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말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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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클립아트코리아
얼마 전, 가까운 친구의 가족이 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비교적 젊은 나이였기에, 그 소식은 갑작스럽고 묵직했다. 이론적으로는 늘 알고 있다. 남에게 일어나는 일은 언제든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막상 그 ‘언제든’이 현실이 되어 내 주변을 덮칠 때면, 머릿속은 하얘지고 눈앞은 캄캄해진다.

사랑하는 가족의 암 선고는 환자 한 사람의 몫으로만 남지 않는다. 그 곁을 지키며 돌봐야 하는 간병 가족의 삶에도 깊고 큰 파문을 남긴다. 특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작스레 맞닥뜨린 현실 앞에서 이들은 상당한 신체적, 심리적 스트레스에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아픈 사람도 있는데, 내가 힘들다고 말해도 되나. 나라도 정신을 차려야지”라며 자신의 고통은 뒤로 밀어둔 채 하루하루를 버틴다.

이렇듯 환자에게만 온 신경을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몸과 마음은 돌봄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피로는 쌓이고 잠은 얕아지며, 이유 없는 두통과 기분 변화가 찾아온다. 식욕이 줄거나 체중이 변하고, 혈압이 오르기도 한다. 이는 나약함의 증거가 아니다. 너무 오래 애써온 사람의 몸이 보내는 신호다. 자신의 건강 상태를 인식하고 우선순위에 두는 것은 결코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끝까지 돌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때로는 국경과 거리마저 간병의 한 부분이 된다. 해외 체류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떨어져 지내야 하는 장거리 간병 가족들은 더 큰 불안과 무력감을 느낀다.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 화면 속 얼굴만으로는 일상의 미묘한 변화를 온전히 읽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더 의식적인 연결이 필요하다. 정기적인 연락, 가까이 있는 가족이나 지인의 도움, 의료진과의 직접적인 소통은 거리를 조금씩 좁혀주고 마음의 무게 또한 덜어준다.

간병 가족에게도 일상은 계속되어야 한다. 정기 검진을 미루지 않고, 약을 제때 복용하며, 잘 먹고 잘 자고, 몸을 움직이는 기본적인 돌봄은 삶의 사치가 아니라 생존의 기술이다. 취미를 이어가고, 사회적 관계를 완전히 끊지 않는 것 또한 중요하다. 많은 간병 가족들이 시간이 지나서야 “조금만 더 일찍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더라면”이라고 고백한다. 주변 사람들은 종종 돕고 싶어도 방법을 몰라 망설인다. 그러니 자신의 필요를 구체적으로 말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집안일, 자녀 양육, 의료시설 이용시 이동 지원 도움 등등, 도움을 받는 것은 약함이 아니라, 함께 버티기 위한 선택이다.

간병 가족들의 마음의 돌봄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암 여정은 복잡하고 강렬한 감정을 동반한다. 두려움, 우울감, 불안, 분노, 슬픔 등의 감정들이 하나씩, 때로는 동시에 밀려오기도 한다. 이런 감정을 억누르거나 외면하는 대신, 솔직하게 대면하는 것에서부터 돌봄은 시작된다.


감정을 억누르거나 외면하기보다, 글로 써보고 말로 나눠보자. 이러한 일은 스스로를 지키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대면 또는 비대면 지원 그룹과 소통함으로써 공감과 위로를 받고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껴보자. 믿을 수 있는 친구, 상담사, 의료진, 또는 종교적 지도자와의 대화는 환자 앞에서는 꺼내지 못했던 두려움과 좌절을 내려놓을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되어준다.

암과 함께하는 여정은 마라톤과 닮아 있다. 어떤 날은 의외로 가볍게 달릴 수 있지만, 어떤 날은 한 걸음도 내딛기 어려울 만큼 벅차다. 불안하고, 슬프고, 화가 나는 감정은 환자에게도 간병 가족에게도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 감정을 부정하지 않고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치유는 시작된다.

간병은 어렵고, 때로는 압도적이다. 하지만 바로 지금, 사랑하는 사람 곁에 있을 수 있음에 대한 감사도 함께 존재한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나눈 짧은 미소, 오랜만에 맛있게 먹은 한 끼, 가족과 나는 평범하지만 따뜻한 대화. 이런 작은 순간들이 모여 우리에게 다시 일어설 힘을 준다.

먼 미래를 걱정하기보다, 오늘의 숨결과 오늘의 온기에 집중해보자. 그 현재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돌보고, 또 스스로를 지켜내며, 이 길을 함께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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