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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사진=게티이미지뱅크
(편집자주)
누군가는 부모를 돌보느라 직장을 그만두고, 또 누군가는 월 수백만 원에 달하는 간병비 앞에서 치료를 포기한다.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한국에서 간병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현실이다. 헬스조선은 ‘간병’ 기획 시리즈를 통해 독자와 함께 이 문제의 실체를 들여다보고 대안을 모색하려 한다.

집안에 아프거나 스스로 일상생활이 어려운 사람이 한 명이라도 생기면, 가정이 무너진다. 환자를 온종일 돌보느라 개인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은 물론 직업도 포기해야 하는 사람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에 비싼 돈을 부담하고서라도 ‘간병인’을 고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간병인이 환자 돌봄에 소홀했고, 환자를 정서적·신체적으로 학대했다는 뉴스가 종종 보도돼 환자 가족들은 돈을 내고서도 안심할 수가 없다.

간병인의 자질 논란이 유독 자주 불거지는 이유는 무엇이고, 해결책은 어디에 있을까. 의료인, 사회복지 전문가, 사설 간병 업계 관계자에게 물어봤다.

◇자격 조건 없고, 고용 주체 모호한 것이 근본 문제
간병인의 간병 능력과 윤리에 관한 문제가 자꾸 불거지는 데에는 다양한 문제가 있다. 첫째로, 현재 간병인으로 일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요구하는 자격 또는 조건이 없다. 넓은 의미에서 간병인은 환자를 간병하는 모든 사람을 말하지만, 좁은 의미에서는 ▲사설 파견도급업체에 고용된 후 요양병원 등에 파견돼 일하거나 ▲알선 업체를 통해 환자와 일대일 계약을 맺고 개인 사업자로서 일하는 사설 간병인을 가리킨다. 돌봄 서비스 플랫폼 케어닥 박재병 대표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요양 보호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많긴 하지만 현재 간병인이 되기 위해 반드시 관련 자격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며 “그렇다고 업체나 이들이 일하는 기관에서 교육을 시키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두 번째 원인이 나온다. 간병인의 자질을 관리할만한 주체가 없다. 사설 간병인을 환자에게 보내는 업체가 대부분 단순 알선 업체기 때문이다. 개인 사업자로 일하는 간병인을 환자에게 소개만 하고 중개 수수료를 챙기면 ‘알선업’인데, 이때 업체가 자신이 중개하는 간병인에게 간병 지식을 교육하는 등 관리 감독을 행하면 ‘파견도급업’으로 간주된다. 박재병 대표는 “파견도급으로 인정받는 순간 간병인의 노동자성이 인정돼 간병비 이외에도 4대 보험 가입, 퇴직금 지급 의무가 생기고, 소비자가 부담해야 하는 간병비가 상승한다”며 “알선 업체에서 소개받아 쓰더라도 비용이 비싸다는 말이 많은데, 간병인을 관리 감독하기 위해 파견도급업으로 넘어가면 그 비용을 감당할 사람들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용 문제로 알선에 그친다면, 환자에게 소개하는 간병인에게 노인 학대 범죄 이력이 없는지 업체가 조회하는 등의 조치는 당연히 불가능하다. 환자가 알선 업체를 통해 고용한 간병인이 요양병원이나 요양원 소속은 당연히 아니므로 이들 기관 역시 범죄 이력 조회를 할 수 없다. 대한요양병원협회 김기주 부회장(선한빛 요양병원)은 “파견도급업체를 통해 들어와 요양병원에서 일하는 간병인은 병원에서 관리 감독할 경우 고용노동법에 저촉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병원에서 간병인을 직접 고용할 경우 간병인 인건비는 파견도급업에서보다 더욱 상승한다. 

이렇듯 현실적 문제로 알선 업체 위주 시장이 조성되다 보니 관리 주체가 없다. 이에 간병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은 먼저 시작한 사람들에게 알음알음 알아서 배울 뿐이다. 간병 지식에 대한 학습이 제대로 이뤄지지기 어렵고, 꼭 지켜야 할 윤리에 관한 교육도 당연히 없다.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허준수 교수는 “타인을 돌보는 고된 일을 하지만 직업적 지위가 불안정해 휴식이나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다 보니 간병인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며 “이것이 돌봄 소홀이나 환자 그리고 그 가족과의 갈등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경민대 간호학과 임소희 교수는 “간병인이 노인을 장시간 돌보다가 정서적으로 소진되고, 스트레스와 감정 조절에 실패하는 것이 학대 행위와 관련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제도 안으로 편입” vs “시장에 맡겨야”
업계 관계자, 사회 복지 전문가, 의료인 모두 원인에 대해서는 견해를 함께했다. 다만, 해결책에 관해서는 입장이 갈렸다. 


