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테크 생생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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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강동화 교수가 환자에게 비비드브레인 사용법을 알려주고 있다./사진=서울아산병원 제공
<편집자주>
무엇이든 ‘장비 빨’이 중요한 요즘. 질병 진단과 치료 그리고 관리에도 ‘장비’는 필수입니다. 이러한 추세 속에 디지털의료기기·전자약을 비롯한 다양한 의료기기가 속속들이 개발되는 중입니다. 기기명을 검색하면 개발자가 전하는 개발 일기부터 기대 효능, 투자받은 금액이나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 일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보가 쏟아집니다. 딱 하나, ‘실사용기’만 빼고요. 이에 [헬스테크 생생 후기]​는 의료진과 환자에게 직접 들은 ‘체감 효과’를 전해드립니다. 기기의 원리, 관련 제도, 질병 치료에 대한 조언은 덤입니다.

60대 남성 A씨는 뇌졸중이 발생한 후 극심한 시야 장애를 겪었다. 두눈을 모두 떴을 때의 시야를 기준으로 왼쪽에서 5cm가량만 보이고 나머지는 모두 캄캄했다. A씨는 보이지 않는 부분이 “새벽의 어슴푸레한 여명 같았다”고 회고했다.

뇌졸중으로 인한 시야 장애를 치료할 방법은 오랫동안 전무했다. A씨가 시야 장애를 진단받은 시점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강동화 교수는 “뇌졸중 환자들은 운동장애, 감각 장애, 인지 장애, 시야장애, 언어장애 등 다양한 후유증을 겪는데, 유독 시야 장애는 전 세계적으로 치료법이 없었다”며 “환자들에게 ‘그냥 지켜봅시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답답했다”고 말했다.

이에 강동화 교수는 2017년 직접 뉴냅스(Nunaps)라는 스타트업을 설립, 세계 최초로 시야 장애 치료를 위한 디지털치료기기(DTx) ‘비비드브레인’ 개발에 나섰다. 2010년경 해외의 시지각 학습 연구실로 연수를 다녀온 것이 계기가 됐다. 치료법을 찾아 헤매다 이 소식을 접한 A씨는 비비드브레인이 보건복지부 혁신의료기술로 인정돼 시야장애 환자에게 처방될 길이 열리자마자 강동화 교수를 찾아 치료받았다. A씨는 “이제 핸드폰도 잘 보이고, TV에 나오는 자막도 읽을 수 있다”며 “시야 오른쪽 바깥을 제외하면 거의 다 보인다”고 말했다.

◇감각 자극으로 시지각 경로 생성 유도
비비드브레인은 VR기기를 착용하고 시지각 훈련을 할 수 있게 하는 소프트웨어다. 비비드브레인처럼 의학적 장애나 질병을 예방, 관리, 치료하기 위해 환자에게 근거 기반의 치료적 개입을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를 디지털치료기기라 한다.


훈련을 시작하면 환자의 시야 한가운데와 가장자리에 줄무늬가 있는 도형이 각각 나타난다. 두 줄무늬가 향하는 방향이 같은지 다른지를 알아맞히는 ‘가로세로 치료’와 두 줄무늬의 회전 방향이 같은지 맞추는 ‘회전 치료’를 시행할 수 있다. 하필 줄무늬인 이유는 이 무늬가 뇌의 시지각 피질을 효과적으로 자극하기 때문이다. 강동화 교수는 “시야 장애 환자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양상이 달라서, 환자의 시야장애 정도와 범위에 따라 줄무늬가 등장하는 위치와 난이도를 다르게 조절한다”고 말했다.

정말이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라도 계속하면 된다. 내가 느끼기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내 몸은 무언가를 보고 있을 수 있어서다. 우리는 안구의 망막에 맺힌 상이 뇌로 전달된 후에야 무언가를 보고 있다고 인식한다. 이는 거꾸로 내가 느끼기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안구 자체에 문제가 있지 않은 이상 내 눈은 시각적 자극을 받아들이는 상태일 수 있다는 것이다. 계속 시각 자극을 가함으로써 감각 정보가 뇌에 전달되는 경로를 새로 만드는 것이 비비드브레인의 치료 원리다. 강동화 교수는 “너무 보이지 않으면 훈련이 어려우니, 환자의 시야가 남은 부분과 소실된 부분의 경계면에 줄무늬가 뜨도록 한다”며 “환자에게 ‘긴가민가하면 찍어서라도 훈련을 이어가라’고 한다”고 말했다.

