 가족들은 삶을 ‘외딴 섬’에 비유하곤 합니다. 분명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자신들만 외따로이 떨어져 고립된듯하다는 의미입니다. 실제 그들의 삶은 절해고도(絕海孤島)에 갇힌 것처럼 외롭고 힘겹습니다. 누구보다 관심과 도움이 절실하지만, 실상은 대부분의 문제를 환자와 가족들이 온전히 짊어지고 있습니다. 간혹 단지 소수라는 이유로 다수를 위한 희생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고립]이 그들의 아프고 쓸쓸한 투병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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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셔증후군 환아 최현지(가명·9) 양 / 보호자 박주하(가명) 씨 제공
“제가 먼저 떠나면 혼자 남은 아이가 장애로 인해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늘 두렵고 괴로습니다.”

희귀질환 환아의 부모는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다. ‘괜찮아졌다’ 싶다가도, 훗날 아이가 병을 치료하지 못한 채 홀로 세상에 남는다는 생각이 들면 막막함과 두려움이 엄습한다. 어셔증후군 환아 최현지(가명·9) 양의 어머니 박주하(가명·40) 씨는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게 해달라’고 기도한다”며 “아마도 장애 아동을 키우는 많은 부모가 같은 마음일 것이다”고 말했다. 현지 양이 앓고 있는 어셔증후군은 청각장애와 시각장애가 동반되는 희귀질환이다. 선천적으로 난청을 앓고, 15세를 전후해 시력마저 악화된다. ‘자녀의 성장을 지켜보는 게 부모의 기쁨’이라는데, 도리어 주하 씨는 딸이 클수록 시력을 잃는 날에 가까워지는 것 같아 두렵기만 하다.

◇어렵게 알아낸 원인이 희귀병… “망치로 얻어맞은 느낌”
시작은 난청 증상이었다. 언어 발달이 늦었던 현지 양은 3세쯤부터 언어치료를 받았는데, 어느 날 치료사로부터 “아이가 불러도 잘 반응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한 사람 말이면 ‘우연이겠거니’ 생각했겠지만, 그 무렵 현지 양이 다니던 유치원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해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사를 받았고, 우려는 현실이 됐다. 검사 결과, 청력 손실 약 60데시벨의 중등도 난청이었다. 이후 주하 씨는 난청의 원인, 경과 등을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서울대병원을 찾았다. 의료진의 권유로 유전자 검사를 받았지만, 처음엔 여러 검사에도 정확한 원인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3년 정도 지난 2024년 10월에서야 ‘딥인트론 변이’가 문제였음을 알게 됐다.

딥인트론 변이는 당시 서울대병원 연구팀이 전장유전체분석을 포함한 통합적 유전자 분석을 통해 새롭게 발견한 난청의 유전적 원인이다. 연구팀은 어셔증후군의 대표적 유전자인 USH2A 유전자에서 발견된 3개의 새로운 딥인트론 변이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설상가상으로 현지 양은 그 중에서도 병의 진행이 빠른 ‘절단형 변이’에 속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처음 난청 진단을 받았을 때 그 원인이 희귀질환일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게다가 현지 양의 경우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정상 유전자에 변이가 생겨 질환이 발현한, 매우 드문 사례였다. 일반적으로 어셔증후군은 부모로부터 정상 유전자와 변이 유전자를 각각 물려받으면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주하 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며 “한동안 마음을 추스르기 힘들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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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양의 청능 훈련 내용. 어셔증후군으로 인해 선천성 난청이 있는 현지 양은 정기적으로 청능 훈련을 받고 있다. / 보호자 박주하(가명) 씨 제공
◇더디게 악화되길 바랄 뿐… “유전자치료제, 유일한 희망”
진짜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어렵사리 원인을 찾아냈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어셔증후군은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치료법이 개발되지 않은 희귀질환이기 때문이다. 주기적으로 검사를 받으면서 병세가 더디게 악화되길 바랄 뿐이었다.

어셔증후군 진단 이후론 시력 검사를 받을 때마다 더욱 마음을 졸여야 했다. 현지 양과 같은 어셔증후군 환아는 나이가 들면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인해 청력뿐 아니라 시력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다. 주하 씨는 “현지는 이미 근시에 따른 시력 저하가 있는 상태”라며 “다행히 망막색소변성증은 아닌 것으로 확인됐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경이 많이 쓰인다”고 했다.


현재 현지 양과 가족들에게는 유전자치료제가 유일한 희망이다. 앞서 딥인트론 변이를 발견한 서울대병원 연구팀에서 해당 변이를 표적하는 유전자치료제를 개발 중인데, 개발에 성공할 경우 현지 양에게도 이 치료제를 써볼 수 있다. 국내에 단 네 명뿐인 사용 대상에 현지 양이 포함된 것이다. 주하 씨는 “치료제가 제때 개발된다면 현지가 앞으로 겪게 될 망막색소변성증을 막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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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양과 아버지 최민석(가명)씨 / 보호자 박주하(가명) 씨 제공
◇“돈 없어 치료 못 받는 현실 고통… 정부 지원 절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국내 어셔증후군 유전자치료제 연구·개발은 답보 상태다. 후보 약물 선별까지 연구가 진척됐지만, 비용 문제로 인해 좀처럼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 약 개발을 위해선 제3기관의 독성·안전성 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여기에만 10억원 이상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환자 가족이 온전히 부담하기엔 큰 금액이고, 극소수 환자에게 사용하는 치료제다보니 민간 투자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 주하 씨는 “개인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비용”이라며 “치료가 눈앞에 와 있는데 돈이 없어 멈춰야 할지 모른다는 현실이 너무나 고통스럽다”고 했다.