우선, 간병 지식과 윤리를 체계적으로 교육하기 위해 ‘간병사 자격증’을 신설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었다. 임소희 교수는 “요양 보호사와 비슷하게 최소한의 역량, 윤리, 안전 수칙을 가르치는 이론·실습 교육이 필요하다”며 “교육을 받고 간병사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만 국가에 등록한 다음 실무에서 활동하게 하면 주기적 보수 교육과 감시·징계가 쉬워진다”고 말했다. 허준수 교수 역시 “장기적으로는 간병사 자격증을 국가가 신설해 간병 지식과 윤리를 교육받은 사람만 간병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다만, 이 경우 간호사나 요양 보호사 등은 간병사 자격증을 따지 않으면 간병할 수 없다는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새로 간병인이 되는 사람들 말고 이미 간병 업무를 해 오던 사람들을 위한 특별 전형을 신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관련 교육을 받은 적 있거나 현장에서 간병 일을 해온 사람들은 약식 훈련을 받거나 세미나를 수료하기만 해도 간병사 자격을 인정해주는 ‘패스트 트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어 허 교수는 “간병사 자격을 신설해 간병사 임금이 오르면, 간병비를 급여화했을 때 건강보험에서 지출되는 돈도 늘어나겠지만 품질 관리를 위해서는 제도화가 필요하다”며 “혹여라도 건강보험 재정이 부족하다면 건강보험료를 올려서 메우면 된다”고 말했다.

자격 신설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한신대 사회복지학과 홍선미 교수는 “돌봄과 간병 인력 수요가 증가하는 지금, 자격증을 신설해 관리를 엄격하게 하다가는 간병인 공급이 부족할 수 있다”며 “우선은 간병인 개인에 엄격한 자격 관리를 하기보다, 업체의 인력 고용 구조와 직원 관리 행태를 개선하는 것이 더 시급하고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권용진 교수는 “간호, 간병, 돌봄, 요양이 용어는 다르지만, 사실 환자는 간호도 해 주면서, 간병도 해 주면서, 돌봄도 제공해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라며 “실제 현장에서는 한데 뒤섞여있는 업무들을 직업과 자격증으로 따로 떼어 놓는 것은 비효율적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차라리 이미 있는 요양보호사를 간병 직무로 유입시키는 것이 우선이라고 봤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이 300만 명을 넘었지만, 그중 5분의 1정도만 돌봄 현장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직접 고용 형태가 아니더라도, 간병인 알선 업체가 간병인에 대해 최소한의 관리 감독을 수행할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견해도 있었다. 박재병 대표는 “이미 시행되고 있는 요양 보호사 자격증도 합격률이 90% 수준인데, 간병사 자격증 역시 비슷하게 운영돼 자격증이 간병 능력과 직업 의식을 담보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며 “차라리 법을 개정해 노인 복지 서비스업에 한해서는 알선 업체가 인력을 관리·감독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현재는 의료업(의료기관)과 사회복지업(사회복지기관) 관련 기관만 고용자의 범죄 이력 조회가 가능하다. 사설 간병인 파견 업체는 고용알선업이라 해당 사항이 없다. 박 대표는 “법을 개정해 사회 복지업이 아닌 노인 돌봄 서비스업 전체로 넓히면, 사설 간병인 알선 업체도 자신이 환자에게 소개하는 간병인의 노인 학대 범죄 이력을 확인할 수 있다. 이어 박 대표는 “마찬가지로 노인 복지 쪽에서만큼은 알선 업체가 자신이 소개하는 인력들에 퇴직금, 4대보험 등 의무를 지지 않고서도 간병 지식 교육 등 관리 감독을 할 수 있게 한다면, 환자들도 지금보다는 검증된 간병인에게 돌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는 교육하는 순간 파견도급업으로 분류돼 퇴직금과 4대 보험 가입 의무가 생기므로 알선 업체들이 교육을 시행하지 않는 상태다.

◇’간병사 자격증’ 논하기 전 ‘케어 코디네이터’부터 활성화
간병사 자격증에 관한 찬반 논의에서 벗어난, 다른 의견들도 있었다. 간병사 제도를 논의하기 전에 ‘케어 코디네이터’부터 활성화해야 한다는 시각이 한 예다. 환자는 중증도에 따라 적합한 간병 인력이 달라진다. 중증 환자는 간호사가 필요하고, 의사소통이 어려운 환자는 관련 교육을 받은 사람이 돌봐야 한다. 권용진 교수는 “간병인을 제도화할 것이냐를 따지기 전에 간호사든 요양보호사든 환자에게 적합한 돌봄 인력을 찾아주는 케어 코디네이터 제도부터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대 방지 기술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었다. 김기주 부회장은 “학대를 모니터링하겠다고 CCTV를 환자 방에 설치하면 환자 옷을 갈아입힐 때 몸이 영상에 찍히는 등 문제로 개인정보 관리가 어려워진다”며 “영상 전체를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와 간병인의 움직임에 관한 데이터만 저장하는 ‘인공지능 모션 캡처’ CCTV가 개발 중인데, 이러한 기술을 도입하는 것도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