◇고시 공부하듯, 꾸준한 훈련이 시야 되살려
비비드브레인을 이용한 훈련은 일종의 ‘뇌 피트니스’다. 강동화 교수는 “보통 3개월은 꾸준히 해야 효과를 체감할 수 있다”며 “환자의 뇌졸중 양상에 따라 편차가 커서, 1개월만 해도 시야가 완전히 회복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년은 필요한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A씨는 비비드브레인 훈련을 시작한 이후로 ‘눈이 잘 보인다’고 체감하기까지 9개월이 걸렸다. 시야 장애 정도가 심하고, 뇌졸중이 발생한 지 오래됐을수록 재활이 어려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A씨는 “어두운 여명 같던 곳에 어느 순간부터 점 같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점들이 점점 맑아지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시야가 좋아졌다”며 “고시 공부를 한다고 생각하고, 보이든 보이지 않든 꾸준히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A씨는 매일 오전이나 낮에 비비드브레인으로 30분가량 훈련했다. 비비드브레인을 이용한 치료는 하루에 총 360회씩(20~30분 소요), 주 3~5일 하는 것이 권장되고 있다. 좀 더 치료를 적극적으로 하고 싶은 환자들은 최대 하루 720회까지 가능하다. 강동화 교수는 “열심히 훈련하는 것만큼이나 잠을 푹 자는 것이 중요하다”며 “훈련으로 학습한 것을 뇌가 기억해서 자리잡도록 만드는 데에 수면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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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강동화 교수/사진=서울아산병원 제공
◇디지털치료기기 절실한 환자도… 도입 쉬워져야
강동화 교수는 다양한 신경 관련 문제에 디지털치료기기를 접목할 수 있으리라고 보고, 뉴냅스를 통해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선, 비비드브레인의 적응증을 ▲소아 사시 환자의 입체시 훈련 ▲뇌병변·뇌종양 등 뇌졸중 이외의 다른 뇌질환으로 인해 생긴 시야 장애 재활 훈련으로까지 확장하려고 한다. 비비드브레인과 별개로, 뇌질환으로 인한 언어 장애 재활 목적의 디지털 치료기기도 개발하고 있다. 언어치료사와 만나 대면 치료하는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언어치료사 수가 부족해 지방 환자들은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뇌졸중 후에 발생하는 인지 장애를 위한 디지털치료기기도 개발 단계다.

다만, 이러한 기술이 실제로 환자의 삶을 윤택하게 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은 많다. A씨는 강동화 교수가 비비드브레인을 개발한다는 소식을 듣고서 거의 2년을 기다린 후에야 실제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디지털치료기기가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의료기기로 품목 허가를 받더라도, 실제로 임상 현장에 도입되려면 혁신의료기술 평가 등 별도의 허가 과정을 거쳐 추가로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A씨는 “뇌졸중 재활은 빨리 시작할수록 예후가 좋은데, 식약처 승인을 받기까지 시간이 오래 소요되니 속이 탔다”고 말했다. 혁신의료기술 평가 제도는 신기술이 임상 현장에 최대한 빨리 도입될 수 있도록 하려 도입된 제도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평가 주체를 거치는 과정에서 1여 년이 소요되기도 해 제도 취지가 무색하다는 업계 증언이 있다.


디지털의료기기에 대한 의료기관 관계자들의 이해도 제고돼야 한다. 새로운 약을 도입해 환자에게 처방하거나, 하드웨어가 있는 신규 의료기기를 병원 내에 설치해 사용하는 경로는 이미 개척돼있다. 문제는 디지털치료기기가 치료를 위해 어플리케이션 형태로 환자에게 제공되는 소프트웨어 형태의 의료기기라는 데 있다. 약으로 들여오기에는 기존의 의약품과 다르고, 의료기기로 들여오기에는 자기공명영샹(MRI) 같은 보통의 의료기기와 달리 병원 내에 설치되는 것이 없으니 기관 내의 어떤 부서가 업무를 담당할지가 불명확하다. 강동화 교수는 “다양한 대학병원에 비비드브레인이 도입돼있으나 병원마다 담당 부서가 조금씩 다르고, 내가 속해 있는 서울아산병원에서조차 기기를 도입하는 데에 6개월이 걸렸다”며 “의료기관 내에 디지털치료기기를 도입해 활용할 수 있는 생태계가 구축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