지금 상황에서 현지 양과 가족들이 기댈 수 있는 건 국가의 지원뿐이다. 주하 씨는 치료제 개발·사용을 위해 정부 지원과 제도 개선이 이뤄지기만을 고대하고 있다. 그는 “첨생법(첨단재생의료·첨단바이오의약품법) 개정안이 조속히 통과돼, 희귀질환 치료를 위한 국가적 인프라가 제대로 마련되고 정부의 R&D 예산도 첨단바이오 유전자치료제 개발에 더 많이 투입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현지 양 외에도 많은 희귀질환 환아들이 유전자치료제가 개발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이들 환아와 가족들 입장에서는 더욱 애가 탈 따름이다. 주하 씨는 “치료제를 기다리는 동안 병이 진행돼 치료 기회를 잃는 상황만은 피하고 싶다”고 말했다.


<의사 인터뷰>
“유전자치료제 개발, 규제에 가로막혀… 융통성 필요”
환자에게 ‘약 없는 병’을 앓는 것보다 힘든 일은 없다. 그 병이 생명에 영향을 주거나 장애를 유발한다면 고통은 배가된다. 안타깝게도 어셔증후군은 이런 요건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

그런데 어째선지 의사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아직까진 쓸 수 있는 약이 없지만, 국내외에서 연구 중인 몇몇 약들이 개발에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단, 이 약들을 실제 환자에게 쓰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들이 있다. 이를테면, 막대한 임상 비용, 높은 규제 문턱 등이다. 서울대병원 소아이비인후과 이상연 교수는 “환자들이 규제로 인해 치료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며 “유전자치료제에 대해 희망을 갖고 있는데 규제나 비용 문제로 개발이 무산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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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소아이비인후과 이상연 교수 / 서울대병원 제공
-현재 개발되고 있는 어셔증후군 치료제가 있나?
“유전자치료제가 가장 앞서있다. 어셔증후군의 경우 유전자를 교정하는 방식으로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어셔증후군 환자에게 확인되는 USH2A 유전자에는 단백질을 만드는 영역인 엑손이 72개 있는데, 이 중 하나의 엑손만 삭제한다고 해서 전사체 또는 전사체가 만들어낸 단백질의 기능을 잃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여기에 착안해서 만든 ASO(안티센스 올리고뉴클레오타이드) 치료제가 있다. 일부 회사에서 임상 3상까지 진행해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보했다. 빠르면 올해 하반기나 내년 중에 초기 임상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도 치료제를 개발 중이라고?
“정부가 국내 보건의료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형 아르파-H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여기에 어셔증후군과 같이 기능적 장애를 동반하는 질환을 가진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할 수 있는 과제가 포함됐다. 해당 과제에 등록시키고 싶은 딥인트론 변이 환아가 4명 있다. 엑손과 엑손 사이 깊숙한 곳에 있는 인트론에 돌연변이가 생긴 환아들이다.”

-연구에 사용할 치료제는 있는 상태인가?
“이미 우리 연구팀에서 딥인트론 변이가 만들어낸 거짓 엑손을 삭제하는 ASO 치료제를 만들었다. 소형 동물을 대상으로 한 기본적인 평가를 통해 가장 유효성이 높다고 확인됐고, 세포 수준에서도 안전성을 보였다.”


-실제 임상·개발까지 넘어야 할 산들이 많은데?
“기본적으로 GMP(의약품 제조·품질 관리 기준) 등급에서 ASO 치료제를 생산하는 것 자체가 매우 비싸다. 원숭이 같은 중형 동물을 대상으로 시험하는 비용 역시 어마어마하다. 모든 독성 평가를 다 하려면 40억~50억원이 든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잘 상의해서 비용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선에서 임상이 승인되면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 반면, 모든 시험을 다 거쳐야 한다면 현재 비용으로는 개발이 쉽지 않다.”

-제도적으로 어떤 개선이 필요할까?
“모든 질환에 일관된 프로토콜을 적용하면 정말 필요한 시기에 치료제를 사용하기 어렵다. 환자·유전자에 따라 임상 승인 절차나 규제를 융통성 있게 조절했으면 한다. 그렇게 해서 임상을 진행하고 유효성·안전성을 입증하는 선례들이 쌓인다면, 앞으로 희귀질환 환자에게 사용할 유전자치료제들에 대한 평가·규제가 조금은 완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이번에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과거로 회귀한다면 우리나라에서 유전자치료제 개발은 어려울 것 같다.”

☞ 어셔증후군
상염색체 열성 유전으로 인해 발생하는 난치성 유전질환. 증상과 발병시기에 따라 1~3유형으로 나뉜다. 가장 발생 빈도가 높은 2형의 경우 선천적으로 감각신경성 난청을 앓게 되며, 10대 이후 광수용체 세포 기능 저하에 따른 망막색소변성증이 발생해 시력까지 악화될 수 있다.


전종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