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가족 돌보는 청소년·청년 이르는 ‘영케어러’, 10만 명 넘을 것
빈곤·고용 불안 놔두면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와… “통합돌봄 대상 넓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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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사진=게티이미지뱅크
간병비 급여화와 통합돌봄지원법 등 우리 사회의 돌봄 부담을 덜기 위한 제도 개선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지원 대상이 노인이나 중증장애인에 집중돼 있어, 아픈 가족을 돌보는 청소년·청년, 이른바 ‘영케어러(young carer)’는 여전히 제도 밖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노(老老) 간병 그늘에 가려진 ‘영케어러’
노노 간병은 노년기에 접어든 배우자나 노년의 자녀가 노인 환자를 돌보는 상황을 뜻한다. 초고령사회로 접어들며 60대 이상 간병인이 고령 환자를 돌보는 사례는 빠르게 늘고 있다. 그러나 돌봄의 현장은 노년층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아픈 부모나 형제·자매를 돌보는 청소년과 청년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영케어러’로 불리며, 전국적으로 10만 명 이상이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간병과 돌봄은 누구에게나 고된 일이지만, 영케어러에게는 그 무게가 더욱 가혹하다. 이들은 가족의 질환을 떠안은 채 생계 보조, 간병, 가사노동까지 전방위적인 책임을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학업이나 또래 관계 형성 등 성장기의 경험은 쉽게 희생된다.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양난주 교수는 “학교생활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며 “사회적 안전망 밖에서 미래를 저당 잡힌 채 청년기로 진입하는 구조가 반복된다”고 말했다.

영케어러이자 돌봄 커뮤니티 ‘N인분’의 조기현 대표는 영케어러 돌봄의 가장 큰 특징으로 돌봄 기간의 비정상적인 장기화를 꼽는다. 그는 “정신질환이 만성화되면 30년, 40년 이상 돌봄이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며 “영케어러라고 부르지만, 10대부터 부모의 정신질환을 돌보다 어느새 40대가 된 사례들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중증·정신질환자 돌보는 청년들은 소외
간병인을 고용한 가구의 월 평균 간병비가 370만 원에 달하는 등 돌봄 부담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면서, 정부는 제도적 개선을 통해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방침을 내놓고 있다. 오는 3월 시행되는 통합돌봄지원법은 돌봄이 필요한 주민이 살던 곳에서 건강하고 존엄한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의료·요양·돌봄 서비스를 지역사회에서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골자다. 그동안 분절적으로 운영돼 온 서비스가 연계된다는 점에서 돌봄 서비스의 지형을 바꿀 제도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통합돌봄의 초점이 65세 이상 노인이나 중증장애인에 맞춰져 있어, 영케어러 가구는 지원 대상에서 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예컨대 65세 이하면서 암을 앓는 부모나 정신질환을 앓는 형제를 돌보고 있는 영케어러들은 통합돌봄이 시행돼도 별다른 지원을 받지 못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 가족돌봄청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이 돌보는 가족의 건강 상태는 중증질환(25.7%), 장애인(24.2%), 정신질환(21.4%), 장기요양 인정 등급(19.4%), 치매(11.7%) 순으로 나타났다. 영케어러 중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중증질환자와 정신질환자를 돌보고 있다.

조기현 대표는 “중증 질환자 부모를 둔 어린 자녀들이나 정신질환자 형제를 돌보는 보호자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며 “통원 항암 치료를 받는 어머니를 돌보는 하나뿐인 자녀 등 그들의 입장에서는 직장에 온전히 다니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 놓이기 쉽다”고 말했다.

◇사각지대를 메워야 진짜 ‘통합돌봄’
모든 돌봄 위기 가구를 포괄할 수 있는 공적 돌봄 체계 구축이 필요한 시점이다. 각 지자체 행정복지센터 등이 영케어러를 지원하는 사업을 하고 있지만 분절적으로 나뉘어있는 서비스들과 신청주의로 인해 지원받는 걸 포기하는 이들이 많다. 영케어러의 빈곤과 고용 불안이 고착되면서 사회적 비용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연령을 기준으로 분절돼 있는 돌봄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각종 돌봄 서비스와 지원 사업의 기준과 원칙을 재검토하고, 돌봄이 필요한 당사자뿐 아니라 그 가족의 삶 전반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양난주 교수는 “영케어러의 아픈 가족에게 우선 지원을 보장하는 특례 제도를 도입한다면 돌봄 부담을 실질적으로 경감시킬 수 있다”며 “영케어러 지원은 돌봄을 받는 가족에 대한 서비스이면서 돌봄을 수행하는 청년들을 동시에 지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기현 대표는 “가장 바람직한 것은 보건복지부가 통합돌봄 대상 자체를 확대하는 것이지만, 어렵다면 지자체장이 돌봄 필요 대상을 적극적으로 인정해 사각지대를 메우는 것이 시급하다”며 “통합돌봄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노인이나 중증장애인에 한정되지 않고, 정신질환·중증질환을 포함한 모든 돌봄 위기 가구를 포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