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민의 크리미널 마인드]
1980년 12월과 1981년 3월, 미국에서는 두 건의 중대한 총격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세계적인 음악가 존 레논은 사망했고,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암살 시도에서 살아남았다. 두 사건 모두 정신 질환을 앓던 범인에 의해 발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이 두 사건은 전혀 다른 법적 결론에 도달했고, 그 차이는 이후 미국의 심신미약 제도 전반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1980년 12월 8일 밤, 뉴욕 맨해튼 다코타 빌딩 앞에서 존 레논은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 총 다섯 발 중 네 발이 명중했고, 심장에 인접한 대혈관과 폐 손상으로 병원 도착 전 이미 심정지 상태였다. 범인은 사건 당일 낮 존 레논에게 신규 앨범 Double Fantasy에 사인을 받은 뒤, 같은 장소에서 수시간 후 총격을 가했다. 체포 당시 그는 현장에서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있었다.
범인은 자신을 소설 속 주인공과 동일시했고, 존 레논을 ‘위선적인 가짜 인물’로 인식하는 망상을 보였다. 이러한 사고 구조는 특정 인물이 진짜가 아니라는 믿음을 갖는 카그라스 증후군 계열의 망상과 유사하다. 그는 과거 정신과 입원과 자살 시도 이력이 있었으며, 사건 이전부터 현실 판단 능력의 왜곡이 지속돼 왔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법원은 범인이 범행 당시 판단 능력이 완전히 상실됐다고 보지 않았고, 결국 유죄 판결과 함께 장기 수형 및 정신과 치료 명령을 내렸다.
존 레논 사건 이후 약 3개월가량이 지난 1981년 3월 30일, 워싱턴 DC 힐튼 호텔 앞에서는 레이건 대통령이 총격을 받아 중상을 입었다. 총알은 심장 바로 앞에서 멈췄고, 응급 수술 끝에 생존했다. 범인은 영화 택시 드라이버의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했고, 배우 조디 포스터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색정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대통령 암살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다고 진술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존 레논 사건과 달리 범인이 범행 당시 자신의 행위가 옳고 그름을 판단할 능력이 없었다고 보고 심신미약에 의한 무죄 판결을 내렸다. 교도소 대신 정신병원에 무기한 수용하도록 결정했다. 대통령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 범죄였지만, 형사 책임은 묻지 않은 것이다.
두 사건의 차이는 범죄의 결과보다 재판 과정과 당시 법 제도에서 발생했다. 존 레논 사건의 범인은 스스로 유죄를 주장하며 변호 전략에 협조하지 않았고, 레이건 사건의 범인은 대형 로펌의 조력을 받아 법정 진술 자체를 거부했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하다는 이유였다. 당시 미국 법은 심신미약 유무에 대해 피의자가 아닌 검사가 입증해야 하는 구조였고, 레이건 사건에서는 검사가 심신미약이 아님을 입증할 수 있는 절차적 기회 자체가 제한됐다.
이 판결은 미국 사회에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대통령을 쏘고도 무죄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은 정신 질환 범죄에 대한 공포와 불신을 동시에 확대시켰고, 정신 질환자 전체에 대한 낙인 역시 강화됐다. 결국 1984년 미국은 심신미약 방어권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했고, 이후 심신미약 입증에 대한 책임을 검사 측에서 피의자 측으로 변경했다.
현재 미국과 한국 모두 정신 질환이 있더라도 범죄 책임은 원칙적으로 묻되, 치료를 병행한다는 방향으로 제도가 이동하고 있다. 이른바 ‘유죄이나 정신 질환 있음(Guilty But Mentally Ill)’ 개념이다. 이는 정신 질환이 면죄부가 되지 않으면서, 치료의 필요성도 강조하려는 절충적 시도다.
