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오늘이 안녕하길]​

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 진료실에서 가장 자주 듣는 환자분들의 ‘소망’은 무엇일까요?

‘행복’이라고 생각하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제 답은 ‘평범함’입니다. 일반적으로 ‘행복’은 보다 유쾌한 상태를 추구하는 것이라면, ‘평범’은 유쾌하지는 않지만 불쾌하지도 않은 보통의 상태입니다. 그래서 ‘평범해지고 싶다’는 소망은 얼핏 보기에 매우 소박한 바람처럼 느껴집니다.

한편, 환자분들이 조심스레 자신의 이야기를 마친 뒤 첫 진료에서 자주 던지는 또 하나의 질문이 있습니다. “선생님, 혹시 저 같은 환자 또 보신 적 있나요?”

이 질문에는 사실 여러 겹의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자신이 너무 특이하거나 이상한 상태는 아니라는 확인을 받고 싶은 마음, 그리고 나만 이렇게 힘든 것이 아니라는 위안을 받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저는 마치 ‘평범함’의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심판관이 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평범함’에 대한 판단은, 아무리 환자를 많이 본 경험 많은 의사라고 해도 쉽게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교과서에 나와 있는 통계만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조심스럽게 되묻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평범함’이란 무엇인가요?”

‘평범함’이란 단어는 마치 절대적이고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기준이 있는 단어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평범함’에 관해 물으면 사람들은 각자 처해있는 상황과 환경에 따라서 자신에게 결핍되어있는 무언가를 꿈꾸며 다양한 대답을 내놓습니다.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고, 원하는 것을 어느 정도는 들어주지만 특별한 요구를 하지는 않는 부모님이 있는 화목한 가정.”

“삶의 질이 보장되고, 자기 계발도 가능하며 보람은 있지만 지나치게 어렵지는 않은 일.”

“야단치는 상사나 껄끄러운 동료 하나 없이 모두가 너그러운 직장.”


“실수에도 잔소리하지 않고, 힘들 때 의지가 되어 주며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배우자.”

“대단한 효도를 바라지는 않지만, 큰 사고 치지 않고 무난하게 중상위권 이상의 성적을 유지하며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대학에 합격하는 자녀.”

이러한 ‘평범함’의 조건들을 모두 모아 놓고 보면 사실 ‘이상향’에 가깝습니다. 어떤 사회적 통계나 개인적 경험을 봐도, 이런 모든 조건이 동시에 맞아떨어지는 삶은 흔하지 않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은 어느 한두 가지 이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버드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조던 스몰러(Jordan Smoller) 교수의 저서인 ‘정상과 비정상의 과학’이라는 책은 정신의학에서 ‘정상(normal)’의 의미를 여러 측면에서 다룹니다. 이 책에 나온 ‘정상’에 대한 관점이 우리의 ‘평범함’에 대한 논의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정상은 이상(理想)도 아니고, 평균도 아니요, 심지어 건강한 상태도 절대 아니라는 것입니다. 몇 개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공부 또는 일하다가 자꾸 스마트폰을 들어 딴짓하는 상태, 하기 싫은 일을 자꾸만 미루는 상태, 새해가 되어 운동을 시작하려 했지만, 작심삼일 하는 상태는 ‘평범’한가요, 그렇지 않은가요? 매우 ‘평범’하지만 이상적이지는 않은, 때로는 건강하지 않다고까지 여겨지는 상황들인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정상과 비정상은 낮과 밤의 관계와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낮과 밤을 분명히 다르다고 인지합니다. 그런데 이 두 상태 사이의 경계를 뚜렷하게 구분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정확히 낮은 언제 밤이 되고, 밤은 언제 낮이 될까요? 새벽녘과 해 질 녘을 낮과 밤 둘 중 하나로 꼭 규정해야 할까요? 그렇다면 지금 내가 겪는 고통을 굳이 ‘평범한 것’ 혹은 ‘평범하지 않은 것’ 중 하나로 꼭 나누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렇듯 ‘평범함’이란 분명한 실체라기보다는 우리 스스로 부여한 어떤 의미와 기대의 산물에 가깝습니다. ‘평범함’을 바라는 마음에는 그래서 그간 겪어온 삶 자체의 고통과 함께 자신을 바라보며 느껴온 고통까지 담겨 있습니다. 나의 ‘​평범함’​도, ‘​평범하지 않음’​도 모두 나 자신입니다. 그리고 나라는 존재는 때론 평범하기도, 때론 평범하지 않기도 합니다. 평범하지 않은 자신의 어떤 요소들을 탓하며 억지로 평범해지려 애쓰고 또는 그러지 못한 자신을 비난하기보다는, 오늘의 하루가 비교적 평범했음에 감사하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하루가 평범하지 않았다면, 그것 역시 나의 수많은 하루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합시다.

[본 자살 예방 캠페인은 보건복지부 및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대한정신건강재단·헬스조선이 함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