중증 정신 질환자가 일반 사람보다 범죄를 더 많이 저지른다는 근거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정신 질환이 장기간 방치될 경우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중대한 위험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 역시 부정하기 어렵다. 범죄에는 책임이 필요하고, 동시에 정신 질환에 대한 치료는 인간의 기본 권리다. 안타까운 점은 우리 사회가 아직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감당할 수 있는 의료·사법 연계 시스템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존 레논은 사망했고, 레이건 대통령은 살아남았다. 두 범인은 모두 정신 질환을 앓고 있었지만, 전혀 다른 법적 결론에 도달했다. 이 사건들은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범죄사건에서 정신 질환은 어디까지 고려돼야 하며, 어디까지 책임을 면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1980년 12월 8일 밤, 뉴욕 맨해튼 다코타 빌딩 앞에서 존 레논은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 총 다섯 발 중 네 발이 명중했고, 심장에 인접한 대혈관과 폐 손상으로 병원 도착 전 이미 심정지 상태였다. 범인은 사건 당일 낮 존 레논에게 신규 앨범 Double Fantasy에 사인을 받은 뒤, 같은 장소에서 수시간 후 총격을 가했다. 체포 당시 그는 현장에서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있었다.
범인은 자신을 소설 속 주인공과 동일시했고, 존 레논을 ‘위선적인 가짜 인물’로 인식하는 망상을 보였다. 이러한 사고 구조는 특정 인물이 진짜가 아니라는 믿음을 갖는 카그라스 증후군 계열의 망상과 유사하다. 그는 과거 정신과 입원과 자살 시도 이력이 있었으며, 사건 이전부터 현실 판단 능력의 왜곡이 지속돼 왔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법원은 범인이 범행 당시 판단 능력이 완전히 상실됐다고 보지 않았고, 결국 유죄 판결과 함께 장기 수형 및 정신과 치료 명령을 내렸다.
존 레논 사건 이후 약 3개월가량이 지난 1981년 3월 30일, 워싱턴 DC 힐튼 호텔 앞에서는 레이건 대통령이 총격을 받아 중상을 입었다. 총알은 심장 바로 앞에서 멈췄고, 응급 수술 끝에 생존했다. 범인은 영화 택시 드라이버의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했고, 배우 조디 포스터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색정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대통령 암살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다고 진술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존 레논 사건과 달리 범인이 범행 당시 자신의 행위가 옳고 그름을 판단할 능력이 없었다고 보고 심신미약에 의한 무죄 판결을 내렸다. 교도소 대신 정신병원에 무기한 수용하도록 결정했다. 대통령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 범죄였지만, 형사 책임은 묻지 않은 것이다.
두 사건의 차이는 범죄의 결과보다 재판 과정과 당시 법 제도에서 발생했다. 존 레논 사건의 범인은 스스로 유죄를 주장하며 변호 전략에 협조하지 않았고, 레이건 사건의 범인은 대형 로펌의 조력을 받아 법정 진술 자체를 거부했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하다는 이유였다. 당시 미국 법은 심신미약 유무에 대해 피의자가 아닌 검사가 입증해야 하는 구조였고, 레이건 사건에서는 검사가 심신미약이 아님을 입증할 수 있는 절차적 기회 자체가 제한됐다.
이 판결은 미국 사회에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대통령을 쏘고도 무죄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은 정신 질환 범죄에 대한 공포와 불신을 동시에 확대시켰고, 정신 질환자 전체에 대한 낙인 역시 강화됐다. 결국 1984년 미국은 심신미약 방어권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했고, 이후 심신미약 입증에 대한 책임을 검사 측에서 피의자 측으로 변경했다.
현재 미국과 한국 모두 정신 질환이 있더라도 범죄 책임은 원칙적으로 묻되, 치료를 병행한다는 방향으로 제도가 이동하고 있다. 이른바 ‘유죄이나 정신 질환 있음(Guilty But Mentally Ill)’ 개념이다. 이는 정신 질환이 면죄부가 되지 않으면서, 치료의 필요성도 강조하려는 절충적 시도다.
중증 정신 질환자가 일반 사람보다 범죄를 더 많이 저지른다는 근거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정신 질환이 장기간 방치될 경우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중대한 위험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 역시 부정하기 어렵다. 범죄에는 책임이 필요하고, 동시에 정신 질환에 대한 치료는 인간의 기본 권리다. 안타까운 점은 우리 사회가 아직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감당할 수 있는 의료·사법 연계 시스템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존 레논은 사망했고, 레이건 대통령은 살아남았다. 두 범인은 모두 정신 질환을 앓고 있었지만, 전혀 다른 법적 결론에 도달했다. 이 사건들은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범죄사건에서 정신 질환은 어디까지 고려돼야 하며, 어디까지 책임을 면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